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걸려 왔는데, 특히나 야간에 그냥 숨소리만 들린다든지, 그렇게 이상한 전화를 하는 고객들이 있어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상담원들은 울기도 하고요. 끊고 나면 가슴이 막 뛰고 그러잖아요. 우리 쪽에서 끊을 수도 없으니까, 통화를 마치고 나면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는 거예요.” “속옷 방송을 하면 ‘너의 가슴은 크냐’ ‘너는 무슨 컵을 하냐’ 고 짓궂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이상한 신음 소리만 내고 끊는 사람도 있어요. 여자친구한테 속옷을 선물하려 한다면서 민망할 정도로 세세하게 물어보기도 해요.” 이 같은 사례들은 콜센터에 근무하는 텔레마케터들의 증언이다. ‘솔’ 음정에 맞춘 목소리와 미리 연습된 접대 멘트, 고객의 폭언과 욕설을 참아내는 인내심 등의 핵심 직무요건으로 무장한 콜센터의 텔레마케터들이 고객을 상대하는 기술과 서비스의 질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은 콜센터 직원을 대하는 일반 대중의 의식이 서비스 문화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콜센터 증가, 텔레마케터 노동 인권쟁점 부각 나날이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에서 기업들은 고객만족도 향상과 영업력 강화를 위해 전화를 통한 고객관리 및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콜센터의 텔레마케터를 이용한 고객관리와 마케팅은 고객의 반응과 불만 등을 즉시 파악하고, 고객과 기업 간 1:1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콜센터 종사자들의 규모가 점차로 증가하면서 이들의 노동인권도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김상희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세계적으로 콜센터는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밀집된 서비스형 대공장의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 및 비정규직에 대한 제도적 보호의 배제나 차별의 문제와 함께, 콜 업무의 특성이나 집단적 노동자의 관리에서 인권문제가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국내 콜센터도 대부분 계약직이나 파견직에 의존하고 있다. 콜센터 직원들은 실적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오는 업무 스트레스, 고객과의 통화에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등의 이유로 이직률이 높다. 그럼에도 콜센터 산업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여성이 대다수인 콜센터 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 콜센터를 아웃소싱(out sourcing, 업무 위탁)하는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종사자들의 고용은 더욱 불안해진다. 김 소장은 “이 같은 열악한 고용조건 때문에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은 물론, 노동조합 조직이 거의 전무해 콜센터 노동자들이 처지를 개선할 수단도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10명 중 4명 성희롱 피해자…가해자는 고객 전화로 상품판매 등을 하는 콜센터 텔레마케터 여성 근로자 10명 중 4명 정도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고, 9명 이상이 업무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등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에 의뢰해 작년 하반기에 여성 텔레마케터 5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객으로부터 반말, 욕설, 여성비하적 발언 등의 언어폭력, 그 다음으로 불쾌한 성적 농담과 데이트 요구 등을 받거나, 사내에서 성적 농담, 신체접촉 등 성적으로 불쾌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36.7%의 응답자들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고객에 의한 성적 불쾌감 사례가 대다수인 77.6%를 차지했다. 고객의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전화를 끊거나 무시한다’는 응답이 62%인 반면, 고객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는 12%로 나타났다. 이는 상담원이 고객보다 전화를 먼저 끊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내 지침과 무관하지 않다. 고객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회사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45% “사내 성희롱 예방조치 전혀 없다” 이들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욕설 등의 정신적 폭력을 감당해도 회사의 보호조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회사의 성희롱 예방 조치가 전혀 없는 경우가 45%였고, 그나마 성희롱 예방조치를 받는 경우는 정규직이 84.7%인 반면, 비정규직은 51.8%에 불과했다. 성희롱 대처법 등 전반적인 고객응대 기법을 담은 매뉴얼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90%의 응답자가 ‘없다’고 답했다. 