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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선언 60년, 한국도 난민법 제정해야

출입국관리법에 난민 명시…난민 신청 2000명에 고작 86명 난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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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7호 박성훈⁄ 2008.12.17 13:52:19

“대한민국은 1992년 12월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 및 동 협약 의정서에 가입한 이래 ‘출입국관리법’에서 난민에 관한 인정절차를 규율하고 있으나, 약 15년 간 그 신청자가 2000여 명에 불과하고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도 100명이 채 안 되는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난민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인권포럼 대표의원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지적이다. 세계 인권선언이 발표된 지 60년이 지났다. 반 세기를 훨씬 넘는 동안 세계 인권은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장애인 등 소수 소외계층과 실직노동자·아동·노인 등의 인권 문제가 이전보다 많은 진작이 있었다. 특히, 최근 다문화가정 등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문제도 많은 언론과 사회적 관심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분쟁지역을 국적으로 가진 망명자나 난민의 국내거주 문제가 새로운 재한 외국인의 인권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 난민 인정에 인색한 한국 정부 우리나라는 1992년 12월 3일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과 ‘난민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가입하고, 이듬해 ‘출입국관리법’과 이에 대한 시행령에 ‘난민 인정 조항’을 신설하여 1994년 7월부터 난민 지위 인정 신청을 접수받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러나,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집행이사국임에도 6년이 지난 2000년까지 단 한 명의 난민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국제사회의 비판을 못 이겨 2001년에 1명에 대한 난민 지위를 허락하면서 현재(2008년 10월)까지 86명의 난민을 인정했다. 국내 외국인 난민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난민 신청인은 대부분 독재정권·종족갈등·내전·폭력사태 등에 따른 인권 침해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국가 출신인데, 네팔·중국·미얀마·나이지리아·우간다·콩고·코트디부아르·방글라데시·에티오피아·이란 등의 국민들이다. 이들 중 한국에서 인정을 받은 난민들은 미얀마·우간다·콩고·코트디부아르·방글라데시·에티오피아·이란 등의 국민이다. 이 중 일부는 면담 공무원으로부터 난민 신청을 만류받거나 본국 귀환 또는 제3국행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강제 추방하겠다”고 하거나, 외국인등록증을 던지며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른 경우도 있다는 게 일부 난민 신청자의 증언이다. 또, 보고서에 포함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난민 신청자들은 UNHCR이나 친구·지인·민간단체·교회 등의 비정부기관에서 신청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었지, 정작 해당 기관인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신청 정보를 얻은 경우는 전체의 2.8%에 불과하다. 이들 난민 신청자들은 본국에서는 학생·교사·엔지니어·회계사·변호사 등 직군이 다양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공장 노동자나 단순 노무직으로 종사하고 있다. 80% 이상이 무직이거나 3번 이상 자리를 옮기는 등 경제상황이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류자격이 불안정하고 난민에 대한 인식이 나빠 쉽게 해고되기 때문이다.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지만, 난민 신청인은 직장 의료보험이나 민간단체의 의료공제회에 가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 현행법의 허점과 난민 법 제정의 필요성 난민에 대한 현행법의 정의부터가 명확하지 않아 이 같은 총체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출입국관리법에서는 난민을 ‘난민협약 제1조와 난민의정서 제1조에 따라 난민협약의 적용을 받는 자’라며 국제협약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협약이 국문으로 명확히 번역돼 있지 않아, 난민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일단, 난민 인정 요건의 하나인 ‘well-founded fear’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나 ‘합리적 공포’ 등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국제난민지원 기독교 자원활동 모임인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근거 있는 공포’로 해석할 경우 난민 신청인이 주장을 명확히 증명해야 하고, ‘합리적 공포’라면 박해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해석돼 뚜렷한 근거가 필요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박해의 명확한 개연성과 박해받을 가능성이 아닐 가능성보다 50% 커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했으나, 이보다 완화된 기준으로 박해 발생의 가능성과 근거만 있으면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캐나다·호주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출입국관리법 등에 명시된 난민 관련 조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난민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정치·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서울대 법학부 정인섭 교수는 “현행 법의 난민 관련 조항을 출입국관리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 아무래도 구체적인 내용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한국의 법 제정 방식에서는 독립적인 법을 제정하는 편이 난민 대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장복희 선문대 법학과 교수는 “난민법이 제정될 경우, 국민이 아닌 자의 권리 보호와 절차를 단일 실정법에 규정해, 앞으로 제정될 외국인 관련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법,제정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협약난민’에 준하는 지위를 ‘사실상 난민’에게도 부여하고, △강제송환 금지 원칙의 명문화, △아동과 여성 난민에 대한 특수 규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는 난민 관련법을 제정할 경우 △진술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신청거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과 아울러 △전문통역인 제공, △변호인·NGO 활동가·친구 등의 동석 허용, △ 난민 면접조서 및 서류 열람 등의 권리 보장을 주장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난민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황우여 의원은 “국회인권포럼도 ‘난민 등의 지위 및 처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국제법과 국내법의 조화를 꾀하고 난민 인정절차 및 난민 등의 처우를 구체적으로 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난민법 제정되면 악용 사례 늘어나나 하지만, 난민 제도가 정비되고 난민의 권리 보호가 강화되면 국내 이주노동자들이 체류연장 수단으로 난민 제도를 악용해 신청이 대거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전체적인 우려이다.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하거나 외국인 체류자를 감축하겠다는 정부기관의 발표가 있을 때마다 난민 신청자들이 급증하는 현상은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는 “난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아 외국인 노동자들의 악용 여지가 컸고, 난민 심사기간이 장기화돼서 신청자들이 장기 심사기간을 체류연장 수단으로 악용할 요인이 컸다”며 “난민 제도를 정비하고 난민 심사기간을 단축해 보호가 필요한 사람과 불필요한 사람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장복희 선문대 교수는 “난민협약의 체약국이자 선진화된 국내 비호법과 절차를 가지고 있는 유럽에서는 난민이나 비호 신청인의 대규모 유입을 경험하지 않았다”며 “이를 볼 때 난민협약과 관련 국제법을 따르는 것이 난민의 유입을 부추긴다는 주장은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법 제정에 따른 난민의 대거 유입 가능성을 일축했다.

