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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이 나서 왔지”

수도권 전철 연장개통 이후 노부부 북적대는 온양온천…무료 전철은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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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1·102 박성훈⁄ 2009.01.20 15:33:01

1964년 1월 4일. 안모 씨(남.74)와 김모 씨(여.68)에게는 칼바람이 쌩하고 불던 쌀쌀한 겨울 날씨가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주홍빛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은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날이기 때문이다. 청주의 모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던 안 씨는 새로 학교에 부임한 음악 교사 최 씨가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반석 같은 인식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던 학교 분위기에서 교사 간의 연애란 꿈도 꿀 수 없었다. 혈기 왕성한 어린 학생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쥐도 새도 모르도록 비밀스러운 연애를 이어 간 안 씨와 김 씨는 마침내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축하하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성대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사이렌이 울렸다. 당시는 박정희 집권 시절이라 한낮에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각박한 시대의 통제용 사이렌이었지만, 이날만큼은 한 가정이 탄생하는 순간을 축하하는 음악처럼 들렸다. 장항선 기차를 타고 설레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와중에도 함박눈이 아름답게 내렸다. 모든 상황이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온양온천 시내는 두 신혼부부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관광자원도 갖추지 못한 온양이었지만, 두 사람은 호텔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박3일 간의 신혼여행의 단꿈에 젖어 들었다.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장모 씨(남. 67)와 김모 씨(여. 66)는 신혼여행 첫날부터 부부싸움을 했다. 여행지를 정할 때부터 서로 의견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장 씨는 온양온천으로 못을 박아 제안했지만, 김 씨는 조금 더 무리해서라도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신혼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일생에 한 번 즐기는 허니문인데 조금 더 부담을 진들 어떠랴. 하지만, 완고한 장 씨는 고집대로 온양온천으로 장소를 정했고, 급기야 갈등이 신혼여행지에 가서야 터지고 만 것이다. 결국 사흘을 지내려고 했던 여행 계획은 이틀로 줄어들었다. 결혼 초장부터 냉전기류가 흐른 장씨 부부이지만, 이들은 마을 안에서 중매를 통해 배우자를 만나던 당시의 상례를 벗어나 연애결혼에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소꿉친구로 지낸 두 사람은 치기 어린 시절을 지나 장성하고 나서는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됐다. 두 사람은 연애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서로 다른 시기를 짚었다. 장 씨는 연애를 시작한 시점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라고 설명했지만, 김 씨는 대략 결혼하기 2년 전이라고 말한 것이다. 바쁜 장년시절을 거쳐 당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도 됐지만, 입이 맞지 않자 부부는 다시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장 씨가 김 씨를 먼저 좋아했다는 것. 결혼한 후에도 무던히도 부부싸움을 했지만 끈끈한 부부애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평택에 사는 한모 씨(남. 72)는 고향이 아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산이라 온양온천이 그리 낯설지 않다. 어릴 적부터 가족 또는 친구들과 자주 온천욕을 즐기러 오가던 터였다. 온양온천을 내집 드나들 듯 다녀서 아산시내는 집 안마당처럼 익숙했다. 그래도 워낙 목욕을 좋아해 신혼여행도 온양온천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청년시절 한 씨의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1964년에 군산에서 온 박모 씨(여. 66)와 결혼을 하게 된 한 씨는 계획대로 기차를 타고 아산의 온양관광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온양온천에서 보낸 이틀간의 일정은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즐겨 온 온천욕이었고 워낙 익숙한 지역이었던 탓이다. 그래도 한 씨와 박 씨는 설레는 신혼의 단꿈에 젖어 마냥 즐거웠다고 한다. 기실 온양 지역에는 40군데의 온천을 빼고는 별다른 관광자원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보수한 현충사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부부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충남 예산군 덕천면에 위치한 수덕사에 가서 하룻밤을 더 묵었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이듬해 유행한 가수 송춘희의 ‘수덕사의 여승’을 들을 때마다 신혼여행 때의 분홍빛 추억이 떠올라, 그때부터 18번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들은 아산의 온양관광호텔에서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노인 부부들이 들려준 신혼여행 기억의 퍼즐들을 기자의 상상력으로 붙여 만든 신혼담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세 부부는 모두 온양관광호텔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낸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40년 전에 복숭아같이 고운 피부를 가졌던 청춘 남녀는 세월이 흘러 이마가 훤히 벗겨지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다 됐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기도 했다. 4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기기에는 청춘이 너무 짧았고 몸은 노쇠했지만, 추억은 늙지 않았다. 