“올해 운세가 어떤가요?” “결혼은 올해 할 수 있나요?” “이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는 역술인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2030세대들의 최대 고민거리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연초를 맞아 점집이 활황을 이루고 있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수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내 점 시장은 대략 4조원을 넘어서는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작년 초 2조원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왔지만,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점에 대한 관심은 방송사에서도 패러디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최근 모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는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걸 꿰뚫어본다는 유행어를 만들며 코미디 형식으로 역술인을 표현했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여론의 혹독한 비난을 받고 있는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고민을 토로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대중들은 그 동안 몰랐던 인기 연예인들의 인간미를 느끼게 되고 중간중간 감동과 웃음을 제공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반인 역시 현재 처한 고충과 앞날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점집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과거 점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 40~50대로 구성됐지만, 최근 취업·결혼·직장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는 2030세대들까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점집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점집들도 젊은 층의 성향에 맞춰 기존의 어둡고 침침한 이미지를 벗고, 커피와 음식은 물론 맘껏 수다도 떨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사주 카페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벌써부터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의 말에 의존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답답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지 못하고 역술인 말에 의존하는 이들. 또 이들의 답답증을 해소하며 열광하게 만드는 역술인들은 과연 어떤 말로 2030세대를 유혹하는지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한 사주 카페를 찾아가 봤다.
■ 점집 골방에서 카페로 변신 “00동자님, 00신령님, 00보살님, 00년 0월 0일 사주를 알려줘요. 이 사주의 연애·직업운이 어떤가요?” 17년 전에 신을 내려 받고 신점을 보고 있다는 사주 카페 역술인은 사주를 보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일종의 신을 부르기 위한 의식이라고 한다. 역술인은 찾아온 사람의 생년월일을 물어 본 뒤 대략 1~2분 정도 신을 부르는 주문 같은 것을 외우는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방문객의 직업과, 성격 그리고 성향 등을 둥그렇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컴퓨터와 연관돼 있고 손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 성격은 고집이 세며 소신이 강하다고 첫 말을 뗀다. 현재 컴퓨터 강사를 하고 있는 이모(여·28) 씨는 역술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처음 봤는데 성격이나 직업에 관련된 말이 딱 들어맞았기 때문. 기자와 동행한 이 여성은 사주 카페를 처음 가봤지만 역술인의 점에 너무 놀라 일일이 메모하는 열성(?)까지 보였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최근 컴퓨터와 관련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또 컴퓨터를 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 역시 손을 쓰는 직업이다. 기자도 노트북(컴퓨터)을 사용하고 있고 펜과 메모지는 필수 품목이기 때문에 손을 쓰는 직업이다. 성격도 고집이 센 것은 물론이고 소신도 매우 강한 편이다. 결국 이모 씨와 기자는 똑같은 직업과 성격을 가진 셈이 된다. 사주 카페 역술인은 “사람들의 고민은 대부분 직장, 결혼, 가족 등 비슷비슷하다”고 말한다. 결국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말을 받아 열 배 부풀리면 대부분 공감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모 씨와 같이 젊은이들은 고민과 호기심을 동시에 말할 수 있고 답답증을 해소시켜 준다는 이유로 열광한다. 평소 집안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 이모 씨는 이날 그 동안 말 못한 집안문제와 직업에 관한 애로사항, 그리고 결혼문제까지 역술인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내년에 결혼운이 있고, 올해 돈 많은 남자를 만날 운세다. 가급적이면 내년까지 결혼을 미루는 게 좋다”는 역술인의 말에 이 씨는 “사실 남자친구가 계속 결혼을 미뤄 속상했다. 가끔 헤어질 생각도 했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며 “무엇보다 올해 남자복이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운세, 사주 등으로 매달 10여만원씩을 지출하고 있다는 직장인 이은숙(30)씨 역시 “애인과의 불화, 직장에서의 애로사항을 역술인에게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하고 덩달아 자신감도 붙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2030세대들이 벌써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안한 문제를 해결 혹은 상담하기 위해 점집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닥치면 스스로 이겨내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점을 보는 사람의 심리는 자신의 문제를 책임지기 보다는 피해 가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가격 싸고 분위기 좋아 여성 손님이 주류 사주 카페는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불확실한 미래와 연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 젊은 여성에게 인기다. 과거에 주로 서울의 미아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점집은 침침하고 다소 섬뜩한 이미지가 컸다. 이 때문에 주부나, 사업가 등 40대 이상의 고객들이 주류를 이뤄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차와 커피를 마시며 만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친구들끼리 편안하게 대화 할수 있는 사주 카페가 등장하면서 점집에 대한 거부감이 해소됐다. 현재 사주 카페는 서울의 이대, 홍대, 건대, 압구정 등을 중심으로 수백여 곳이 있으며, 매년 꾸준히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가격도 저렴하다. 과거 5만원에서 10만원 하던 복채가 1만원에서 2만원으로 내렸다. 특히 번화가 중심으로 퍼져 있는 포장마차형 타로카드 점집은 3,000원에서 5,000원이면 사주를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발품이 필요 없는 온라인 점 시장도 뜨겁다. 전통 점술과 최첨단 기술을 결합한 사이버 점집은 초등학생도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 포털 점집은 대략 600여개가 성업을 이루고 있고, 메신저 웹캠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상담도 가능하다. 이처럼 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백화점에서도 무료로 점이나 운세를 알려주는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해마다 연초나 연말이 되면 역술인을 초청하여 고객들의 운세나 점을 무료로 봐주는 행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역술 전문가는 “역술도 이제는 학문의 제도권에 들어왔고, 전문적인 상담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며 “연간 4조원의 어마어마한 점술시장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더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과도한 맹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심리학 전문의는 “운세나 점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자신을 믿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자세를 가져햐 가장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성승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