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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死傷者法을 아시나요”

의사상자법…타인 생명 구하다 죽거나 다친 의인 국가에서 보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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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2호 박성훈⁄ 2008.09.02 16:13:38

“2006년 5월 도쿄 시내 JR 신오쿠보역에서 정신을 잃고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여대생을 몸을 던져 구해낸 한국인 유학생 신현구 씨의 선행이 일본열도를 감동시켰다. 2001년 고 이수현 씨가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사건과 거의 동일한 사건이다. 신 씨는 이날 전철을 타고 닛포리역의 학교로 가던 중, 화장실에 가기 위해 신오쿠보역에서 우연히 내렸다가 철로에 떨어진 여성을 보았다고 한다.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여성을 구한 신 씨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역을 나와 200m 정도 걸은 뒤 목적지로 향했다고 한다. 신 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만 남겼다고 전한다.” 한국인 일본 유학생 신현구 씨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언론의 보도를 조합한 내용이다. 사건 당시 아사히와 마이니치·산케이·고베·호쿠리쿠 주니치·교토 등 일본 전역의 주요 신문들은 신 씨의 선행을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특히, 신오쿠보역은 고 이수현 씨가 의로운 목숨을 던져 살신성인한 역이어서 일본 사회는 “제2의 의인이 탄생했다”며 감동했다. 일본의 혐한류(嫌韓流) 기세를 단번에 잠재운 신 씨와 고 이수현 씨의 의사(義事)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크나큰 교훈을 준다. 그것은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이다. 인명은 세상의 어느 가치보다도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 의사상자 보상 법적 명시 국내에서는 고 이수현 씨와 같은 의사상자(義死傷者)들에 대한 보상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사상자란 자신과 상관없는 직무임에도 급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자신의 위험보다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의사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의사상자법’)이 2007년 8월 3일부로 전면 개정됐다. 올해 2월 4일부터는 일부 개정을 거듭하면서 사망뿐 아니라 경미한 부상을 입은 의상자도 보상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분류된 등급에 따라 보상이 가능해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3일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다가 가벼운 부상을 입은 사람도 의사상자로 인정하는 등 의사상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 관련 개정 법률이 4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의사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의상자의 부상등급이 6등급에서 9등급으로 확대됐고, 타박상이나 찰과상 등 가벼운 부상을 입은 사람도 의상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사람을 구조하다 지니고 있던 물건이 훼손되면, 이를 수리하거나 교환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이 이뤄진다. 아울러, 후유증 등으로 부상이 악화된 의상자를 위해 부상등급 변경 제도도 신설됐다. 이들에게는 국가적 차원의 예우와 지원이 이뤄지고, 최고 1억9700만 원의 보상금과 함께 의료급여 혜택이 제공되는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 법 제정 이후 의사상자 525명 우리나라에서도 의사상자가 적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의사상자는 2008년 8월 현재 525명(의사자 371명, 의상자 154명)에 이른다. 올해에만 3월과 7월에 걸쳐 2회의 의사상자 심사위원회가 열려 19명의 의사상자가 수혜를 받았다. 이 중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만 보자면 다음과 같다. 경남 거제시가 의상자로 선정한 대우조선해양 탑재1팀 김상건 씨는 2007년 2월 4일 밤 12시께 거제시 사등면 새거제주유소 앞 도로에서 사고차량을 발견하여 2명의 부상자를 구호하던 중 사고현장을 덮친 다른 차량에 의해 다리골절 등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 가해차량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어 이 정도 부상에 그쳤지만,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김 씨는 “남을 돕다 보면 다칠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이 같은 사고현장을 또 보게 되면 구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야영장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야영객의 목숨을 구하다가 화상을 입은 대학생 이동한 씨도 경북 청도군으로부터 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 씨는 2007년 8월 영천 신녕면 치산리 수도사 인근 계곡 야영장에서 야영하던 중 인근 텐트에서 발생한 화재를 목격하고 텐트 안에서 잠자던 야영객 1명을 구하다가 모기퇴치용 홈키퍼가 과열 폭발해 화상을 입었다. 