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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숭례문 화재’ 부르는 목조 문화재 관리실태

국보·보물 문화재 중 화재경보기 설치된 곳 28% 불과, 소화기 위주의 재래식 소화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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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0호 박성훈⁄ 2008.10.28 17:32:17

지난 2005년 4월에 발생한 강원도 낙산사 화재사고가 전국을 경악케 한 바 있다. 산불에서 비롯된 이 화재로 낙산사 전각 13채가 잿더미로 변하고, 보물 제479호인 동종마저 소실되고 말았다. 또한, 올해 2월에 발생한 숭례문 화재사건에서는 누각 1,2층이 전소되어 온 국민을 비통하게 만들었다. 국보급 문화재의 빈번한 화재 발생은 문화재 관리에 대한 우리나라의 낯부끄러운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숭례문 화재 이후에도 목조 문화재 대부분이 여전히 화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자체 살수체 보유 덕수궁 유일…소화기 관리도 불량 문화재청 궁능 유적관리소 21곳 가운데 자체 소방살수차를 보유한 곳은 덕수궁 한 곳이 유일하고, 경복궁과 청덕궁·창경궁에는 감시 카메라조차 비치되지 않아 화재 예방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국 국보·보물급 이상의 목조 문화재 123개 중 화재경보기가 설치된 곳은 35곳(28%)에 불과했으며, 소방시설 역시 소화기 위주의 재래식 장비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 이후 국보·보물 등 143건에 대해 우선적으로 주야간 상주감시인력을 배치하고 소화장비를 설치하도록 하면서 예산만 무려 170억 원을 배정했다. 특히, 이 가운데 종묘와 경기도 여주 조사당(보물 180호)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종묘의 소화기 불량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건물마다 소화기가 4대에서 많게는 6대까지 비치되어 있지만, 유통기한을 넘은 소화기가 대부분이고, 소화기의 정상 유무를 점검하는 점검표가 없는 소화기도 많았다. 조사당 바로 옆에 비치된 소화기는 안전핀이 뽑혀 있고, 소화전의 문은 아예 고장 나서 돌로 고정시켜 놓은 상태였다. 돌을 치우면 문이 활짝 열린다고 한다. 현재, 숭례문 복구현장에도 화재 위험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복구현장에는 포대가 수북이 쌓여 있고, 포대 속에는 건설용 폐자재가 담겨 있는가 하면, 숭례문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짐작되는 나무판자들이 방치돼 있다. 또한, 곳곳에 인화성 물질인 페인트와 건설자재용품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불씨가 있으면 당장에라도 불이 날 지경이다. 놀랍게도 담배꽁초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주변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도 많이 목격되었다. 이들은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또한, 인부 혹은 노숙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잔디밭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누워 있었다. 게다가, 6대가 비치되어야 할 소화기함에는 3대의 소화기만 비치되어 있고, 숭례문 앞을 2명의 관리인이 지키고 있으나, 관리인은 제자리에 있기보다 숭례문 앞 간이숙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숭례문을 복구하다가 제2의 숭례문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또한, 경기도가 도내 목조 문화재 200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4.5%인 149곳에 소화전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88%인 176곳에는 화재감지기가 없었다. 또, 86.5%인 173곳은 외부인 접근과 화재를 감시하는 CCTV가 갖춰지지 않았고, 5곳은 소화기조차 비치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화전이 없는 곳도 7곳이나 되는 등 화재에 여전히 취약하다. 사찰이나 왕릉은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임에도, 소화기만 배치돼 있는 실정이다. 화재 피해 발생시의 복원을 위해 실측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110곳 가운데 실측이 이뤄진 문화재도 40곳에 불과했다. 일부 목조 문화재는 소방차 출동에 20분 이상이 걸려 화재 발생시 초기 진화가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 문화재 화재 대응방안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정부는 문화재청장으로 하여금 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 의무를 ‘문화재보호법’에 신설(제88조 화재예방 등 신설, 2005. 12) 했다. 해당 법 조항에서는 문화재청장이나 시·도지사가 지정문화재의 화재를 예방하고 소화장비를 설치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시행하도록 한다. 또, 지정문화재의 소유자는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 및 진화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지정문화재 등에 소화설비, 경보설비, 소화용수설비를 설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은 화재예방 및 방호에 대한 시행을 간략하게 요구하고 있을 뿐 세밀한 가이드라인은 전혀 만들어져 있지 않다. 특히, 문화재보호법 제88조 제2항은 지정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 및 진화를 위해 구체적 기준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는 88조 2항 규정에 대한 구체적 위임 내용도 없다. 