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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존엄사 논란 中

유럽 일부 국가, 안락사 합법화…전체적으로 존엄사 허용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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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6호 박성훈⁄ 2008.12.09 13:31:47

지난 11월 28일 법원이 회생 불가능한 식물인간에 대한 치료 중지를 허용하는 존엄사 판결을 내렸다. 서울서부지법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김모(76·여) 씨와 가족이 “인공호흡기 사용을 중단해 달라”며 연세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김 씨가 현재 회생할 가능성이 없고, 평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뜻을 밝혀 온 점이 인정된다”며 “병원은 원고인 김 씨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을 내린 김천수 부장판사는 “의사의 치료 중단 의무가 인정되는 요건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고 구체적인 입법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존엄사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한 의료계와 종교계의 논란도 분분하다. 치료 불가능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해 온 의료계는 전반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주경 대변인은 “신중한 의학적 판단에 근거해서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에 한해 존엄사가 인정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종교계는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안되겠지만, 치료 가능한 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도 있다며 신중한 태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그 필요성과 사회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걸음마 단계이다.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한 법적 근거나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을 뿐더러, 식물인간에 대한 정의와 의료진이 생명을 보호할 책임의 범위에 대한 기준조차도 불명확한 데서 알 수 있다. 존엄사는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서도 큰 논쟁거리이다. 그렇다면, 존엄사에 관한 논의를 먼저 시작했거나 일정 부분 진척을 보여 온 외국의 사례들을 정리해봄으로써 우리의 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판단해보는 일이 중요하다. ■베네룩스 3국 : 안락사 합법화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이며, 주변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도 이를 법으로 인정해, 베네룩스 3국은 안락사에 가장 관대한 나라로 꼽힌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에 안락사법이 발효됐다. 1973년부터 “편안히 생을 마칠 권리를 달라”는 운동이 시작된 이래 1990년과 1995년 두 차례 안락사 관련 연구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안락사 허용 논쟁이 촉발됐다. 2002년 4월 1일 안락사 허용법이 공식 발효됐다. 네덜란드에서는 작년에 2120건의 안락사가 보고돼 2006년보다 10% 가량 늘었으며, 대부분 말기암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네덜란드 의회가 안락사를 승인하자, 벨기에도 2002년 5월 하원이 법안을 승인함에 따라 안락사 허용 국가가 됐다. 벨기에도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의식을 가진 환자가 지속적이고 참기 힘든 고통을 겪어 안락사를 요구할 때만 허용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2008년 2월 의회가 안락사 허용 법안을 승인했다. 하지만, 정부가 법안의 일부 수정을 요청해, 의회가 재심의를 하는 중이다. 룩셈부르크의 안락사 허용법은 죽음이 가까운 환자와 불치병 환자에 한해 안락사를 허용하되 환자 본인의 지속적인 요청과 의사 2명 및 전문가 패널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미국 : 워싱턴·오리건 주, 자발적 존엄사 허용 미국에는 현재 인명을 존중하기 위해, 극약을 자살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고통경감법’이 있다. 하지만, 각 주는 생명 보조 장치를 제거하는 등의 방식으로 존엄사 시행을 인정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방식의 소극적 존엄사는 미국에서 40개 주가 환자 가족의 동의 등을 포함한 엄격한 전제 조건을 달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19세기 초반이다. 당시 존엄사의 수단으로 범용된 마취제가 논쟁거리였다. 미국에서 존엄사 금지 법안이 처음 나온 것은 1828년 뉴욕 주였다. 뉴욕주에서 존엄사를 법적으로 금지하자, 다른 주들에선 많은 의사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존엄사를 허용해 달라며 법적 투쟁을 벌이는 일이 잦았다. 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돕는 자발적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한 곳은 서부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 등 2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건 주는 1994년부터 6개월 미만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말기 환자들에 한해 존엄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워싱턴 주에서도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 영국 : 판례로 존엄사 인정…안락사는 불법 영국에서는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존엄사는 판례를 통해서만 용인되고 있는 분위기다. 1993년에 3년 이상 식물인간 상태인 경우에 한해 영양공급장치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이 나오고 나서부터 존엄사를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할 수 있고, 신체 이상으로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치료를 거부하는 ‘사망유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안락사는 뜨거운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불치병을 앓고 있는 많은 영국인들이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로 떠나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인 디그니타스를 찾은 영국인들은 지난 9월까지 1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디그니타스는 스위스 인권변호사 루드빅 미넬리가 “품위 있게 살고 죽도록”하자는 취지에서 1998년 설립했다. 2006년 디그니타스에서 생을 마친 전직 의사 앤 터너 씨는 “병세가 심하게 악화됐을 때 영국에서 안락사를 할 수 있다면 스위스에서 죽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안락사 허용을 촉구했다. 