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는 빠르면 5일 내에 운전면허를 딸 수 있게 된다. 경찰청은 4일 경찰·민간 합동으로 구성된 ‘운전면허 제도개선 심의위원회’가 시험절차를 간소화한 운전면허시험 개선안을 심의해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경찰은 심의결과를 반영한 도로교통법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운전면허 시험장의 기능교육 3시간은 폐지되고, 운전전문학원 기능교육 시간도 20시간에서 15시간으로 줄어든다. 도로주행 연습(10시간)은 폐지되며, 도로주행 시험의 실격 기준은 강화된다. 운전면허시험 적성검사는 시력검사와 자기신고서로 대체된다. 적성검사 후 시험장에서 받는 기능교육 3시간은 폐지되며, 전문학원의 기능교육 역시 현행 20시간에서 15시간으로 축소된다. 또한, 건강검진 결과서의 유효기간은 기존의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되며, 2종시험 응시자의 적성검사는 시력검사와 자기신고서로 대체된다. 경찰 관계자는 “짧아야 9일(면허시험장), 14일(전문학원)이 걸리던 취득 기간이 각각 5일,12일로 단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능시험 중에선 출발·종료시 방향지시등 작동, 기어 변속, 돌발시 급정거·출발, 횡단보도 일시정지 등 5개 항목이 삭제된다. 면허가 취소된 사람이 다시 시험을 보게 될 경우에는 기능시험이 면제된다. 기능시험 합격 후 임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10시간 도로주행 연습을 해야 하는 절차도 없어진다. 대신, 실제 도로에서의 운전 능력을 살펴보기 위한 도로주행시험 실격 기준은 강화된다. 주행시험에서 신호 위반이나 중앙선 침범 등 교통법규 위반을 1회만 하더라도 곧바로 불합격 처리된다. 도로주행시험은 완화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된다. 한 번의 실수로 실격될 수도 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운전면허시험 절차 중 도로주행연습과 적성검사 등이 폐지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행자 보호 위반 △앞지르기 위반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 △신호위반 등 원래 감점사유였던 7가지 항목이 실격사유로 바뀐다. 기존에 5개였던 실격사유가 12개로 늘어나는 셈이다. 경찰은 이번 개선안을 반영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이달 중 마련해 법제처에 제출하는 등 본격적인 법 개정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시험 쉬워지고 비용 내린다” 소문에 운전학원 수험생 현격히 줄어 경찰청이 운전면허제도개선 심의위원회를 열고 제도개선안을 의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부터 운전면허 전문학원들은 수강생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운전면허 제도 개선에 관한 계획이 발표되면서 시험의 전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수강생들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현행 시험보다 “면허취득이 더 쉬워진다” “면허취득 비용도 내린다”는 등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수능시험이 끝나 운전면허를 따려는 고3 수험생들이 자주 들르기는 하지만, 예년보다 수강생이 줄어든 점은 사실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던 한 수강생은 “내년부터 면허 따기가 쉬워진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수능을 치른 수험생 자녀를 둔 한 주부도 “과정이 간소화되면 수강료도 내려갈 것 같아, 아이의 운전학원 등록을 언제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휴학 중에 면허를 따기로 계획한 대학생 박모 씨도 “면허를 따는 일이 간소화되고 가격도 떨어진다면 지금 굳이 돈과 시간을 더 들여 면허를 취득할 필요가 있느냐”며 일단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S 운전면허학원 관계자는 “1, 2종 보통 수강 희망자들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K 학원, D 학원 측도 “이전에 비해 수강문의가 많이 줄어들었다”며 “이전 일일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면허취득 절차 간소화가 면허시험이 쉬워진다는 뜻은 아니라는 게 관계자들의 대답이다. 운전학원들도 학원 수강료가 소폭 떨어지는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얼마만큼의 수강료 절감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우선, 심의위원회는 10시간 도로주행연습을 폐지하는 대신 ‘3일 경과 규정’을 신설했다. 기능시험 통과 3일 후부터 도로주행시험에 응할 수 있도록 한 것. 서울에 소재한 자동차운전 전문학원의 한 관계자는 “10시간 연습 규정은 그 동안 이행 여부를 서류로만 확인했기 때문에 사문화된 규정이나 다름 없었다”며 “도로주행시험이 있는 한 연습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비용 낮아질지 아직은 속단 금물 면허취득 비용이 낮아질지도 불투명하다. 폐지되는 적성검사 비용 5000원, 축소되는 기능교육 시간에 따른 비용 일부 등 약간의 비용감소 효과는 있겠지만, 학원 수강료 개선안이 최종 의결될 때까지 미지수다. 운전학원들은 시설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들어 “비용을 내리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한 운전학원 관계자는 “수강료를 내리는 건 가능하지만, 그럴 경우 탈락자에 대한 무료 보충교육을 유료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법 적용까지 아직 1년 가까이 남았다. 지금의 개선안은 ‘운전면허제도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상태다. 앞으로 △경찰위원회 재심의 △부처협의 △입법예고 △국회통과 등 남은 과정이 많다. 개선안이 바뀔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법이 내년 상반기 중에 통과돼도 전국의 면허시험장 및 학원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3~4개월 정도 주게 되면 “내년 하반기쯤 실질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게 경찰청 운전면허계 관계자의 말이다. 