이들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면 ‘참고 지낸다’와 ‘동료들과 상의’하는 정도로 위안을 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조나 민간 상담기관, 노동부 등에 접촉하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근무환경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93%가 호흡기질환(54%)·두통(44%) 등 업무수행과 관련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상여금을 포함한 세금공제 전 월평균 임금은 134만2,000원으로, 우리나라 산업평균의 70% 수준에 그쳤다. 근속기간도 산업평균인 10.5년의 3분의 1 정도인 3.1년에 불과했다. 또 여성 비율은 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회원국 평균(69%)보다 현저히 높았고, 비정규직 비율은 66%로 OECD 평균(29%)을 크게 웃돌았다. ■콜센터에 가면 온통 여성 이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원인은 콜센터 직원의 대다수가 여성인 현실과 무관치 않다. 콜센터 상담원의 성별 비율을 살펴보면, 여성이 10면 중 9명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근로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다. 남성 직원이 있더라도 이들의 주요 역할은 직접 고객을 마주하기보다는 기술·관리직인 경우가 많다. 일부 콜센터에는 남성 상담원도 있는데, 이들은 주로 채권추심이나 고질적인 문제고객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콜센터 상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여성화된 직업임을 알 수 있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상담원들의 학력은 고교 졸업자가 가장 많은 57.3%를 차지했다. 2년제 대학(23.2%)과 4년제 대학교(15.8%) 졸업자도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상담원들의 연령은 40대 31.1%, 20대 31.0%, 30대 28.4% 등의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상담원이란 직종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직종이라는 점이 여성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김성희 소장은 “상담원은 일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편이다. 계속 팽창하는 콜센터 산업은 보다 많은 상담원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고졸 여성이나 주부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상냥한 목소리로 고객을 접대해야 하는 상담원의 역할은 통상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인식이 많아 상담업무도 여성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무상 고통은 ‘숙명’ 현재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근로자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는 없다. 콜센터 업무 자체가 기업의 상품을 판매하거나 고객의 피드백을 받는 등 기업의 사익을 대변하는 일이기 때문에, 업무상 고통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콜센터 근무자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면서 자존감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환경의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휴게실의 설치와 함께 충분한 휴식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고객으로부터 심각한 수준의 감정적 훼손을 경험했거나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할 때 근로자가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의사소통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30인 이상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에는 반드시 고충처리 상담소나 고충처리 전문가의 등을 배치하는 방법이 그 대안이다. 김성희 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감정적 소진을 예방하기 위한 매뉴얼이나 갈등시의 대처방안 등을 명시한 자료를 사무실에 비치하고, 감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충분히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의사소통 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홍주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존 일자리를 ‘더 나은 일자리(decent work)’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동부와 여성부 등의 지원정책과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기본적인 휴게시설 및 법정 휴식시간 준수 등의 기본 노동조건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 그리고 고객의 성희롱에 대한 대처방안의 법제화 등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국내 모 이동통신사의 한 상담원은 “관심고객들만 따로 관리해서, 급한 용무로 전화한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원활하고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관심고객특별관리부 등을 따로 신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토막 인터뷰] “제발 우리를 인격체로 대해주었으면…” 콜센터는 기업의 ‘촉수’와 같다. 