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급여 전환, 5년 간 병원 전전 현재 경기도의 한 사립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A씨(여.49)는 1990년에 처음 조울증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이후 총 10회 이상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며 입원했다고 한다. 최근 2년 간은 아예 지역사회에 거주한 경험이 없다. 가족들은 환자의 퇴원에 부정적이다. 환자 스스로 증상을 두려워하고, 살 공간이 부족해서이다. 환자는 발병 이후 입퇴원을 반복했고, 결혼 상태를 간신히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통원치료를 받으며 지낼 만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투병생활로 남편과 10년 전부터 별거상태인 환자는 친정에서 살고 있었는데, 2003년 Y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계속되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정부의 도움을 받고자 이혼했고, 이후로는 한 병원에서 6개월을 지내고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장기입원 상태에 있게 됐다고 한다. 퇴원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재발하면 다른 병원에 옮겨야 하니 오래 있으라”고 했다는 것. 가족은 환자가 집을 나가라는 환청 때문에 가출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 병원에 장기입원했다고 설명했다. ■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반복적으로 입원 중인 환자 현재 경북 지역의 사립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B씨(남.66)는 1989년에 알코올 의존증 진단을 받고, 조사 당시의 입원을 포함하여 총 15회 이상 정신과 전문병원에 입원했다. 그 중 6개월 이상의 장기입원이 2차례였다. 현재는 2007년 9월 이후 1년 1개월째 입원하고 있다. 환자는 가족이 더 이상 자신의 회복을 믿어주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환자는 처음 발병 이후에는 직업을 갖고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퇴원을 하면 또 술을 마시고 집안에서 물건을 부수며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문제가 반복되었다고 한다. 환자는 금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퇴원하고 싶어했지만, 환자의 아내가 “환자가 다시 술을 마시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해서 입원을 하고 있다. ■ 거주지가 없어 퇴원하지 않고 계속 병원에 있으려는 환자 현재 대구 지역의 정신요양원(사회복지시설)에 입원 중인 C씨(여.37)는 1998년에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고 총 3회 정신전문병원·정신요양원에 입원했고, 지금 요양원에서 3년째 입원 중이다. 환자는 독립된 생활은 불가능해도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형제·자매가 환자를 돌봐줄 여력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환자는 지역내에 정신보건 서비스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이용한 적도 없다고 한다. 환자는 갈 곳이 없어 퇴원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으며, 다만 큰언니가 면회를 좀 더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은 교도소와 함께 ‘총체적 통제시설’로 분류된다. 이유가 무엇이건 해당 시설에 들어오는 순간 외부와의 접촉은 제한되고, 모든 행동이 통제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정신병원은 치료가 목적이고, 교도소는 교화를 위한 장소인 만큼, 시설은 해당 목적을 수행하면서 수용된 사람들의 삶의 질을 최소한 일반인의 평균치 정도로는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시설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한 단계 낮은 처우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2월 17일 전국 정신의료기관·정신요양시설 등 72개 시설 환자 1만2889명을 상대로 진행한 ‘2008 정신장애인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입원환자 중 17.5%(2258명)만이 본인 의지대로 입원한 반면, 82.5%가 보호자와 시·도지사, 경찰 등 타인에 의해 강제로 입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본인이 스스로 입원에 동의하는 경우에도 반 이상(58.6%)의 입소자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했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 정인원 정신과 교수는 “자의입원이 아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으로 입원유형을 유도하는 것은 명백히 ‘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환자권리’ 알고 있는 환자 절반도 안돼 2008년 3월 21일 개정된 정신보건법 제29조 1항에는 ‘정신의료기관 등에 입원 등을 하고 있는 자 또는 그 보호의무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자신 또는 당해 입원환자의 퇴원 또는 처우개선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의 권리를 입소자가 알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내용을 보면, 사회복귀시설을 제외한 1,926명의 입소자 중 813명(42.2%)이 이 사항을 알고 있을 뿐, 1015명(52.7%)의 나머지 응답자는 퇴원 및 처우개선 관련 법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시설유형별는, 정신의료기관 중에서 국립정신병원의 입소자가 가장 많이 인지한 반면, 정신과 의원의 입소자가 인지률이 가장 낮았다. 정신요양시설의 입소자는 정신의료기관에 비해 인지율이 더 낮아, 정신과의원의 입소자보다도 더 낮은 인지율을 보였다. 정인원 교수는 “아무리 병식(病識)이 없는 정신질환자라 하더라도 환자는 입원하기 전에 입원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며 “입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답변한 환자는 42.2%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자세한 설명을 듣거나 서면으로 통지를 받은 입소자 수는 24.1%로 더욱 적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를 속이거나 모르게 해서 입원한 경우는 그 자체로 환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또 해당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정신의료기관에 40년 이상 입원한 사람도 정신병 치료시설에 입원한 환자들의 평균 입원기간은 668일이로 조사됐다. 