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재정악화로 논란을 빚어왔던 공무원 연금의 개혁안이 24일 확정됐다. 정부 측에서는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무원 개인이 부담해야 할 비율을 현재 과세소득의 5.525%에서 7%로 인상하는 방안과 퇴직 후 받게 될 연금지급액을 30년 재직할 신규공무원을 기준으로 25% 인하하는 방안이 이번 개혁안의 주요 내용이다. 변동 폭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래서 '더내고 덜 받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신규공무원부터는 연금 지급연령을 현재 60세에서 65세로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연금 수급 기준도 최종 3년간 보수월액 평균에서 전 재직기간 기준소득 평균으로 전환했다. ■ 2012년부터 원점…2018년 적자 6조 원 지금까지의 방만한 공무원 연금 운영으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필요한 국민세금이 수 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이번 개혁안을 통해 앞으로 5년간 세금 충당 공무원 연금 적자 규모를 현재 연평균 2조 7,000억 원에서 1조 3,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번 개혁안이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고령화로 인해 연금 수급인원이 계속 늘어, 2012년을 기점으로 적자 보전금이 다시 증가해 오는 2018년에는 6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연금부담금과 퇴직수당까지 더하면 정부의 총재정부담은 내년 4조 9,000억 원에서 2018년에 13조 6,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연금을 일시불이 아닌 매달 일정액을 타려는 추세도 원인 중 하나다. 적자를 면하려면 공무원들이 기여금을 지금의 4배 이상 내야 하지만, 정부는 이를 세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공무원 연금의 정부 부담이 다른 선진국의 수준에 비해 낮기 때문에, 세금을 더 투입하려는 것이다. 위원회는 공무원연금 재정의 균형을 맞추려면 총 보수의 22%를 기여금으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연금 적자를 공무원에게만 부담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공무원단체들은 공무원에게만 인내를 강요하는 개혁방식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며 개혁안 수용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번 개혁안이 악화된 재정을 메우기 위한 단기 처방인데다,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시행에 진통이 예상된다. ■ 여전히 국민연금보다 월등히 유리 개혁안에 따른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여전히 크게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금지급률 인하폭이 예상보다 낮게 정해지는 등 개선의 강도가 약해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유리한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크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연금지급률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공무원연금의 연금지급률은 현행 과세소득 기준 2.12%에서 1.9%로 낮아진다. 공무원연금의 재직기한 상한인 33년을 기준으로 하면 연금지급률이 현재 76%에서 62.7%로 낮아지는 것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연금지급율에서 국민연금은 올해 50%(40년 가입 기준)지만 내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하향 조정된다. 2028년에 이르면 40%가 된다. 국민연금의 연금지급률은 연간 1%로 공무원연금(1.9%)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기준소득액이 월 300만원인 연금가입자가 내년 국민연금에 가입한 뒤 20년간 보험료를 납부하고 18년5개월 동안 연금을 수급한다면, 6480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총 1억1563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월 수령액은 52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같은 조건으로 공무원연금에 가입한다면 9936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총 2억5194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월 수령액은 114만원이다. 결국, 공무원연금의 연금지급률은 국민연금보다 여전히 훨씬 높다. 공무원연금의 ‘특권’은 기준소득월액 산정에서도 나타난다. 국민연금은 신고한 소득월액이 22만원보다 적으면 22만원을,360만원보다 많으면 360만원을 기준소득월액으로 한다. 많이 버는 사람이 덜 받고 적게 버는 사람이 더 받는 ‘하후상박(下厚上薄)’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완전한 소득비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소득월액의 차이에 관계없이 연금을 받는다. 따라서, 소득월액이 360만원 이상이라면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이용하 박사는 한 언론을 통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을 특권 계층으로 간주해 소득 재분배에서 빼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라며 공무원 연금과 국민연금에 차이가 없어야 함을 강조했다. ■ “공무원연금, 신분 불이익에 대한 보상” 대다수 국민들이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에 따른 공무원연금제도의 개혁요구가 거셌지만 발전위는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공무원 신분상 제약 등으로 인한 불이익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일률적 비교는 어렵다는 것이다. 발전위는 "공무원은 업무 특성상 파업?태업 등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등 노동3권의 제약으로 민간에 비해 보수수준이 불리하다"며 "영리활동 및 겸직이 제한되고 재산등록과 재산공개 등 재산형성에도 각종 제한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험 형태의 연금제도인 반면, 공무원연금은 정부가 공무원이 장기간 국가를 위해 봉사?헌신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인사정책적 측면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은 퇴직금이 민간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국민연금에 비해 연금보험료 부담액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특수성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퇴직금?산업재해보상?기여금?보수 등을 감안하면 공무원 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발전위에 따르면 공무원 보수는 민간의 90%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고, 민간의 퇴직금은 재직기간에 따라 평균임금의 100%를 지급하지만 공무원의 퇴직수당은 평균임금의 최대 40% 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에 비해 연금보험료 부담액도 약 1.6배 가량 높고 산업재해보상 부분이 연금에 포함돼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발전위는 설명했다. 이에 반해 보험료 대비 연금으로 돌려받는 비율은 국민연금이 3.2배인데 반해 공무원연금은 2.7배에 불과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은 개인이 1억900만원을 내면 연금총액과 퇴직수당을 합친 총퇴직소득으로 3.2배인 3억5600만원을 받지만 공무원은 1억6800만원을 내면 총퇴직소득으로 2.7배인 4억6800만원을 받게 된다. 발전위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이 내는 보험료는 우리나라가 보수월액의 7%로 미국(6.1%), 일본(7.3%) 등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정부 부담률은 미국 28.6%, 프랑스 53%로 주요 외국의 정부부담률이 우리나라(12.3%)보다 훨씬 높다. 한 공무원은 "공무원연금은 공직에 있는 동안 영리행위 금지와 노동3권 등 기본권 제한, 낮은 처우수준 등 어려운 근무여건에서도 공무원들이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며 "사회보험 형태의 국민연금과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 ‘조금 더 내고, 거의 그대로 받는’ 개혁안 바뀌어야 1960년 연금제도 도입 후 개혁다운 개혁 없이 지금까지 흘러온 게 공무원연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처음 개혁을 하겠다며 제시한 보험료와 지급률이 ‘조금 더 내고 거의 그대로 받는’ 수준이다. 물론, 연금 개혁이 손바닥 뒤집듯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또, 어느 한 세대의 희생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5~10년 단위의 반복적 개편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번 건의안의 또 다른 특징은 현 세대의 부담을 최대한 줄인 대신 미래 세대의 부담을 크게 높여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현재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대폭 완화 혹은 해소하기보다는 최대한 뒤로 미뤄두는 데 초점을 맞춘 꼴이다. 물론 이번 개편안은 그야말로 건의안일 뿐이다. 아직 최종 확정까지는 공청회, 국무회의, 국회 심의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정부안 확정 과정에서, 국회는 관련법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이번 개혁안이 정부 측에서 홍보한 대로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보완해야 한다. 작년에 국민연금은 크게 손질해 놓고도 공무원연금은 이런 식으로 넘어간다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일부 집단의 지지를 지키려다 자칫 전 국민적 지지를 잃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