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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책임관’ 있으나마나

국어기본법 유명무실, 정부기관·지자체 홍보담당관 등 비전문가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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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7호 박성훈⁄ 2008.10.07 15:59:12

공공기관의 보도자료나 홈페이지의 게시글에서 오류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간기업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이다. 국립국어원이 2006년 한 해 조사한 공공기관의 국어사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례별로는 외래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곳에 외래어를 남발하고, 지나치게 어렵거나 생소한 표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문장 호응이 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과 영어번역투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국어책임관의 임무는 바로 이런 잘못된 부분을 사전에 찾아내 바로잡는데 있다. 국민의 국어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여러 조사에서 알 수 있다. 한국인의 문해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해 있다. 2005년 7월 취업 알선 업체 잡코리아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신입사원 10명 중 1명에 대해서만 국어능력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어기본법이 만들어졌고, 벌써 법 제정 4주년이 다 돼 간다.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로 급변하는 언어 환경 속에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과 올바른 국어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이 바로 국어기본법이다. 국어와 관련된 제반 내용을 포함한 국어기본법을 잘 뜯어보면, 유독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의 올바른 국어 사용을 돕는 ‘국어책임관’에 대한 규정이 있다. 또, 국어기본법 제19조와 시행령에는 ‘공공기관에서 올바른 국어사용을 위한 사업의 계획과 추진, 국민의 언어문화 향상에 이바지할 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목적으로 한다’고 국어책임관의 지정 사실과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국어 사용 책임을 강조한 이유는 공공기관이 국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국민의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국어책임관을 두고 있는 기관이 적지 않으나, 취지에 맞게 역할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은 임의조항으로 돼 있는 국어책임관 설치 규정을 의무조항으로 바꿔 국어 전공자를 두도록 하는 쪽으로 법률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설치 대상에 입법기관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국어책임관’에 국어전문가 없다? 사실, ‘국어책임관’이라는 직책은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하기도 하다. 국어책임관은 공공기관의 한글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기본법의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은 국민이나 지역 주민들에게 알릴 정책을 정제된 국어 사용을 통해 간단 명료하게 알리고, 공무원들의 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일을 맡고 있다. 기관 내에서 문서나 자료를 작성할 때에 알기 쉬운 용어를 개발하여 활용하고, 정확한 문장을 사용하도록 교육하기도 한다. 공공기관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쏟아지는 정책과 시책에 대한 보도자료와 각종 공지사항이 국어정책관들을 통해 보다 이해하기 쉽게 쓰여지는 것이다. 국어책임관에 대한 조항이 발표되면서, 2005년 당시 학계에서는 국어전문인력이 공공기관에 대거 채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국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해야 할 국어책임관들이 국어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인력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취지에 어긋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어기본법 10조 1항에서는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어의 발전 및 보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책임관을 그 소속 공무원 중에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 중 국어책임관을 뽑는다는 말이다. 현재 국어책임관에는 중앙정부기관의 홍보담당관이나 광역·기초자치단체의 문화예술과장·공보관·문화관광과장 등이 지정돼 활동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박용찬 팀장은 “국어전문가들이 채용돼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공무원들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도자료 등 대외적 자료가 홍보과를 거치기 때문에 담당하는 분이 겸직한다”며 “기관 내 직원들을 교육하거나 올바른 국어 사용을 장려할 수 있는 상위 직급자들이 맡게 된다”고 전했다. ■ 학계, 비전문가 임용 문제 지적 학계에서는 국어 전문가가 아니라 기존 공무원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공기관 내 국어 순화로 관료사회와 일반인의 연결통로 역할을 하는 게 국어책임관이다. 이 같은 사명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 국어책임관에 임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학용어 현대화 작업에 참여한 바 있는 숭실대 장경남 국어국문학 교수는 “국어책임관을 임명하기로 한 취지 자체가 관료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게끔 하려는 것”이라며 “국어에 대한 식견을 갖추지 못한 공무원을 국어책임관에 임명하는 것은 애초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관료사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은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받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이를 현대화하고 보다 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도울 수 있는 전문가가 국어책임관에 임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학 전문가인 숭실대 박종철 교수는 공무원을 국어책임관에 임명하는 일 자체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관료사회의 권위주의가 강한 후진국일수록 공공기관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일반시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려면 더 쉬운 어휘를 개발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규익 한국전통문예연구소장(국문학)은 “한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관련성도 전혀 없는 각 기관의 홍보담당관이 국어책임관을 겸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 라고 지적했다. 경남대 김혜영 국어교육과 교수는 “국립국어원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언론외래어순화자료집’등을 국어책임관을 통해 대량 배포하거나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어책임관에 대한 연수를 강화하고 자료 제공을 활성화하려면 직급을 낮추더라도 실제 인터넷 활용도 등을 감안한 활동성 있는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홍보담당관하랴’ ‘책임관 하랴’ 이중업무 고생 국어기본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어서야 광역 지방단체까지 국어책임관의 임명이 완료됐으나, 현재의 국어책임관 제도도 무용지물에 불과한 실정이다. 심지어, 중앙 부처나 전국 지자체에 국어책임관이 지정돼 있으나, 공무원들조차 모르는 경우도 발견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직원 대상 외부 초청 강연회를 갖거나 올바른 우리말 쓰기 관련 자료집을 내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상당수는 “축제의 계절이라 국어책임관 업무에는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일부 시·군에서는 “솔직히 국어 관련 사업이나 정책을 펴도 단체장 등 윗사람들에게 표가 나지 않아 뒷전으로 밀린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국적으로는 지난달 광역 지자체 국어책임관 회의를 열기도 했지만, 기초 자치단체 책임관들은 한 해가 가도 회의를 한 번도 개최한 적이, 없고 안팎으로 공문을 주고받는 일조차 없다고 한다.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국어책임관의 존재를 알 길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국어책임관이 제 역할을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존의 홍보담당 부서장 직에다 책임관 업무를 추가로 맡아 이중 업무를 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국어책임관을 맡은 공무원들이 바쁜 가운데 맡게 돼서 사실 어려움이 많고 왜 우리 부서가 맡게 됐느냐고 불만도 많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립국어원이 발행하는 각종 자료집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고 국어책임관을 정보나 국어사랑 분야에 관심이 많은 중간 간부급으로 임명하는 방안 등을 주문하고 있다. ■ 전문성·열정 있는 국어책임관 필요 그래도 공문서에 담긴 어려운 행정용어들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서울시에서 보이고 있는 노력들은 고무적이다. 서울시에서는 시민들이 알기 어려운 행정용어를 바로잡기 위해 국어 전문위원들을 초빙해 행정용어개선위원회를 구성하여 용어 순화작업을 진행 중이다. 개선위는 2007년 10월에 행정용어 개선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분기별로 순화할 행정용어를 20개씩 선정한다. 이미 순화과정을 거친 용어는 ‘소정양식’(개정 후 ‘정한 서식’), ‘법면’(‘비탈면’), ‘적의조치’(‘알맞게 처리’), ‘행락철’(‘나들이철’), ‘과년도’(‘지난해’), ‘익년도’(‘이듬해’) 등이 있다. “과년도에 법면에 대한 적의조치를 취했다”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행정 문장이 “지난해에 비탈면에 대해 알맞게 처리했다”는 깔끔한 문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공공기관 용어가 모두 현대화되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날까지 국어책임관의 역할이 크다. 전문성뿐 아니라 국어 순화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 국어책임관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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