이는 영국의 10배, 독일의 25배, 이탈리아와 비교하면 무려 50배 긴 기간이다. 이 중 입원기간이 10년 이상인 환자가 80명에 이르렀으며, 무려 40년 이상(488개월) 입원한 사람도 발견됐다. 2006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정신병 환자의 입원일 수는 평균 247일이며(정신요양시설의 경우 2630일), 이 중 6개월 이상 장기입원자가 55.5%, 3개월 이상이 68.9%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 기관이나 시설에서 퇴원한 환자가 지역사회에 머물지 못하고 바로 다른 기관에 입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횡수용화’도 28% 정도 발견됐다. 다른 병원이나 시설에서 퇴원 후 바로 입원한 경우는 15%정도로 조사됐다. 환자를 입원시킨 보호자들은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있거나 증상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또, 거주지에 ‘전혀 문제 없다’는 응답은 55%, ‘매우 문제 많다’가 24.3%여서, 환자들이 퇴원 후에 갈 곳이 마땅치가 않다는 점이 장기입원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강원대 박종익 정신과 교수는 “장기입원 환자의 보호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역사회 복귀에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이나 제도적인 보완만으로는 장기입원을 줄이기 쉽지 않다”면서, “거주시설 등의 확대를 통해 단계적인 탈원화(脫院化)를 시도하는 방법이 비교적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 이유 모른 채 강박…언어·신체·성적 폭력 경험하기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보호실 등에 수용하는 강박 경험이 있는 입소자는 28.9%(574명)였다. 이들 중 34.7%는 강박 전후에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으며, 14.5%는 강박 중 언어적·신체적·성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정신보건시설의 종사자들은 구타나 개인정보 유출, 환자 개인 재산의 사용 관련 사항 등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인지하고 있었으나, 환자의 동의 없는 입원 결정이나 격리·강박 등의 환자 행동통제는 정신질환의 특수성으로 취급하여 인권침해라는 인식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강박 경험 관련 문항에 대한 응답에서는 다른 종류의 문항에 비해 전반적으로 무응답률이 높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그 이유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정인원 교수는 “강박을 당한 경험자체가 입소자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여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아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강박 경험 자체가 대상자에게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을 유발시켜 무의식적 억압과정에 의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억을 못할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경향은 강박 시행에 대한 설명이 없을 경우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양상을 보였다. 정인원 교수는 “현행 ‘격리 및 강박 지침’에 따른 기록을 철저히 하고, 환자 60인당 1실 등 시설 규모에 따라 다른 규모의 격리실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했다. 격리실은 다른 환자들에게 공개되지 않도록 구분되어 있어야 하며, 격리실 내에 자해를 방지할 수 있는 충격완충재가 사용돼야 한다. 또, “현재의 제도로는 촉탁의(정신병 의사)가 정신요양시설의 불법이나 편법을 묵인 내지는 방조할 여지가 많아, 촉탁의 제도를 전임제로 하는 안을 적극 검토해야 하며, 현재 주당 8시간 이상의 최소규정도 주당 16시간 등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수용시설과 장비도 문제 투성이 노후화된 정신요양기관의 시설 및 장비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인권위 조사에 의하면, 전체적인 건물의 외양과 상태를 보면 정신의료기관과 요양기관 모두 과거의 시설과 최근에 지은 시설과의 격차가 상당히 컸다는 평가이다. 일부 기관은 방문이 훼손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 건축된 건물들은 대체로 양호하여 기존 시설과 편차가 커서 정신질환자들의 설문조사에서도 “지옥과 천국의 차이”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또, 정신질환자 중심, 즉 사용자 중심의 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이다. 간호원실(사무실)·목욕시설·프로그램실 등은 법규상 필요에 의하여 설치됐을 뿐, 환자의 접근이 어려운 위치이거나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근무자가 시설 내를 관찰하고 상담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다. 폐쇄병실인 경우에 별도 위치의 목욕실이 자유롭게 사용되기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과도한 CCTV의 설치로 사생활 침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병실 전체, 화장실 전체가 노출되는 CCTV는 정신질환자가 속옷을 갈아입을 때조차 노출을 피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해소 등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감정은 두렵고 개인적 관계를 갖거나 이해관계가 얽히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경상대 서미경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심리적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진정한 사회통합을 방해할 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자존감을 저하시키고 정신보건 서비스의 접근을 망설이게 한다”며 “결국 이것이 정신병적 증상을 악화시켜 사회적응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