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화 화백 1980 인천 부평고등학교 졸업 198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93 파리 국립 Ⅷ대학 조형예술학과 학사 1994 파리 국립 Ⅷ대학 조형예술학과 석사 개인전 2008 한국구상대제전, 예술의 전당 2007 e-space 기획초대전, 상하이-중국 100인의 아트 스타전, 코엑스 한국구상대제전, 예술의 전당 2006 갤러리 상 초대전, 서울 한국구상대제전, 예술의 전당 2005 갤러리 성 초대전, 대전 한국구상대제전, 예술의 전당 2004 에쿠아도르 초대전, 에쿠아도르 갤러리 상 기획 초대전, 서울 2002 갤러리 상 기획 초대전, 서울 2001 앙가쥬망전, 예술의 전당 2000 갤러리 상 기획 초대전, 서울 신세계갤러리 초대전, 인천 1999 갤러리 상 기획 초대전, 서울 신세계갤러리, 인천 인천 미술박람회 iaf, 인천 1998 갤러리 상 기획전, 서울 세명갤러리 개관기념 초대전, 인천 1997 갤러리 상 기획전, 서울 1996 나화랑 기획전, 서울 동아갤러리, 인천 1995 인데코 갤러리, 서울 하나갤러리, 서울 1994 갤러리 베르나노스 기획 초대전, 파리 예술의 전당, 서울 동아갤러리, 인천 1993 샤띠옹 시 초대전, 프랑스 1992 바드나우하임 초대전, 독일
만남을 갖다 - 사랑방에서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응접하던 사랑방(舍廊房)은 쉬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큰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꾸밈에도 가장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잘 다듬어진 보료와 문갑·책상·다기 장·서안 등이 반듯하게 놓여 있는가 하면, 두루마리를 보관한 고비가 사랑방의 여유로움을 한층 더해준다. 시인·묵객들의 예술적 교류가 오가던 특별한 장소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냈던 사랑방은 그러나 낯선 손님이 하룻밤 유숙을 청할 때 거절하지 않고 묵어갈 수 있도록 내주던 배려 깊은 공간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 사랑방은 낡은 무성영화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아득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포장되어 흔적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라진 것들을 찾으라면 기실 사랑방뿐이랴. 아쉬움을 남긴 수없이 많은 것들 가운데 유독 사랑방에서 묻어나는 들꽃 같은 부드러움과 수묵화의 그윽한 향내를 작품의 소재로 이끌게 된 힘은, 풀과 나무는 저 스스로 자기만의 꽃을 피우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당당함 때문이었다. 솔바람에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풀일지언정 그 빛과 색이 부리는 조화는 무녀의 칼끝보다 날카롭고 남사당패의 장단보다 더 쩌렁쩌렁한 울림을 지녔다. 나에게 새롭게 보는 법과 듣는 법을 귀띔해준 가녀린 풀의 흔들림, 그것은 숲과 늪지를 따라 카메라 렌즈를 맞출 때는 만날 수 없었던, 직접 눈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저만의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형체라는 덩어리를 걷어내고 기다린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재현하던 시선에서 벗어나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현상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최대한 살린 들꽃을 가장 자연스런 재료에 얹어 융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작업에서도 충분히 설명되었으리라는 생각이지만, 근작에서 보이는 엉겅퀴·구절초·채송화·나팔꽃·진달래 등은 나무와 물과 흙을 그리던 2000년 이전의 작업에 뿌리를 두고 피워낸 꽃이기에 그 생명력은 더 강건해 보인다.
