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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성공한 영화배우들

배우 유지태·김해곤이 감독한 영화 2편 3월 20일 동시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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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호 이우인⁄ 2008.03.10 15:53:51

지난 3월 4일, 배우 유지태가 3월 20일 개봉을 앞둔 단편영화 ‘나도 모르게’의 기자시사회를 갖고, 무대 인사에 나섰다. 자신의 영화를 보러 와 준 많은 기자들에게 ‘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 대신 “단편영화인데 왜 이렇게 많이 오셨어요”라고 말하는 유지태. 쑥스러워 하는 그의 모습에는 자신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쏟는 기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서려 있었다. 그도 이날만큼은 다른 감독들처럼 수수한 의상 차림으로, 그 동안 많이 서 봤을 포토 타임에도 감독다운 미소로만 일관했다. 배우 유지태는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한 이래, ‘동감’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남극일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작품성 있는 영화들 속에서 그만의 독특한 연기세계를 펼쳐 왔다.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와 중앙대 영상예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유지태는 감독으로도 변신해, 2005년 ‘유무비’를 설립, 연극 ‘육분의 륙’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 등 두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며, 단편영화 ‘자전거 소년’(40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42분)로 각각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관객상, 부산아시아영화제 후지 필름상을 수상,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올해 선보이는 단편영화 ‘나도 모르게(out of my intention)’는 젊은 날의 사랑의 기억에 대해 섬세하고도 성찰적인 시선을 유지한 24분짜리 아주 짧은 이야기로, 배우 조안과 이대연이 출연해 감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차를 몰고 가는 한 남자(이대연). 그 옆엔 애인 옥경(조안)이 앉아 있다. 다툼 끝에 생긴 둘 사이의 문제를 힘들지만 풀고 가려는 옥경과 덤덤하게 묻어 넘기려 하는 남자. 삐걱거리는 두 사람의 관계는 그 누구도 모르게 흘러간다. 러닝타임 내내 한 남자의 표정과 옥경의 대사는 따로, 또 같이 이어진다. 이 모든 일은 옛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망상의 결과이다. 관객은 24분 간의 짧은 관람시간 동안 두 사람이 함께인지 아닌지에 대해 눈을 뗄 수 없다. 단편영화의 색을 그대로 띠고 있는 영화 ‘나도 모르게’.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였지만, 이 영화의 주제인 ‘첫사랑’에 대한 달콤쌉싸름한 감정 전달은 충분히 된 듯 보인다. 무엇보다 배우가 만든 영화라서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감독으로 변신 성공… 미국이 단연 1등 감독으로 변신해 성공한 배우가 많기로는 미국의 할리우드가 대표적이다. 찰리 채플린, 로버트 레드포드, 케빈 코스트너, 멜 깁슨 등등 배우로 성공한 많은 스타들이 감독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우리에겐 우스꽝스런 헤어스타일과 수염, 짙은 화장, 특유의 걸음걸이로 더 유명한 배우 찰리 채플린.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은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와 연기를 했다. 그는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후, 무성 영화에서 배우로 활약했다. 찰리는 ‘비에 흠뻑 젖어’라는 작품에서 감독으로 데뷔해, 그 동안 보여준 단순한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메리 픽포드 등과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라는 영화사를 세웠다. 또한, 방랑자를 소재로 한 영화 ‘황금광 시대’에서 그는 디테일이 살아 있는 코미디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모던 타임스’는 포드주의가 인간을 지배하는 산업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 걸로 유명하다. ‘독재자’는 나치즘과 파시즘을 풍자한 걸작이다. 찰리 채플린의 수많은 영화들은 세계 영화사에 굵은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한 작품들로, 그는 진정한 영화 예술가로서 존경받아 마땅한 배우 겸 감독·제작자이다. ‘추억’ ‘아웃 오브 아프리카’ ‘스파이 게임’ ‘클리어링’ 등 많은 영화를 통해 훤칠한 외모와 정감 가는 연기로 수십 년 간 여심을 녹여 온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또한 감독으로 제작자로 유명하다. 화가가 꿈이었던 로버트 레드포드는 콜로라도 대학을 중퇴한 뒤, 꿈을 이루기 위해 유럽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다 그는 무대미술 쪽으로 진로를 정해 미국 연극 아카데미에 들어갔는데, 곧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다. 1963년 브로드웨이 연극 ‘맨발로 공원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로버트가 영화에서도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6년 뒤인 1969년 폴 뉴먼과 공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감독 조지 로이 힐)’에서의 선댄스 키드 역이었다. 1973년 ‘스팅’을 통해 죠지 로이 힐·폴 뉴먼과 재회한 그는 아카데미와 흥행성적에서도 큰 성과를 보였다. 1969년에 그는 영화 ‘은색 레이서’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으며, 1980년에는 직접 감독으로 나선 첫 영화 ‘보통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또한, ‘밀라그로 콩밭 전쟁’과 ‘흐르는 강물처럼’ 등 인간적이면서도 사회성이 짙은 미국민의 삶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왠 다이아~(?)”의 감미로운 멜로디로 시작하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웬만한 영화 팬이면 다 아는 명작 ‘보디가드’에서 미녀 스타를 지키는 보디가드로 나와 그야말로 국내에 ‘보디가드’ 열풍을 일으켰던 주역 케빈 코스트너. 