전화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에 대한 불편불만 사항을 접수하는 등, 일선에서 고객과 접촉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센터 직원들은 전화를 통한 판매나 상담 업무를 ‘기업의 최전방’ 혹은 ‘최후방어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업무는 대개 인바운드 업무(in-bound. 전화를 받는 업무)와 아웃바운드 업무(out-bound. 전화를 거는 업무)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인바운드 업무는 주로 고객의 구매요청을 접수하거나 불만·애로 사항을 접수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고객의 ‘싫은 소리’를 감내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국내 모 이동통신사 고충처리부에 근무하는 고객상담원 서모 씨(26)의 인터뷰를 통해 콜센터 직원들이 겪는 인권사항을 점검해본다. 콜센터 상담원들이 성희롱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던데요. “성희롱이나 욕설은 비일비재한 일이에요. 상담원 일을 시작하면서, 생전 처음 들어본 입에 담기 힘든 욕을 여러 번 들었죠. 상담원에게 실컷 욕을 하다가, 상부에 전화를 넘기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존댓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어떤 분들은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 오빠야, 오빠 알지?’라는 식으로 말을 걸기도 하고, 신상조사하듯 캐물으면서 ‘나랑 결혼할래?’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해요. 그럴 땐 ‘상담 외에 다른 문의를 하시면 끊을 수 있다’고 주의를 주기도 하는데, 실제로 끊을 수는 없어요.” 어떤 유형의 고객이 가장 대하기 껄끄러운가요? “솔직히, 여기서 일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겼어요. 장애인들이 일반인보다 더 심하게 욕설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신체가 불편해서 겉으로 표현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전화로 푸는 것 같아요. 응대가 마음에 안 들면 그때부터 ‘지금 무시하는 거냐’ ‘날 뭘로 보는 거냐’하는 폭언이 쏟아져서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요. 간혹 정신지체 고객들 중에는 전화로 성적 욕구를 해결하려는 경우도 있어요. ‘지금 무슨 색 속옷을 입었는지 아느냐’ ‘자위행위 해도 되느냐’ 등 민망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하기도 해요. 일면 연민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심하다’ 싶을 때가 많죠.” 깐깐한 고객들을 상대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겠어요. “안내과정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아요. 이를테면, 청구금액이 3만3122원인데 3만3120원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차피 2원은 절삭되는 요금이거든요. 그런데 2원을 왜 빼느냐며 ‘이런 식으로 하느니 퇴사해라’ ‘일 그만두고 싶으냐’는 폭언도 나오죠. 하루에 일부러 30번 이상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는 스토커형 고객도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용무가 급한 다른 고객의 문의를 수용할 수가 없어요. 다른 이에게도 피해를 주는 결례이죠.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겠네요. “그래서 이런 요주의 고객의들은 따로 목록을 작성해서 관리를 해요. 관심고객들만 담당하는 전문부서가 따로 있으면 업무 효율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콜센터 직원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상황이 왔다고 생각하나요? “전화가 익명성을 보장해주잖아요.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욕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청구요금을 깎아달라는 식으로 떼를 쓰기도 해요. ‘다른 사람은 요금조정 다 해줬다는데 왜 나만 안 해주느냐? 좋게 말하면 호구로 보이느냐’는 식의 불만이에요. 요금은 저희가 깎거나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인터넷에서 봤는데 데이터 통화료 할인해주지 않느냐, 50% 깎으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재차 설명 하면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는 고객도 있는데, 적법한 처리 여부를 떠나 제 이름으로 다른 기관에 접수가 되면 회사 이미지가 손상되기 때문에 그만큼 수당이 깎이게 돼요, 저희는 S, A, B, C, D등급으로 나누어 성과급 형식으로 추가임금이 지급되는데, 소비자보호원이든 본사든 일단 민원이 접수되면 등급이 떨어지게 돼요. 어쨌든 고객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봉급이 정해지니까요. 욕설 등은 그냥 참고 들어주면 되지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거부해서 당하는 불이익은 억울할 때가 많죠.” 이런 이유들이 콜센터 직원들의 높은 이직률과 연관이 될 수 있겠군요. “예. 이직률이 높아요. 나이 제한도 다른 직종에 비해 관대한 편이라, 취업이 어려운 편은 아니죠. 그만큼,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요. 저희 회사의 경우, 고객만족도 평가도 자주하고, 평가시험도 매일 보는 등 업무 압박이 심해요. 점심시간에 콜이 밀리다 보니 점심식사 시간도 불규칙하구요. 오후 4시에 점심을 먹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나갈 사람은 나가라. 더 뽑으면 된다’는 식으로 근로조건 향상에 신경을 써주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