인연을 만들다 - 화실에서 십여 년 동안 화실 모퉁이에 놓여 있던 오래된 재료들을 들추어 작업에 맞는 소재를 찾았을 때는, 그리워하면서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났을 때와 같은 반가움과 설렘처럼 흥분되곤 한다. 여행길에서 구한 낡은 나무와 부식된 철판, 문짝만 남아 있는 찌그러진 고가구의 서랍, 광을 뒤져서 찾아낸 손잡이가 달아난 삽, 오랜 세월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왔을 소담스런 밥상, 나의 작업을 위해 먼 곳으로부터 지인들이 보내온 소품들까지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든 자재들로 나의 화실은 항시 어지럽다. 그러나 나는 늘 그것들을 곁에서 바라보고 같이 호흡하며 한결같은 관심을 기울인다. 때론 아무런 판단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지켜봐야만 할 때도 있다. 생명은 그곳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명-긴 호흡>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던 시절, 주변 사람들은 철판에 그린 유화 작품에 적잖은 우려를 표명했었다. 철판이 더 심하게 부식되어 작품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십여 년이 흘러도 부식된 철판은 생명을 담은 하나의 작품으로 건재했을 뿐 아니라, 세월의 무게를 더해 오히려 열매를 더 잘 여물게 하는 나무처럼 나의 작업실에서 너무도 당당히 빛나고 있다. 있을 자리에 있어야 어울리는 사랑방 가구처럼 말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절대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색채의 절규에 동화되어버린 몇몇 작품들 이후 나는 그만 오랜 휴식을 취하고 말았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을 핑계 삼아 별다른 결과물 없이 시간을 그렇게 훌쩍 넘겨버렸다. 넘어설 수 없는 선에 갇힌 채 선의 유희를 바라보다 선과 함께 리듬을 타버린 작품도 있다. 그러면서 욕망도 편견도 없이 혼자 천천히 일어서 그 동안 내게 모범답안으로 제시되었던 자연을 이번에도 조건 없이 믿기로 했다. 나무는 결을 다듬고 소재와 어울리는 여러 번의 밑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마음에 드는 색을 얻는다. 결코 단 한 번도 원하는 결과를 단숨에 얻지 못했다. 수일이 걸릴 수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던 지루한 기다림… 화실 중앙에 펼쳐 놓고 오가며 그것들에게 수십 번의 눈길을 주어야만 비로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나무 함지에 색을 내기 위해서는 황토를 개어 마를 때까지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야 한다. 불필요한 것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재료와 소재의 최소화를 기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필요한 것들을 찾다보면 궤도에서 지나치게 멀리 이탈하기 쉬운 까닭이다.
발견으로 생명을 얻다 100호에서 500호 사이의 작품에 혼신을 쏟으며 열정을 불사르던 젊음도 점차 세월에 녹아들고, 이제 조용한 움직임들만 남았다. 그래서 이미 폐품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여러 형태의 재료에 눈길을 주고 닦아내며 애정을 쏟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은 창조가 아닌 발견’이라는 피카소의 표현에 무게를 싣지 않더라도, 나의 발견으로 인해 그것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재창조의 작업을 하게 되었으니,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작품의 재료로 쓰인 물건들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이미 멀어졌던 것들이라 수선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그것들과 나는 더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것들의 역사를 유추해 그 쓰임새를 찾아내는 것 또한 작업의 한 과정이자 해석이 된다. 특별한 기술로 만들었을 리 없는 서민들의 오래된 물건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것들끼리도 서로 조율하고 융화되면서 스스로 제 자리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를 염려하면서 나무의 결 속으로 유화물감이 스며들고, 부식된 철판 위에서 더 뚜렷하게 선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것 또한 세월에 녹아든 저들만의 생존방식이리라. 작품에 유독 ‘인연’, ‘약속’, ‘만남’과 같은 제목이 붙는 것도 관심 밖에 있던 물건들이 내게로 와 또 다른 생명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행색을 한 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줄 줄 아는 사랑방 같은 친구가 있다. 그가 내준 사랑방에 모여 술잔을 기울일 여럿의 친구가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또한, 나를 위한 나만의 날에 벗이 찾아들게끔 사랑방을 멋스럽게 꾸며주는 아름다운 사람들… 자연이 나를 품어준 은혜 이상의 고마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