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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CEO 인터뷰] (주)한국스티펠 권선주 사장

사원과 기업의 성공비결은 ‘社和萬事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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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호 ⁄ 2008.02.25 16:09:21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이면서도 전문역량을 살리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한 직장에서만 뿌리를 내린 지 22년째. 그것도 외국계 제약회사 한국 법인의 창업 초대 사장이 되어 22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권선주 사장(61)은 (주)한국스티펠 역사의 산 증인이다. 현재 미국에 본사를 둔 스티펠은 1847년 비누와 양초 제조회사로 출발한 161년 전통의 제약회사이다. 전세계 피부 외용 제약업계의 리딩 컴퍼니로써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있으며, 여드름·아토피피부염·건선·두피질환 치료제 등 100여 가지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전세계 120여 개국에 현지법인·에이전시를 두고 있는 이 회사와 인연을 맺은 권 사장의 사연에서 맹렬 여성의 면모를 엿보게 된다. ■가정에서도 깨어 있었던 ‘엄마 시간’ 서울대 약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대 영양학과 전임강사로 활동하던 그는 1978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는 남편 차창용 씨(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 현 방사선보건연구원 원장)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연구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생후 10개월 된 아들 승환이를 시댁에 맡기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전문 경력을 인정받아 미국 국립암센터(NIE)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어, 3년 간 암치료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 간의 연구생활을 마치고, 강단에 다시 설 꿈에 부풀어 그는 1980년 귀국길에 오른다. 그러나 엄마·아빠를 알아보지 못하는 네 살짜리 아들을 보고 부부는 충격을 받았다. 아이와 떨어져 지낸 3년이 후회스러웠던 권 사장은 이내 꿈을 접었다. 커리어는 언제든 되찾을 수 있지만, 아이는 영영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는 일이 급했던 그는 아이에게 못다한 사랑을 주고 싶어 집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동창회 같은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은둔자처럼 살았다. 그렇게 두 아이에게 올인하는 6년 세월이 이어진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만큼 권 사장의 마음 속에는 문득 일에 대한 열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회복귀에 대한 소망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시작한 자신만의 프로그램이 하루 4시간의 ‘엄마 시간’이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난 뒤부터 저녁을 준비하기 전까지 4시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만의 시간을 꾸렸다. 그 시간에는 책과 신문에 파묻히고, 영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영자지를 매일 읽었다. ■‘선주 클로닝’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경영성과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위해 준비하던 그의 눈에 어느 날 제약 관련 신문에 실린 공개채용 광고가 들어왔다. 1986년,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스티펠이 한국에 진출하여 지사장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딱 내가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면접 때 ‘전업주부’라고 소개했더니, 면접 임원들이 웃더군요. 그래서 약사 출신에다 미국 암연구센터에서 공부했으니 전문분야에는 자신있으며, 남편이 교수이고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회사 공금을 횡령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죠.” 이어서 “경영도 잘할 수 있겠느냐?”는 면접관의 물음에 “가르쳐만 주면 최고로 잘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잘라 말했다. 그 배짱과 신선함이 면접관들의 눈에 들었던지, 그는 당당하게 스티펠 한국지사의 첫 CEO로 뽑혔다. 하지만 여성 경영인으로서 부닥치는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권 사장은 직접 제품을 들고 병원을 찾아다니며 홍보에 나섰다. 술 대접 없이는 거래처를 넓히기 어려운 당시의 제약업계 풍토가 여성 경영인인 그에게는 큰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병원을 찾아가면 ‘술집 마담’으로 오해받기 일쑤였고, ‘접대’를 할 수 없어 결정적인 순간에 계약이 무산된 경험도 있었다. 1986년 5평짜리 사무실로 시작한 한국스티펠은 매년 20% 이상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무차입 경영 속에 연간 매출 250억 원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원 1인당 생산성도 3억 원 이상으로 업계 평균을 3배 이상 웃돌고 있다. 이러한 경영성과로 한국스티펠은 본사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스티펠 자회사로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으며, 권 사장의 경영방식이 ‘선주 클로닝(복제)’이란 이름으로 스티펠 자회사들 사이에 확산 접목되고 있다.

■모든 사원 아침식사는 회사에서, 퇴근은 5시 반 권 사장의 경영철학은 ‘사화만사성(社和萬事成)’이다. 그 결과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으로 이어진다고 그는 확신한다. “회사는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곳입니다. 회사생활이 즐겁지 않다면, 가정에서도 결코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회사를 가정만큼 즐겁고 소중한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원들의 ‘아침밥 챙겨주기’는 이런 취지에서 시작했다. 전사원이 오전 7시 30분 사내(社內) ‘카페테리아’에 모여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건강을 챙기고, 회사 업무에서부터 개인의 사소한 고충까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권 사장은 사원들에게 ‘오후 5시 30분 퇴근엄수’를 철저히 지키게 하고, 사원들도 이 제도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다. 근무시간 내에 맡은 일을 깔끔히 마무리하여 업무능률도 높이고, 이른 퇴근으로 생긴 여가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배려이다. 이 회사의 마케팅 부서 총괄부장은 출산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뒀다가 5년 만에 현업에 복귀한 주부사원이다. 전업주부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권사장의 배력 덕분이다. “인재 등용에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이라고 불이익을 겪어서는 안됩니다. 또 여성이라고 움츠려서도 안됩니다. 특히 주부들에게 강조합니다만, 항상 깨어 있으면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항상 배우려는 자세, 노력하는 자세가 있으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픈 주부들에게 권 사장은 이렇게 당부했다. ■사원들 개성 조화시키는 ‘화초경영’ 권선주 사장은 집에서뿐 아니라 사무실에서도 화초를 많이 가꾸는 ‘화초 마니아’이다. “미국에 갔을 때 우리 부부는 형편이 넉넉치 못하여 화초를 제대로 가꿀 수 없었지요. 그때 눈에 띈 꽃이 바이올렛(제비꽃)이었습니다. 바이올렛은 잎사귀 하나로도 쉽게 번식하기 때문에, 눈에 띌 때마다 하나씩 떼다가 화분에 심었습니다. 많을 땐 150개까지 키웠는데, 어떠한 화려한 가구나 비싼 소파보다도 집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지요. 손은 많이 가지만,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습니다. 가난하던 시절에 터득한 삶의 지혜랄까요.” 권 사장은 화초를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때, 화초의 잎을 살피고 해충을 잡아주기도 하며 정성을 쏟다 보면 어느새 고요한 평정심으로 돌아와 있음을 느낀다는 것. 161년 전통의 피부 의약품 전문기업 스티펠의 초대 한국법인 CEO로 취임해 22년째 경영해 오고 있는 권 선주 사장은 그 동안 모은 각양각색의 화초를 통해 새로운 지혜를 얻는다고 했다. 화초는 한 종류만 모아 키울 때보다 여러 종류를 모아 키울 때 더 건강하게 자라는 것처럼, 직장에서도 개성이 제각각 다른 사원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화초를 통해 배웠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서로 사랑하며 함께 돕고 사는 것이 ‘자연의 순리’임을 사원들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저는 어떤 식물을 키워도 잘 자랍니다. 난(蘭) 기르기는 도사 수준이고, 한 번 틔우기도 어렵다는 행운목 꽃은 우리 회사에서 매년 볼 수 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우아하고 화사한 한 송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방효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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