고교 시절, 전 미주 지역 선발의 스포츠 선수로 활약한 바 있는 케빈 코스트너는 캘리포니아 주립 프래튼 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다가 30일 만에 퇴사했다. 이후 그는 학생시절부터 꿈꿔 왔던 연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해 극단에 들어가 스테이지 매니저 겸 연극배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스테이시의 기사’를 통해 데뷔한 케빈은 PBS-TV 드라마 ‘성서’에서의 연기로 호평을 받고, 케븐 레놀즈 감독의 데뷔 작 ‘휀딩고’에, 그리고 1985년에는 카스단 감독의 서부극 ‘실버라도’에서 큰 역을 맡았다. 그를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나게 한 작품은 숀 코넬리와 공연한 ‘언터처블’ ‘노 웨이 아웃’이었다. 케빈 코스트너는 1990년 이색 서부극 ‘늑대와 춤을’의 각본·감독·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감독·각본을 포함해 7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한때 뒤로 살짝 묶은 꼬랑지 머리가 매력이었던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 멜 깁슨. 시드니의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한 멜 깁슨은 조지 밀러의 눈에 띄어 ‘매드 맥스’에 캐스팅됐다. 멜은 ‘매드 맥스’의 대흥행으로 세계적인 톱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후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 ‘리쎌 웨폰’ 시리즈와 여장으로 분한 로맨틱 코미디 ‘왓 위민 원트’, 서스펜스 스릴러 ‘랜섬’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폭넓은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톱 스타 배우인 멜 깁슨은 ‘브레이브 하트’를 감독·제작하고 직접 출연해 이 작품으로 10개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됐고, 작품상·감독상 등 총 다섯 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다. 그 후로도 그는 비운의 음악가 베토벤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불멸의 사랑’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부른 주제곡으로 더욱 유명한 ‘왓 위민 원트’,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사랑을 위하여’ ‘페이백’ 등을 제작해, 감독과 제작자로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감독 일 탐내는 국내 배우들 미국에 찰리 채플린이 있다면, 국내에는 ‘영구 없다(?)’의 심형래가 있다.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심형래는 전국 400만 명의 관객동원에 성공한 SF 영화 ‘우뢰매’로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는 이후 ‘영구와 땡칠이’로 서울 관객 동원만 200만 명이 넘는 흥행 돌풍을 일으켰으며, 이와 같은 어린이용 영화의 흥행 성공을 통해 어린이들의 우상으로 자리 매김했다. 1988년 '영구 아트무비'를 설립한 그는 10년 간 아동용 SF 영화제작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국내의 첨단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를 헐리우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일조했다. 1999년에는 ‘용가리’를 완성했으며, 지난해 개봉과 함께 작품성 논란이 일기도 했던 SF 대작 ‘디워’로 842만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해 개봉된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기록했다. 또한, 이 작품은 같은 해 9월 14일 미국 전역 2,275개 스크린에 개봉돼, 개봉 첫 주말 504만 달러의 흥행기록을 남겼다. 영화배우보다는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으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는 배우 김해곤. 실제로 그는 직접 쓰고 만든 작품보다 배우로 출연한 작품이 더 많은 감독이다. 안양예고를 졸업한 김해곤은 고등학교 시절 극단 ‘춘추’에 입단하면서 연극계 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 ‘장군의 아들’ 오디션에 합격해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이후 ‘게임의 법칙’ ‘개같은 날의 오후’ ‘본투킬’ ‘남자의 향기’ ‘태극기 휘날리며’ ‘달콤한 인생’ 등등 많은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김해곤은 1998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보고 싶은 얼굴’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강제규 필름 ‘블루’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최민식과 홍콩 배우 장백지가 출연한 ‘파이란’도 그가 쓴 작품이다. 또한, 김해곤은 2006년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감독으로도 데뷔했으며, 톱 스타 송승헌·권상우의 숙명적인 대결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그의 두 번째 감독 작 ‘숙명’이 오는 3월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철수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301, 302’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방은진은 1995년 청룡영화제, 춘사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확실한 연기의 선을 가진 배우로 유명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반에서 활동한 방은진은 1988년 국민대 의상학과 졸업 후, 연극과 TV 드라마를 거쳐 1994년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녀는 1998년부터 단편영화의 조감독 등 스태프로 참여해 감독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파출부, 아니다’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 ‘떨림’ ‘위풍당당 이유’ ‘첼로’ 등의 장편영화도 시도했으나, 제작의 단계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장편영화 감독 데뷔에서 좌절감을 맛본 방은진은 강우석 감독의 추천을 받아 ‘입질’이란 시나리오를 각색한 범죄 스릴러 ‘오로라 공주’로 2005년 10월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해,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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