문화재에 대한 화재방호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인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같은 기준이 전혀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민방위 훈련 매뉴얼 수준의 문화재 재난대응 매뉴얼도 문제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 143개 목조 문화재에 대해 ‘문화재 재난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각 지방자치단체에 배부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자료에 의하면, 143개 목조 문화재를 대상으로 각 문화재의 유형별 특수성과 주변 환경의 차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부분 유사한 내용으로 획일적으로 작성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문화재로 지정된 사찰들이 대부분 산속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불에 대비한 화재방호 시스템 구축 등 기본적인 사항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대부분 민방위 훈련 매뉴얼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채택하고 있는 산불예방 캠페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작년 8월 그리스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산불이 그리스 국토의 절반을 태우는 상황에서도 유적지 내의 고대 올림픽 발상지와 부속박물관 등이 피해를 보지 않았던 것은 바로 화재방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목조 문화재 방제 시스템 구축사업 지지부진 문화재청은 낙산사 화재사건 이후 문화재 화재방호와 관련하여 ‘목조 문화재 방재 시스템 구축 연구보서’라는 단 한 건의 용역사업만을 추진한 바 있다. 해당 연구보서에서는 ‘문화재 특성에 맞는 방재 시스템의 설계 및 설치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명시하면서도, 막상 방재 시스템 구축과 관련된 내용에서는 일반론적인 소방요소 기술을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다. 또한, 연구용역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용역 결과에 대한 충분한 검증절차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공청회와 같은 통상적 절차도 없이 이를 근거로 해인사·봉정사·무위사·낙산사 등 4개 사찰에 대한 재난방지 시스템 구축사업을 2007년부터 지자체와 매칭펀드(5:5) 형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업추진 실적을 보면 2008년 현재 낙산사와 무위사의 경우는 사업이 완료되었으나, 해인사와 봉정사의 경우는 지자체가 지방비 확보를 미루고 방재 시스템 구축이라는 사업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 사업추진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인사의 경우 국보 제32호 해인사대장경판전이 ‘□자형’으로 배치되어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여서 방재 시스템 구축사업이 다른 사찰보다 훨씬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봉정사의 경우,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과 보물 제55호 봉정사 대웅전, 보물 제449호 봉정사 고금당 등 중요 목조건물이 ‘T자형 배치이면서 처마가 밀집된 구조’여서 화재발생시 중요 문화재가 한꺼번에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의 위험이 높아 가장 시급히 추진되어야 할 해인사와 봉정사의 방재 시스템 구축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고, 지자체의 이해부족으로 각 구조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일반적 소방시설 설치에 급급하고 있다. ■ 최문순 의원, 문화재청-방염제 제조업체 유착 의혹 제기 문화재청이 불완전한 방염제(화재를 막아주는 목재 도포제)를 생산한 모 업체의 제품을 수십년간 고집해 이 업체의 독과점을 유지시켜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최문순(민주당) 의원은 문화재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앞두고 배포한 자료에서 문화재청이 방염제 도포(塗布) 시공과 관련, 비틀림 등 지속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K개발의 D시리즈 약품에 대한 독과점을 유지시켜줬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숭례문 화재 당시 일부 거론되긴 했으나, 숭례문 화재의 또 하나의 원인은 25년간 시행돼온 방염제 도포사업에 있다. 모든 목조 문화재는 6년에 한번씩 방염제를 도포하도록 돼 있는데, 숭례문은 2004년 방염도포 당시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서까래 부분은 도포작업을 하지 않았다. 방염제 도포약제인 DimefoxⅢ가 단청에 백화현상을 일으키는 등 많은 문제를 보였기 때문에 문화재청이 도포범위와 횟수를 축소변경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숭례문 화재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D시리즈 약품이 나온 1984년 이후 이 방염제를 목조 문화재에 사용함으로써 백화, 얼룩, 뒤틀림 등 피해사례가 속출했다”며 “1997년 K개발의 신제품(D-3)이 개발된 이후에도 문제점이 발견됐지만 이를 보완하지 않은 채 D-3의 독과점을 유지시켜주고 신규개발 약제 도입마저 제한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K개발이 약품 독점생산업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 다수의 현장에서 시공가의 85%를 받는 조건으로 불법시공을 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문화재청이 20여년간 D시리즈의 독과점을 유지시켜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이와 관련, 산하 연구기관인 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5년 K개발 등 5개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테스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 K개발의 제품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드러나 목조 문화재 방염제로 선정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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