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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에 신음하는 이주노동자

내국인 고용우선, 정주화 방지 등 이주노동자 족쇄…
저임금·임금체불·인권침해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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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8호 박성훈⁄ 2008.10.14 14:12:00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이주노동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오히려, 결혼이주 여성, 다문화 정책과 같은 각광받는 이슈에 가려 부차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무부에서 지난 6월까지 한국에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한 이주 노동자의 수는 약 54만 명. 이들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돼 가고 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및 기본권 침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다른 외국인 정책과 구별되는 특징은 노동시장에서 단순기능·저숙련 이주노동력을 활용해 3D산업의 인력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의도에 있다. 애초부터 이주노동자의 복지증진이 아닌 시장의 편의를 위한 정책인 것이다. 이는 결국 이주노동력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회적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 임금체불 이주노동자 2년 새 3배, 체불액 1인당 3.5배 늘어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각종 문제들은 저임금과 임금체불, 높은 노동강도에서부터 신체적·언어적 폭행 등 인권침해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임금을 제때 못 받은 이주노동자들이 2년 새 3배 넘게 늘고, 임금체불액도 3.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강성천 의원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노동부로부터 받은 ‘외국인 근로자 임금 체불액 현황’에 의하면, 올해 8월 현재 사업장 2025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3877명이 임금 95억여 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임금체불액은 2006년 8월 26억여 원에서 2007년 8월 48억여 원으로 불어난데 이어, 2년 새 3.5배나 증가했다.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도 2006년 1183명에서 3877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1인당 임금체불액은 245만 원 꼴이다. 노동청에서 체불임금 확인서를 받으면 무료로 민사소송을 집행해주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체불임금 무료법률구조 현황’을 봐도, 이주노동자들의 고통 증가는 확인된다. 올해 8월 현재 공단에 접수된 이주노동자 체불임금 사건은 1727명, 52억9300만원에 이른다. 2006년 18억 원, 2007년 37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8개월 만에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 가운데 26억7900만 원은 민사소송 중이다. 이 같은 임금체불뿐 아니라, 산재 미적용 등의 문제들은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 기획한 표적 그룹 면담에서 네팔 출신의 깨다르 씨는 공장에서 물건을 나르다가 왼팔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되자 사장이 “이제 일을 못하니 집에 가라”고 떠밀었다고 한다. 비자가 없어 산재 처리도 역시 기대할 수 없었다. 제품 납기일에 맞춰 밤새 일해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티벳 출신의 노동자 텐진 씨는 3박4일 간 꼬박 일을 했는데도 야간수당 하루분밖에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등에 대비해 이들을 고용한 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증보험’을 임의가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현행 고용허가제로는 문제해결 못한다” 이런 이주노동자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들은 현행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균등대우의 원칙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지만, 사실상 ▲사업장 이동 제한 ▲이주노동자 정주화 방지 원칙(체류기간 3년, 1년마다 재계약) 등으로 인해 그 원칙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노동자 마붑 씨는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5000명의 노동자가 들어온다면 현지에서는 5만 명 이상이 신청한다고 보면 된다”며 “들어오려면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저임금 정도를 주는 회사에서 3년을 일해 그 비용 이상을 벌 수는 없다”며 “게다가 사업장을 합법적으로 세 번 옮길 수 있지만,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알선에 나서지 않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깨다르 씨도 “노동부가 회사들을 알려주지만, 근무환경·급여수준 등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친구는 노동부에서 알려주는 회사를 찾아갔지만 노동조건이 맞지 않아 한 달이 넘도록 일터를 찾지 못했다”며 “여기를 가봐라, 저기를 가봐라 하는 식의 안내만으로 제대로 된 일터를 찾을 수 없다”고 불만스러워했다. 텐진씨는 ‘고용허가제라고 만들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그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용허가제가 종이에 인쇄되어는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글로 돼 있지 않다”며 “고용허가제가 나쁘다, 좋다 하기 전에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상 이주노동자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고용허가제 악용한 각종 비리 양산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로 인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허가제’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용주의 반대에 부딪혀 2003년 11월 노동허가제 대신 고용허가제로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된 것이다. 이제는 합법화된 고용제도에서 또 다른 문제가 양산되고 있다. 이는 고용허가제의 ‘국내 노동시장 보완 및 내국인 우선고용의 원칙’과 ‘외국인 정주(定住)화 방지 원칙’에서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국내 노동시장 보완 원칙은 이주노동력이 내국인의 고용기회를 빼앗거나 노동시장 내 임금 및 근로조건을 저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원칙이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신분을 ‘근로자’로 규정해 근로기준법상 노동3권과 균등대우의 원칙(고용허가제 제 22조)을 보장받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잔업과 특근을 밥먹듯 해도 월평균 100만 원에서 110만 원 정도의 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는 이주노동자 운용에 대한 선진화 방안으로,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이 부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숙박비·식대를 이주노동자 본인이 부담토록 관계법령을 개정하겠다고 결정했다. 또, 최저임금 감액적용(10%)이 가능한 수습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더 늘리고, 잦은 임금체불과 퇴직금 미지급 때문에 사업자들에게 ‘의무’ 가입토록 했던 체불임금 보증보험과 출국만기보험도 ‘임의가입’으로 바꿀 방침이다. 또, ‘정주화 방지 원칙’은 체류기간을 3년으로 정하고 1년마다 재계약하게끔 한 원칙이어서 이주노동자를 쉽게 미등록 체류자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제출국을 두려워하는 이주노동자로서는 고용주에게 복속될 수밖에 없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러한 상황을 악용한 음성적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안타깝게 만든다. 고용허가제 시행 당시 송출비리 차단 및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정부의 예상과 달리, 입국 과정에서부터 구직과정, 계약 연장 등의 모든 단계에 브로커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음성적인 노동시장은 결국 임금노동자를 노동권과 인권 침해의 사각지대로 내몰게 된다.

■ 사업장 옮길 수 없어 이주노동자에게 ‘족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체류자격과 연동하여 사업장을 옮기는 일도 제한하고 있다. 이는 고용주들에게 자유로운 해고를 보장하면서 노동자의 직장변경을 금지해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게 하고 있다. 특히, 사용주가 사업장 이탈 신고를 무기로 이주노동자에게 근로조건이나 처우(인간적인 대우, 사회보장 등) 등을 불리하게 만들 여지를 남기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는 즉각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임금 덤핑 등 고용조건 하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외국인 간 균등대우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허가 또는 신고된 사업장 사이에는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은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별을 감수하도록 강요할 뿐 아니라 사용자에게 극도로 종속시켜 노동자의 권리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며 “이 제도는 사업주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는 가장 큰 문제는 이주노동의 문제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차원을 공유하는데도 사회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적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문제는 한국사회의 발전적 재구성이라는 차원에서 재인식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주노동 문제는 한 국가의 문제인 동시에 송출국과 유입국 사이의 국가 간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동시에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들어온 개인의 욕망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노동과 자본이라는 계급적 문제인 동시에 인종 문제이기도 하며,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노동시장 재편 혹은 구조조정 문제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문화적 관용 혹은 배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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