첫 번째로 소개된 안 씨와 이 씨 부부는 45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 온양온천의 호텔을 찾았다고 한다. 다음의 두 부부도 신혼여행 시절을 떠올리며 이곳을 다시 찾았다. 1960~70년대에 고급 신혼여행지로 꼽혔던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노부부들이 뇌리에 아득하게 자리잡고 있는 신혼의 추억을 쫓아 온양온천을 다시 찾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수도권 지하철이 신창까지 개통됨에 따라 ‘황혼여행’의 중심지로 탈바꿈해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 만원이면 온천여행 가능 12월 15일 노선연장 운행 이후 아산 구간 4개 전철역사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5079명으로 집계됐다. 기차역에 장항선 열차만 다닐 때는 승객이 30~40명에 불과했는데, 철로 복선화로 수도권 전철이 다니면서 이같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 중 70~80%가 고령자라고 한다. 이는 전철 개통으로 수도권 노인층이 만 원 정도만 있으면 온천여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시의 관계자는 “노인들은 전철을 무료로 탈 수 있기 때문에 목욕비와 식사비를 합해도 1만 원이면 훌륭한 관광을 즐길 수 있다”면서 “손님이 많은 주말을 피해 부부동반으로 주중에 거의 매일 온천욕을 오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온양온천의 유동 인구는 1000여 명에서 3000여 명으로 3배나 증가했다. 전철 1호선 청량리나 소요산에서 발차한 신창행 열차에는 노인들이 들어차 있다. 현재 천안역~신창역 연장구간엔 평일 왕복 114회, 토요일 70회, 휴일 62회 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친구들과 부인과 함께 열차에 오른 김남현 씨(72)는 “노인들은 지하철 요금이 무료이니까 이동이 쉽다. 지하철이 개통됐다고 하면 장소 불문하고 꼭 한번씩 가본다”며 “온양온천은 지난주에 가고 두 번째인데, 물리치료를 받는 것보다 온천욕 한 번 즐기는 게 훨씬 낫다”며 앞으로도 자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온양온천, 참 많이 변했네” 이곳을 찾은 노부부들은 40년 전의 시내 풍경을 떠올리며, “참 많이 변했다” “너무 달라졌다”고 혀를 내둘렀다. 60년대의 온양은 일제시대 이후 별다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나무로 지어진 건물에 농경지가 펼쳐진 시골에 가까웠다. 하지만,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고 제법 큰 시내가 된 지금의 모습에 노부부들은 만감이 교차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목욕을 즐겼던 온천탕의 외형과 시설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현충사와 신정호수·외암민속마을·민속박물관 등 옛날에는 없거나 상품화되지 않았던 관광상품도 많이 생겼다. 이 같은 주변 관광지들은 지하철 개통 이후 20% 이상 방문객들이 늘었다고 한다. 부인과 이곳을 찾은 김정 씨(76)는 “이전에 공무원으로 임직할 때 회사 야유회로 자주 왔었는데, 당시에는 온천이 나무로 돼 있고 건물도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며 “서비스가 풍성해지고 즐길거리가 많아져 좋지만,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데가 전혀 없어 동네가 낯설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온 박경배 씨(67)는 “처음 왔을 때에는 이순신장군 생가도 허술했고, 현충사도 볼품없었다. 지금은 많이 정비되고 길도 닦아 놓는 등 잘 만들어 놨다고 했는데 나중에 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망원동에서 온 권순복 씨(66)는 “처음에 여기 왔을 때에는 민속촌이나 박물관이 없었다”며 “이번에 온 김에 한번씩 둘러보고 갈 생각”이라며 남편 김상수 씨(76)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 “오래간만의 활기…다양한 서비스 제공해야” 온양온천역 앞 관광안내소에는 매번 차가 도착할 때마다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와 어느 온천이 싼지, 어느 음식점이 맛있는지 등을 물어본다. 매번 같은 질문에 같은 응답을 반복해야 하는 직원들은 차가 들어올 때마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다. 관광안내소 직원 윤영수 씨는 “원래 혼자 근무하던 곳인데, 노인 관광객이 갑자기 늘어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생과 시청 직원을 지원받는다”며 “노부부나 친목회 위주로 온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이날 업무지원을 나온 성수경 시청 민원과 계장은 “지하철 개통 이후 갑작스레 방문객이 몰려 시 분위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 신속히 대응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개통 초기라 손님이 몰리는 만큼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서비스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관광안내소 앞에 놓인 관광안내 브로셔와 각종 부대시설 할인 쿠폰을 빠짐없이 노인 방문객에게 챙겨주었다. 온천 및 목욕탕은 전철 개통 전에 비해 손님이 20∼50%에서 많게는 두 배 가량 늘어났다. 온양관광호텔의 박응순 팀장은 “온천탕을 찾는 대부분의 고객이 노인들인데, 지하철 개통 전에 비해 온천탕 매출이 20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시내 주요 음식점도 10∼15% 정도 손님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준일 아산관광협회장은 “온양온천이 사람으로 붐비는 모습을 몇년 만에 보는지 모르겠다”며 “아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겁게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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