이 일로 이 씨는 의상자 6등급으로 결정됐다. 의상자로 선정된 김 씨와 이 씨에게는 ‘의사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정의 보상금과 의료급여 혜택이 제공됐다. 정동남 한국구조연합회장은 의사상자법에 대해 “다른 이를 돕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며 “일반인들도 인명구조에 자발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달양 해난인명구조소장은 칼럼에서 “범인을 잡는 경우 또는 수난인명구조시 용감한 시민 상을 수여하거나 포상금을 지급하고, 생명을 잃는 경우에는 보상금 지급 등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며 “민간차원의 자원봉사자를 자발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 정부 홍보 부족…의사상자 자신도 몰라 그러나 의사상자법은 국민들 사이에 홍보가 되어 있지 않아 의사상자들마저 제대로 알지 못해, 의로운 일에 사고를 당하고도 수혜를 받지 못하는 의인들이 여전히 많다. 서해안의 해수욕장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하던 한 청년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가 자신도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응급조치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으나, 병원비는 그의 부담이었다. 의사상자 수혜를 받을 경우 정부가 진료비를 지원해준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해외 자연재난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안전사고를 당한 사람들 중에도 의사상자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지난 5월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현장을 방문해 구호활동을 펼친 정동남 회장은 “한 대원이 콘크리트 덩이가 발목에 떨어져 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입었다”며 “하지만 의사상자법을 알지 못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사고 현장은 여진이 계속돼, 구호활동 중에도 크고 작은 건물 잔해들이 떨어지는 등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의사상자법이 생겼음에도, 해당 정부부처나 지자체에서 우리와 같은 민간 인명구조단체에게 홍보나 보상절차에 대하여 설명 한마디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상황이 이러한데 다른 단체나 일반인들이 의사상자법에 대해 제대로 알리 만무하다”며 법안 홍보가 미흡한데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법이 처음 제정된 시기는 1970년대이고 당시에는 재해현장에서 구호활동을 벌인 사람들에 한해 의사상자 보상을 해 왔음에도, 이를 몰라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며 홍보의 필요성을 환기했다. ■ 구조자 - 수혜자 법적 싸움… 목숨 구하고도 ‘나 몰라라’ 일반인이 인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법적 갈등이나 수혜자 측의 이기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법적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사람이 크게 다쳤더라도 주변에서 선뜻 도움을 주는 일은 많지 않다. 특히, 뺑소니 사고에서는 더욱 그렇다. 태안 등지에서 해양구조활동을 벌이던 한 자원봉사자는 익사 직전의 사람을 구한 뒤 엠뷸런스를 부르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물에 빠져 숨을 쉬지 않는 환자에 대해 5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지 않으면 사망 혹은 식물인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는 결국 의식을 깨어나지 못했고, 엠뷸런스는 5분이 한참 지나 도착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 자원봉사자는 의로운 일을 하고도 법적 싸움에 말려들었다고 한다. 타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음에도, 의상자를 방치한 채 자리를 뜨는 파렴치한 경우도 종종 있다. 현재 지하철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 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씨는 철로변에서 아이의 목숨을 구한 의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2003년 7월 서울 경부선 영등포역 플랫폼에서 열차에 치일 뻔한 10세 가량의 아이를 구하고 왼쪽 발목과 오른쪽 발등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김 씨 덕에 목숨을 구한 이 아이는 사고 직후 어머니와 함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의를 표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정동남 회장은 “의로운 일을 하고도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종종 있다”며 “이로 인해 일반인들이 섣불리 인명구조에 나서기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이 고맙다는 말을 듣자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구하다가 다친 사람을 모른 척하는 일을 누가 용납하겠느냐”며 ‘김행균 사건’의 아이 엄마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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