현재 성공회·가톨릭 등 종교계와 영국의학협회·왕립의사학회 등 의료단체는 대체로 안락사에 반대하고 있다. 성공회 최고 지도자인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생명은 신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마치 주인처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영국인 5명 중 4명은 디그니타스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비슷한 형태의 자살 지원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 나치 악몽으로 안락사 알레르기 독일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안락사 프로그램’에 따라 정신질환자와 신체장애인 7만 명을 살해한 악몽으로 오랜 시간 안락사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됐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몇몇 사건들이 사회 이슈화하면서 점차 관련 법률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현재 독일에는 안락사에 관한 법률은 없어도, 형법의 일부 조항과 판례 등을 통해 안락사가 폭넓게 허용되고 있다. 독일에서 자살방조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환자가 ‘적극적 안락사’를 원할 경우, 의사가 직접 독극물 주입 등을 하는 행위는 위법이지만, 환자가 자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무죄라는 취지이다. 1983년 하켄탈 교수의 안락사 사건은 안락사 범위에 대한 독일 내 논란을 증폭시켰다. 당시 하켄탈 교수가 암으로 수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어 온 한 여성에게 다른 의사를 통해 독극물을 전달하여 고통없이 생을 마치게 한 일이 있다. 당시 검찰은 하켄탈 교수를 촉탁살인죄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자기책임하에 자살을 시도할 경우 의사가 양심적 판단으로 구조를 하지 않더라도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에서는 1986년에 관련법 제정이 추진됐으나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독일의사협회가 규정한 소극적 안락사의 범위에 들지 않더라도, 치료가 불가능하고 판단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환자의 의지에 따른 존엄사를 허용한다는 법원 결정이 있기도 했다. ■ 브라질 : 종교계의 반발로 반대 분위기…시행 소문 분분 브라질에서는 존엄사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크다. 가톨릭의 전통이 워낙 강해 안락사 또는 존엄사 허용 문제가 민감하게 거론될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도 브라질의 병원에서는 안락사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일선 병원에서 안락사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법률적 해석과 종교적 가치, 사회적 통념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어느 누구도 안락사 허용을 함부로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 브라질의 현재 모습이다. 브라질에서 안락사 논란이 공식적으로 불거진 때는 1996년 상원에 안락사 허용 법안이 제기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당시 브라질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톨릭의 반발로 결국 처리되지 못하고 심의 기한을 넘겨 자동 폐기됐다. 이어 2005년에는 하원에서 안락사 처벌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형법개정안이 제출되면서 다시 논란화됐지만, 역시 강력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쳤다. 브라질에서 안락사 문제가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시기는 2005년 8월 말이다. 당시 상파울루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생후 4개월부터 퇴행성 신진대사 증후군으로 식물인간이 된 4살짜리 아들에 대한 안락사를 법원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아이는 약간의 두뇌활동을 제외하고는 거동이나 말이 불가능한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위장에 연결된 고무 튜브를 이용해 영양을 공급받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가톨릭계와 개신교계는 생명존중을 명분으로 안락사에 강력히 반대했다. 의료계에서도 “법으로 금지된 안락사가 허용될 수는 없다”는 입장었으나, 고통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점차 기울었다. ■ 일본 :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는 용인 일본에서는 안락사가 형법상 살인죄에 저촉되는 등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으나, 독극물 투여 등 적극적 안락사가 아닌, 산소호흡기 등의 생명 연장 수단을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나 존엄사는 대체로 허용되는 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7년 4월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에 대해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종말기 환자 치료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바 있다. 여기에는 치료 중지에 대해 환자의 의사를 반영하여 의료팀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이 같은 지침을 제정한 것은 병원에서 환자의 연장치료를 중단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안락사 시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2005년 10월에는 도야마 현의 한 병원에서 7명의 노인 환자가 숨져 병원에서 인위적으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1998년에는 가와사키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기관지천식으로 식물인간이 된 50대 남성 환자를 가족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시켜 파문이 일었다. 결국 담당 의사는 2005년 3월 요코하마지법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현재 일본에서는 일본존엄사협회 등의 사회단체와 ‘존엄사 법제화를 생각하는 의원연맹’등의 정치권에서 존엄사 법제화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법제화에 대한 반대운동도 있다. 존엄사 반대 입장에서는 법제화가 이뤄질 경우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나 노약자가 죽음의 선택을 강요받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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