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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 화랑] 心象風景 - 박남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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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0호 편집팀⁄ 2009.01.13 15:52:16

서울미술대전 초대 출품 (서울시립미술관) 현대미술대전 초대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국제현대미술제 초대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99대한민국원로작가전 초대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자연전 초대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99 인간,자연,사물전 초대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격동기의 예술혼전 초대 출품 (부산시립미술관) 2000현대정신전 초대 출품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개관기념전 초대 (광주시립미술관)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및 학장 역임

어떤 작품들은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물론, 결국은 작품 그 자체가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지만, 그 전달에 이르기까지는 경우에 따라 복잡하고 골치 아픈 보조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을 통해서 보다 예술적인―만약 예술이 전적으로 창작이라면―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편, 어떤 작품들은 아무런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작품들은 자연의 모방, 나아가서 자연과의 교감을 표현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 공통된 환경을 대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쉽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이 필요한 경우이거나 필요 없는 경우이거나 공통적인 점은 작가가 무엇인가를 표현하며 소통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획득한 그 세대의 기억·추억·공통관심사·정신 등을 표현할 수 있으며, 각각의 세대가 다른 감성을 가지는 만큼 그 감성의 차이에 따라 다른 모습의 작품이 나온다. 따라서, 작가는 그의 세대의 역사와 경험을 벗어날 수 없다. 예술은 사회현상 중의 하나이며, 예술가는 동일한 역사를 경험하는 사회를 이루는 조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행동범위는 각 사회에서의 개인의 위상에 의해 결정된다. 예컨대, 전제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위상과 민주사회에서의 개인의 위상은 완전히 다르며, 그에 따라 작품의 형식과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남재 화백이 미술에 입문한 1955년은 전쟁 직후여서, 사회·경제적으로 극도로 피폐한 시기였다. 당시 미술의 경향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독자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흐름이었으며, 주로 이상화된 향토성이 주제가 되었으며, 소재는 한국적인 풍경·기물·삶의 모습 등이었다. 일제의 침탈과 전란 이후에 생활화된 참상은 주제가 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미술이 삶의 참담한 모습―그렇게 분명히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그것을 정화·이상화시키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은 문자 그대로 미(美)를 추구하는 기술이었고, 그 아름다움은 초라한 삶 속에서는 발현될 수 없었다. 이는 마치 폐허 속에서 커다란 희망을 가지고 보다 향상된 삶을 지향했던 당시의 사회 모습과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박남재 화백의 작품들은 그의 꾸준한 추구를 보게 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나 더욱 멋들어지고 노련한 필치를 발견하려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러한 무변화(無變化)에 가까운 그의 화경은 너무나 쉽게 변하고 최신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좇는 시대적 풍토와는 상당히 다르다. 박 화백은 40년 동안 같은 자세로 그림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빠렛트에서 비벼서 낼 수 있는 빛깔이 열이라면, 그 중 다섯 가지밖에 모릅니다. 누군가 나에게 그림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1986년 개인전에서 미술평론가 장석원 씨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같은 오지호(吳之湖) 화백(畵伯)의 수제자였고, 원광대학교에서 20여 년 동안 후학을 지도해 왔으니만큼,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겸손인 동시에, 작품은 설명 없이 직접 느껴져야 하는 어떤 것이며 작품의 의미는 감상자 스스로가 찾아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이러한 그의 철학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다. 인물화·정물화·풍경화 등―주로 풍경화―그 대상이 무엇이건 박 화백은 직관을 가지고 그린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는 한 번에 짚어 그린다. 구도에서나 풍경을 구성하는 경물(景物)들의 선택에서나 늘 자유롭고 넉넉하다.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그려내기 때문에, 작품에는 꾸밈이 없고 항상 선선하고 소탈하다.

박 화백의 소재는 지리산·내장산·마이산·선운사 등등 그가 살고 있는 전주 주변의 승경(勝景)들이다. 그는 우선 사생에 충실하다. 그의 소품들은 사생에서 거의 완성된다. 그리고 그 소품들을 기초로 해서 대작들이 제작된다. 그 과정에서 실제 경치는 그의 내면적 경치로 바뀌게 된다.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장소보다는 <붉은 산>, <秋情>, <綠의 山情> 등의 제목들이 보여주듯이 소재가 점차 내면화되어 가는 것이다. 보다 강렬한 색들이 대담하게 사용되고, 녹색과 빨강의 보색이 짙은 우수를 표현하고, 노랑이 한 줄기 파고들어 강한 대조를 보여줄 때, 지리산·마이산·내장산 등등의 구체적인 산들은 산정(山情)으로 승화되고, 이는 심상적 색채들을 통해서 표현된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시원하고 넉넉하고 때로는 적료함을 보여주는 심산풍경(心山風景)인 것이다.

박남재 화백의 예술에서는 머물고 싶을 때 더 멀리 과감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이 그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시도 쉬지 않고, 다른 데 눈을 빼앗기지도 않고 정진하는 자세가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작 태도와 방법은 그의 세대가 갖는 보편적 특수함이다. 실제의 삶과는 유리된 듯한 낭만적 열정과 이상화된 소재의 추구. 이는 현실보다는 향상에의 희망에 매진했던 그가 속한 세대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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