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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중단운동 ‘유죄’, 여행 예약·취소 ‘무죄’

시민법정 ‘광고중단운동 불법업무방해인가, 소비자운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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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2호 박성훈⁄ 2008.11.12 13:48:39

‘조중동 폐간 국민 캠페인’ 카페 개설자로서 광고중단운동 독려 및 광고주 리스트를 게재한 바 있는 ‘나개설’ 씨. 카페의 운영자로서 광고주 리스트를 작성 게재하고 실제로 광고주들에게 전화를 걸어 광고중단을 종용한 ‘이운영’ 씨.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동아일보의 광고주인 여행사에서 여행상품을 다수 예약하고 취소하는 행위를 반복한 ‘노예약’ 씨. 광고 기업의 홈페이지를 마비 혹은 다운시킬 목적으로 접속 프로그램을 가동한 혐의를 받은 ‘안섭어’ 씨. 한국YMCA 시민법정에 선 피고인들의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이 다소 우스꽝스럽다. 성(姓)만 떼면 하나의 단어가 된다. 이들은 각 사건 당사자들의 혐의를 함축하는 단어를 사용한 ‘가명’이다. 이번 시민법정은 현재 검찰에 의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 16명의 네티즌 피고인 중에서 대표적 유형의 피고인 4명을 놓고, 검찰 (임영화 변호사, 문재완 교수) 측과 변호인(박형상 변호사, 박주민 변호사) 측의 치열한 법리와 증거제시 등 공방이 벌어졌다. 이번 재판에는 사건 당사자도 방청석에 앉아 참관하기도 했다. 시민법정의 평결을 담당한 시민배심원은 총 11명으로 전체 100 여 명의 시민배심원 중 인구비례에 의해 17명의 배심원을 선정하였고, 최종적으로 11명의 시민배심원이 평결에 임하였다. 평의는 성민섭 시민법정위원장(변호사)이 주재하였다. 이번에 다룬 사건은 진행 와중에 있는 광고불매운동의 형사사건과 함께, 시민과 소비자의 표현의 자유 및 소비자 운동의 허용 범위 등에 대한 시민들의 상식적인 판단과 이해를 묻고자 한 자리였다. ■ 폐간 해석… 檢 “명백한 업무방해”, 辯 “상징적 비유” 검사 측과 변호사 측은 △광고중단운동이 표현의 자유가 되는지 △폐간운동이 업무방해인지, 정당한 소비자운동인지 △일면식 없는 피해자들 사이에 공동정범이 성립되는지 △폐간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을 펼쳤다. 임영화 변호사와 문재완 교수로 구성된 검찰 측은 “피고인들은 촛불집회와 관련해 일부 신문사가 정부 입장만 옹호하는데 불만을 품고 신문사를 폐간시키려는 취지에서 집단적으로 선동한 것”이라며 “유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조중동 폐간 운동은 ‘폐간’이라는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신문사의 큰 수입원인 광고를 막기 위해 광고주를 압박했다”며 “이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유죄를 주장했다. 박형상 변호사와 박주민 변호사가 나선 변호인 측은 “검찰 측은 폐간이라는 단어의 폭력성을 문제 삼고 있지만 폐간이라는 말은 상징적 비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변호인 측은 “오프라인에서 집회·시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도 자유롭게 카페를 통해 자기 의견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라며 “더구나 이를 국가가 형사적으로 개입해 민사가 아닌 형사로 처벌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형사 처벌을 받는다면 결국 인터넷 공간이 위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방청객도 유·무죄 논쟁 검찰과 변호인의 증인 신문에서도 견해는 엇갈렸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변희재 실크로드 CEO 협회 회장은 “생계형 중소기업은 조중동에 조그만 광고를 내고 그걸 본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 이익을 내는데, 이런 사업자들은 광고중단운동으로 3개월 간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며 “미국에서도 형사처벌 사례는 없지만 신문의 논조 때문에 불매운동이 벌어져 광고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면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온 이준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은 “어떤 이유로든 정치적·사상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의견 표현을 사전에 제약받거나 사후에 정치적인 이유로 제약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용자들이 조중동이라는 거대한 언론사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광고중단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시민법정 현장의 논고와 변론을 듣고 30분 간의 평결에 임하였다. 예정된 결론 없이 진행된 논의과정이었다. 시민배심원 평의는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되, 2/3 이상의 절대다수 의견에 대해 유무죄를 선고하고자 하였으며, 금번 평의의 결과는 3건이 절대 다수인 2/3에 미치지 못해 재판장(한기찬 변호사)이 배심원 평결의 결과를 그대로 밝히는 것으로 재판을 마무리하였다. 