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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보다 ‘깊이’ 추구하는 국민배우 안성기

주연과 조연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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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호 이우인⁄ 2008.03.04 09:54:11

2월 19일 ‘제2의 이영애’라 불리는 신예 윤해민과 인터뷰(CNB저널-54호)를 진행하던 도중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윤해민은 “주연이면서 조연, 단역 등 작품만 좋으면 역의 비중을 가리지 않고 연기에 임할 수 있는 깨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 말은 영화배우 신현준이 한 말이라고 전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국내에 과연 이런 배우가 있을까 떠올려 보았다. 한 번 대중에게 ‘주연급 배우’라는 인식을 심어준 뒤 자처해서 비중이 적은 ‘조연’의 연기를 하려 드는 용기 있는 배우가…. 국내 배우는 물론, 외국 배우들도 일단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나면, 이 맛을 알게 돼 비교적 적은 관심을 받는 걸 수치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대중들의 의식 역시 주연에서 조연으로 ‘변신’하는 배우의 역할을 ‘좌천’쯤으로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틀을 깰 줄 아는 용기있는 배우 2월 25일 영화 ‘마이 뉴 파트너’ 기자 시사회가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이 영화의 주연인 안성기와 조한선을 바라보며, 국내에도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깨어 있는 배우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신현준의 발언은 국민배우 안성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을까. 안성기는 ‘한국영화배우사전’의 발문을 통해 “(배우는) 영화가 좋다면 저예산 영화에도 출연해야 한다. ‘난 얼마 이상 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정해 놓고 활동한다면, 그 개런티에 맞출 수 있는 영화밖에 출연하지 못한다. 그건 연기자 본인을 위해서나 영화계 전체를 놓고 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일단 배우가 그 틀을 벗어 던지면, 관객들은 그 용기를 인정해준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보면, 영화하던 사람들이 연극으로 가기도 하는데, 연극 쪽에서 영화만큼 많은 개런티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배우들은 영화 내부에서 그렇게 못할까? 오히려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쓰고 있다. 조문진 영화감독은 ‘캇! 다시 합시다’라는 책을 통해 “안성기는 자기관리에 엄격하고 까다롭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매사 처리한다. 시나리오가 흡족하지 않거나 그의 체질에 맞지 않으면 절대 고사한다. 돈 생기는데 마구잡이로 왕창 챙긴다든가, 메뚜기도 한 철인데 하는 식의 발상은 안성기 사전에 없다. 장기전으로, 마치 마라톤 주자처럼 페이스를 잘 조절해 가면서 노년에 이를 때까지 멋있게 골인할 계획을 그는 가지고 있다. 안성기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고 감독이 믿을 만하다는 전제가 반드시 있어야 영화에 출연한다. 일단 작품에 임하는 이상은 한눈 팔지 않는다”라면서 “그는 완벽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배우다. 그는 목표를 위해 매진하고 또 매진한다. 그래서 매번 자신을 허물고 다시 세운다. 그는 다음 작품이 나의 대표작이다 할 정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배우다”라고 그를 높이 세웠다.

1999년 6월 영화감독 강우석이 ‘강우석 레디 고’라는 칼럼을 통해 ‘아름다운 배우 안성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성기는 내가 영화 일을 하면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나는 평소 안성기를 ‘성기 형’이라고 부른다. 80년대 조감독 생활을 할 때부터 성기 형을 만났고, ‘투캅스’를 비롯해 내가 연출한 네 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연기해 줬다. 그에게 개런티 얘기는 5분 이상 나눈 적이 없다. ‘이번에 돈이 좀 늦게 나올 것 같은데…’라고 눈치 보이는 요구를 하면, 성기 형은 ‘응, 신경 쓰지 마’ 식이었다.” 안성기는 발문에서 “장수하는 배우가 되려면 나를 잘 다스려야 한다”며, “관객의 입장이 되어 관객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으려면 배우는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배우 본인이 나태해지면 금세 표시가 난다. 나 같은 경우는 배우라는 일에 대해 불안감이 없었다. ‘1년에 한 편 정도 내가 할 영화가 어디 없겠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고 말한다. 조문진 영화감독은 배우 안성기를 놓고 “안성기는 노력 안하고 자신의 관리에 허술할 때 즉각 벼랑 밑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피부로 절실히 느끼고 있다. 때문에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려고 ‘남부군’(90)같이 일 년 가까운 시일이 걸리고 촬영하기에 힘이 드는 영화에 기꺼이 참여했다. 기쁜 마음으로. 힘 안 들이고 개런티 챙길 다른 작품이 줄을 섰건만, 안성기는 고생길을 선택했다. 겹치기 촬영을 신조처럼 거부하는 안성기는 ‘남부군’에 꼬박 일 년 매달림으로 해서 금전적 손해는 봤다. 하지만 간접체험하는 이득은 보았다”고 평하고 있다.

안성기는 ‘병사와 아가씨들’(77), ‘바람 불어 좋은 날’(80),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81), ‘만다라’(80), ‘고래사냥’(84), ‘겨울나그네’(86), ‘기쁜 우리 젊은 날’(87) 등 80년대까지 굵직한 연기로 영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후, 90년대 작품인 ‘퇴마록’(98)이나 ‘인정 사정 볼 것 없다’(98)부터 비중은 줄었지만 임팩트는 오히려 강한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킬리만자로’(2000), ‘무사’(2001), ‘실미도’(2003), ‘화려한 휴가’(2007) 등은 그가 그런 맥락에서 출연한 영화다. 그가 ‘무사’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정말 받고 싶은 상이었다”고 소감을 밝힌 것처럼, 그는 이제 배역의 크기보다 깊이를 더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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