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木乙, Lee Mok Ul 개인전 기획초대 개인전 23회 국제아트페어 12회 - 시카고,마이애미, NICF, 상하이, 싱가포르 한국아트페어 10회 - KCAF, 서울아트페어, SFAF 단체전 2008 다카르비엔날레(다카르,세네갈) 비움과채움(N갤러리,서울) 월간조선 평론가 선정 55인전(예술의전당,서울) 2007 Painting on wood전(통인갤러리, 서울) IN BLOSSOM(아소갤러리, 서울) KOREA HYPEN REALISM(LM갤러리, 서울) 38ARTISTS전(갤러리 엠포리아, 서울) 2006 여섯 개 방의 진실(사바나미술관, 서울) News Art(Viridian갤러리, 미국) 2005 Cross Puzzle(acc Gallery, 뉴욕) Connection(space world, 뉴욕) 2004 한국미술의 방법과 표현전(베이징 중앙미술관, 중국) 한국미술 100+1전(Jaisohn Center, 미국) Object & Object전(가나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3 한국미술 12인 초대전(Forum갤러리, 독일) Best Star & Best Artist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한국의 미, 그 아름다움전 (조선일보 미술관, 서울)
까치 한 마리/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엿보고 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어떻게 깨뜨리고 오를 것인가./문 열어라, 하늘아./바위도 벼락맞아 깨진 틈새에서만/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문 열어라, 하늘아. 시인 오세영은 시집 ‘문 열어라 하늘아’(서정시학)에 수록한 ‘은산철벽’에서 자신을 높은 미루나무 가지 위에서 하늘을 향해 호령하는 한 마리 까치로 비유했다. 木乙. 화가 이목을은 자신을 나무에 앉아 있는 새, 목을(木乙)이라 했다. 어느 날 화가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창 밖을 보다가 만난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 그 새 한 마리는 화가의 붓을 나무 화폭 위로 이끌었다. 살아온 날들만큼 동그랗게 두른 나이테와 뽀얗던 살덩어리가 세월의 두께만큼 익어간 나무, 그리고 장인의 투박한 손길로 만져졌을 나무에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인연을 느끼고 공력(功力)을 느낀다. 나무 화폭. 그 위에 작가가 펼쳐내는 세계는 결코 나무를 누르지 않아야 한다. 나무가 작가를 밀어내도 안 될 것이다. 작가는 ‘살포시 올려놓아야 한다’고 표현했다. 이목을의 오브제들은 그래서 작가가 ‘살포시 올려놓은’것들이다. 한 마리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을 때 결코 나뭇가지는 새를 밀쳐내지 않는다. 살포시 올려놓을 뿐이다.
이목을은 정물화를 주로 그린다. 그의 작품은 정물화, 그것도 누구나 접해보았을 법한 소재들이 주가 된다. 극사실적인 요소와 설치작업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초현실주의적인 느낌도 드는가 하면, 웅장한 빛과 엄숙한 그림자의 바로크 미술도, 몬드리안의 간결한 신조형주의도 떠올리게 한다. 반갑고 익숙하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면 그의 작품의 가치가 덜해졌을 것이다. 그가 반복하는 반복의 어법은 같은 소재를 계속 새로이 재생산한다. 인생도 자연도, 그리고 예술도 반복이며 돌고 돈다.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바람을 느끼고 맞이한다. 어제의 태양이 오늘의 그것이 아니며, 겨울에 죽었던 나뭇가지에서는 새순이 움튼다. 의미 없이 맞이하고 또 지나버린다면 그 인생은 자연은, 그리고 예술은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이와 같이 이목을이 맞이하는 화폭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같은 사과만을 올려놓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에게 먼저 버림받을 것이다. 허나, 작가는 오늘도 그가 만나는 사과가 반가우면서도 황홀하게 생소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色)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 뿐 아무 것도 아닌 공(空)이다. 허상이며 그림자다. 그러나 또한 색을 드러나게 하는 것도 공이며, 이목을의 작품은 허상과 그림자로 색(色)을, 비움을 통하여 가득 차 있음을 공(空)으로 부각시킨다. 가득 차서 넘치고 넘쳐 떨어져 나오기도 하는가 하면, 텅 빈 공간, 그리고 그림자와 빛. 무엇이 있기에 무엇이 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선하다. 空. 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우리가 짐작은 하지만 가보지 않은 곳, 그곳으로 그들은 날아간다. 우리가 짐작은 하지만 알지 못하는 곳, 이목을의 작품이 구획해 놓은 사각의 공간들은 우리가 가지 못하고 가지 않으며 알지 못하는 곳들이다. 가득 차기만을 바라고 바둥거리는 삶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기를 두려워한다. 깨진 바위의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리는 경이로움을, 비어 있음에서 차오르는 것을, 차오른 것이 허망할 것을, 그러나 그 허망함 속에서 움트는 기운을 그는 빚어내고 있다. 空은 영원함이다. 補色. 색이 있어 공이 드러나고 공이 있어 색이 발현되듯, 보색의 관계는 상극의 색채가 만나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강렬한 시각 작용을 통하여 정신적인 감응을 유도한다. 진실로 그의 색채는 붉은 색이 녹색의 선명한 대비로 인하여 더욱 붉고, 녹색은 붉은 색이 있어 그 빛이 현란하다. 이러한 현란한 색채는 실재감을 두드러지게 하면서도 사실이 아닌 무엇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지 않는가.
서양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경이롭게도 사실감이 넘치는 정물화들, 바로크 미술에서 보는 빛의 효과와 어두움의 엄숙하고도 장엄함,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설치작업과 개념미술, 동양화와 서양화의 혼재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소에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도 흔히 보았던 사과라든가 대추 등을 소재로 하는 정물화 혹은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 그의 그림에는 분명히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함이 있다. 이 익숙함은 식상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풍의 한계를 어떻게 깨뜨리고 어떻게 오를 것인가. 은산철벽의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엿보는 한 마리 새처럼 비어 있음을 채움으로, 채움을 비어 있음으로 그 철학을 적셔내기에는 고독한 정진이 있어야 할 터이다. 수행의 반복과 정진의 결정체를 맺혀내는 작업의 결과만이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이목을의 세계에서 꿈틀거리는 자아와 세계관은 바로 이 色의 세계가 절제되고 정제되어 만들어내는 空의 공간이며, 얼마든지, 언제든지 때가 되면 깨뜨리고 오를 氣가 생동하는 空의 세계는 작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그러나 익숙했던,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오묘한 진리와 철학의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