평의가 이루어지는 사이, 재판부와 배심원석이 빈 상황에서 시민법정을 참관하고 있던 방청객들 사이에 업무방해에 대한 유무죄 논란이 일었다. 한 방청객은 “행위의 고의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이를테면 여행사에 상품을 예약했다 취소하는 행위로 광고를 싣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업무방해로 보인다”고 의견을 말했다. 이에 다른 방청객은 “의도도 중요하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실질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방해를 했다고 해도 행위를 실질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 여행 예약취소 무죄, 해당 여행사 “피해 없다” 30분이 흐르고, 재판부와 시민배심원단이 다시 법정에 들어섰다. 이윽고 모든 방청객들이 일어나 평의결과를 숨죽이고 기다렸다. 보통, 국민참여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평의내용을 참고한 상태에서 판결문을 별도로 작성한다. 따라서, 배심원단의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 내용이 엇갈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시민법정은 시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하므로, 별도의 판결이 없이 진행됐다. 배심원단은 피고인 4명에 대해 각기 다른 평결을 내렸다. 조중동 폐간 국민 캠페인 카페 개설자로서 광고중단운동을 독려하고 리스트를 게재한 피고인 나개설 씨(가명)와 카페 운영자로서 실제 전화를 하기도 한 이운영 씨에게는 각각 유죄 7명, 무죄 4명이라는 평결이 내려졌다.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광고불매운동으로 공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광고중단운동을 독려하고 광고주의 리스트를 게재하는 등의 행위가 유죄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홈페이지 마비 프로그램 가동행위를 한 안섭어 씨에 대해서는 유죄 6명, 무죄 5명 등의 평결이 나왔다. 하지만, 광고주 여행사의 여행상품을 다수 예약한 후 취소를 반복한 노예약 씨에 대해서는 무죄평결(유죄 3명, 무죄 8명)이 나왔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 11월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을 이끈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누리꾼들의 공판에서 “광고불매운동 때문에 경제적·업무적 피해를 본 게 없다”는 여행사 측의 증언이 나와 검찰이 곤혹을 겪었던 점이다. 검사는 앞서 10월 21일에 있었던 재판 과정에서 “매출 손실 등을 최소한으로 잡으면 11억2000여만 원의 피해가 예상되고,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판사로 이번 재판에 참여한 한기찬 변호사는 이날 판결에서 “평결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고 재판의 결과가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모르지만, 사법부에서 크게 참고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법정은 “실제 사건을 가지고 평범한 시민들이 상식과 양식에 입각해 판결을 내리는 현장”이라면서 “시민법정이 사회 구성원들의 이슈 공론화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판의 최후 판결문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시민들의 판단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 “시민법정, 시민에 의한 사회 공론화의 장 되길” 연례적으로 치러지는 한국YMCA의 시민법정은 올해로 3회를 맞는다. 주최 측은 매년 법정을 여는 시기에 여론을 뜨겁게 달구는 사안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공론화하는 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배심원 평결이 보편적 시민을 대표하는 여론이자 사회적 권고라는 게 서울YMCA 측의 입장이다. 2006년 진행된 1회 시민재판에서는 난지도 공원의 운용 방안, 즉 시민공원과 골프장 건설을 두고 일어난 분쟁사례가 주제였다. 2회 시민법정에서는 양심 병역거부가 범죄이냐, 권리이냐에 대한 주제를 갖고 진행됐다. 이 재판에서는 대체복무제를 권고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장은 “사안이 민감한 가운데 주최 측에서 적절한 시기를 타서 진행한 것 같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매년 판사 역할을 맡아 온 한기찬 판사는 “시민재판과 같은 건전한 시민 여론의 장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판사와 검사·변호사와 피고인과 배심원들은 재판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실제 재판과는 다르게, 재판과정에서 서로 논쟁을 벌이며 각을 세우던 모습은 말끔히 사라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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