■ 한국에 온 버마 난민의 간절한 희망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버마 민주화운동)의 총무로 활동 중인 내 툰 나잉(Nay Tun Naing) 씨는 현재 한국에서 자국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아웅 산 수치 여사를 비롯해 군부에 의해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잉 씨와 친구들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군사독재정권을 피해 한국에 온 망명자들이다. 나잉 씨는 1994년에 입국해, 2003년에 난민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 12월 2일 국회인권포럼 주최 ‘난민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낭독했다. 이 편지는 난민 신청자들이 겪는 고충을 대변한다. “한국에서 현재 민주화 활동을 하고 있는 버마 활동가들은 대부분 1988년 버마의 민주화 항쟁 때 저항에 참여했던 학생세대들입니다. 88 항쟁이 진압되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뒤버마에서 더 이상 활동이 어려워지고 신변 위협까지 받은 많은 학생들과 반정부 인사들은 여러 경로로 해외로 도피하게 됐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난 우리는 독재의 역경을 이겨내고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한국에 매력을 느꼈고, 많은 것을 배움과 동시에 민주화 활동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버마 친구들이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 오기 시작했고,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고민과 결심 끝에 우리는 마침내 NLD 한국지부를 결성하게 됐습니다. 당시 우리는 난민의 지위와 신청 방법을 몰랐고, 회원 두 명이 불법체류로 체포됐습니다. 그 중 한 명은 강제송환 조치됐고, 다른 한 명은 인천 출입국사무소에서 3개월 간 구류생활을 했다가 한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석방됐습니다. 98년부터 버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와 캠페인 등을 해 온 우리가 버마에 송환되면 무슨 고초를 겪을지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시민단체의 조언에 따라 난민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5월에 피난처 등의 시민단체와 민변의 박찬운 변호사의 도움으로 NLD 회원 20명이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우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으려 한다고 오해했습니다. 난민 신청 후 출입국사무소에서 가끔 면담을 요청해 왔고, 이로 인해 회사의 사장이나 공장장과의 관계가 불편해져 해고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법무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에도 자유롭게 생각을 전할 통역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마 친구들은 한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동행해서 통역을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난민 신청 3년 만에 신청자 21명 중 3명이 난민 인정을 받게 됐고, 또 2005년에 5명이 추가로 난민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에 난민 신청을 같이 했지만 5년 간 아무 조처 없이 있다가 갑자기 난민 신청을 거부한 9명에 대해서 난민 불허 통보와 함께 출국권고가 내려왔습니다. 정부의 판단에 따라 자격 미달이라면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난민 신청을 하고 애타게 기다리는 신청자들을 5년 간 방치한 처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고, 이는 난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했습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난민 인정을 받은 사실이 기쁘기도 하지만, 난민으로 살아가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난민이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외국인등록증과 난민여행증명서·의료보험이 전부입니다. 의료보험도 일자리가 없으면 보험료를 낼 수 없어 혜택을 받기 힘듭니다. 거주 지원이나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제니스 린 마셜 UNHCR 한국 대표는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의 개정을 강조했습니다. UNHCR은 난민 인정비율 자체보다 절차적 제도의 공정성과 담당 공무원의 사안에 대한 식견 교육·연수, 비적대적 접근방식 등 공정하고 효율적인 난민 지위 인정제도에 더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난민이든 아니든 외국에서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라는 것은, 조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머물면서 기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국의 지식과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게 해준 점 감사합니다. 훗날 미얀마가 민주화돼서 돌아가게 되더라도,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 생각하고 한국과 미얀마가 우호적인 관계가 되는데 기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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