한편,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장내 기능연습을 없애거나 아니면 도로주행에 포함시키자는 의견도 나온다. 김지석 녹색교통정책연구소 대표는 “미국은 기능연습을 도로주행에 포함시켜 저비용 고효율의 면허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며 “비용을 증가시키는 장내 기능연습을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도로가 좁고 복잡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장내 기능연습을 섣불리 폐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아 존치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 도로주행 불법 과외 기승 운전면허를 둘러싼 폐단도 무시할 수 없다. 운전면허 학원 중에 ‘도로주행 불법과외’를 하는 곳이 많다는 점은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벌어지는 주요 문제점이다. 경찰 단속으로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최근 다시 성행하고 있다. ‘장롱면허’ 수준인 초보 여성 운전자들에 더해, 특히 요즘은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갓 마친 고3 학생들(만 18세 이상 면허취득 가능)이 불법과외의 주 이용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인터넷상에 유사 카페가 다수 운영되고 있는 점과 이들이 무등록 강사들에게도 도로연수를 알선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추궁하는 등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0월께부터 ‘장롱면허’, ‘장롱면허운전연수’, ‘천사운전자클럽’ 등의 제목을 단 인터넷 카페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운전면허를 취득한 박모 씨는 “면허를 따긴 했는데 운전을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다. 몇 번 차를 가지고 도로에 나갔다가 접촉사고를 내는 등 낭패를 봤던 터라 박 씨는 운전석에 앉기조차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에 박 씨는 친구로부터 무등록 운전강사를 소개받았다. 박 씨는 “운전이 서툴고 길도 잘 모르는 초보 운전자에게 도로주행을 가르쳐주는 강사가 있다”는 친구 설명에 과외를 받기로 결정했다. 총 10시간에 교습비가 25만 원이지만, 정식 교습보다는 싸고 간편하다고 생각한 박 씨는 며칠에 걸쳐 회사·집 등 자신이 자주 가는 장소 몇 군데를 집중적으로 다니면서 길을 익히고 운전을 배웠다. ■ 각종 불법 운전교육 카페 개설…피해자 속출 경찰청 교통교육계 관계자는 21일 “여성 운전자의 숫자가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 수능이 끝나면서 불법 주행과외 수요가 특히 더 늘고 있다”며 “수능 직후 면허를 따는 학생들이 많고, 이들이 주행 연습도 함께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수 뒤 이번에 수능을 치른 김모(20·여) 씨가 그 같은 경우다. 김 씨는 11월 24일부터 맞춤형 주행과외를 받기로 했다. 그는 “올해 초 면허를 딴 뒤 여태껏 도로에서 운전해본 적이 없어 수능이 끝나자마자 과외를 받기로 했다”며 “주위 친구들도 함께 교습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도로교통법에는 ‘강사자격증을 가진 강사가 학원에 등록된 차량으로만 운전교습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돈을 받고 개인차량으로 운전을 가르치면 무조건 불법이다. 무등록 교습차량 중에는 운전면허학원에 비치된 노란색 자동차와 같이 조수석에 브레이크와 가속기까지 설치한 불법개조 차량도 상당수다. 운전 중 위험상황이 발생하면 조수석에 앉은 강사가 직접 차량을 조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조수석 불법 개조는 자동차관리법까지 위반한 것이어서, 적발될 경우 처벌수위가 더 높아진다. 경기 화성 서부경찰서는 지난 11월 17일 인터넷 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해 모집한 도로연수 수강생들로부터 수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로교통법 위반 등)로 오모 씨와 서모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여기에 모여든 운전교육 연수자들로부터 1인당 20만~30만 원의 연수비를 받고 도로연수 운전교육을 하는 등 모두 1 400여 명으로부터 3억4000만 원 상당을 챙긴 혐의다. 조사 결과, 이들은 학원 미등록자는 대가를 받고 학원 등의 밖에서 차량 운전 교육을 할 수 없는데도 임의로 브레이크를 장착한 차량으로 도로연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수능 종료를 기점으로 겨울방학 기간까지 집중적으로 불법 주행과외를 단속할 계획”이라며 “불법 개조 차량에 대해서는 고발조치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운전면허학원 내 전자 채점기 문제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는 운전전문학원의 전자 채점기가 장비 노후 등으로 보완 명령을 받은 횟수가 지난해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이 9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전국 총 426개소의 운전전문학원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한 결과, 적발된 267개의 채점기 중 222개가 시정 명령을, 45개가 보완 명령을 받았다고 지난 11월 3일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적발건수는 13건, 시정 명령은 42건이나 줄었지만, 보완명령은 29건이나 증가한 수치다. 경찰에 따르면, 점검기간 동안 ▷채점기준에 따른 전자채점기 정상작동 여부 ▷장내 기능검정 합격 유도를 위한 ‘공식표시’ 위반 행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실제로 충북 청주시의 한 학원은 십자형 교차로의 신호 주기가 부적절해 현장에서 시정 조치를, 부산 사하구의 한 학원은 횡단보도 검지선의 센서 작동이 불량해 3주 간의 보완 명령을 받았다. 또, 이번 조사에서는 경제난에 따른 학원생의 감소로 학원들의 폐원·휴원이 늘어, 실제 운영되는 전국의 학원 수가 지난해에 비해 8개소나 줄어든 426개소로 조사됐다. 경찰의 도로교통법 개선안은 여러 모로 눈여겨볼 만하다. 불필요한 시험과정을 간소화하고 필요한 부분을 강화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지만, 우리나라의 운전면허 취득 체계에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