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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고물 ‘귀하신 몸’

서울시 서대문구 고물상 현장취재…고물상, 서울에서만 작년에 60개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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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9호 박성훈⁄ 2009.03.17 16:40:28

3월 10일 서울시 서대문구청 앞 홍제천 가에 위치한 재활용폐자재 수집장. 사람들에게는 ‘고물상’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이곳은 30년 간 고물을 처리하는 일만 해 온 김광호 씨 내외와 30년 고물상 경력의 유덕렬 씨가 생계를 일구는 일터이다. 다른 철 스크랩 업체에서 크레인 기사로만 20년 넘게 일해 온 광호 씨가 홍제천 가에서 고물상 사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6년이 다 됐다. ■ 새벽을 여는 고물상 이 고물상에서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이른 아침부터 폐지와 신문지를 계량하고 정리하는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새벽부터 박스와 벽지, 지하철에서 수거하는 무가지 신문 등 종류도 다양한 폐지 꾸러미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손수레나 리어카에 실려 들어온다. 한쪽에서는 실려 들어온 파지와 갖가지 고물을 계량기에 올려 무게를 재고, 다른 한쪽에서는 들어온 고물들을 종류별로 분류해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이 고물상의 주인 김광호 씨는 사람들이 몰고 온 고물이 가득 담긴 수레를 일단 전자 계량기에 올려 무게를 잰 뒤, 고물을 내리고 난 빈 수레의 무게를 다시 재서 고물을 계량한다. 그리고, 재질마다 정해진 무게(kg)당 단가에 따라 값을 쳐준다. 이 고물상의 주 고객인 60대 이상 노인들에게 “요즘에는 별일 없으세요?” “편찮으시다더니 좀 어떠세요?”하며 인사를 건네는 것도, 커피를 타서 한 잔씩 대접해 올리는 것도 김 씨의 몫이다. 한쪽에서는 믿음직스러운 직원 유덕렬 씨가 박스를 차곡차곡 쌓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김 씨는 밤잠이 적어,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부터 파지 줍기를 시작하는 노인들을 위해, 이날도 6시 30분에 고물상 문을 열었다. 통상 이 고물상은 8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게 정상인데, 새벽부터 폐지나 고물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찍 문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 김 씨는 “저는 5시 반에 일어나지만, 이것도 다른 고물상에 비하면 늦게 일어나는 거예요”라며 웃음 짓는다. 이 고물상에는 각종 고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차 330평이라는 비교적 큰 규모가 무색한 게 사실이다. 최근 불황 탓인지 겨우내 물건을 찾는 업체가 많지 않아, 이전 같았으면 벌써 처분했을 고물들이 그대로 쌓여 있다. 하지만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15평, 30평 남짓한 규모의 소형 고물상에 비하면 넉넉하게 공간을 쓰고 있다. 고물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모습이 여느 행인들이 보기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분별없이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세심하게 뜯어보면 다 종류별로 제 위치가 있다. 고철은 고철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공병은 공병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헌 옷은 헌 옷대로 질서정연하게 분류돼 있다. 금속도 다 같은 금속이 아니다. 고철에서부터 비철류에 속하는 동·놋쇠·스테인레스 등 비교적 값나가는 쇠붙이들이 항목별로 분류돼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김 씨는 “다른 소형 업체에서는 리어카 한 대만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좁은데, 우리는 그나마 넓게 공간을 사용하고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구형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가전제품도 한쪽에 가지런히 쌓여 있다. 이 고물들은 모두 아시아권의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하는 물품이라고 한다. 기술이 발달돼 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것들도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 종이에 물은 왜 뿌리지? 8시 30분. 새벽에 고물 수거를 하는 사람들이 이때쯤이면 물건을 가져오기 때문에 슬슬 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지하철에서 무가지 등을 모아 오는 사람들도 이때쯤이면 고물상을 찾는다. 때마침 광호 씨의 아내 채강희 씨가 뒤늦게 출근했다. 대부분의 고물상이 부부가 함께 운영하듯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아들만 셋을 키우고 있는 터라, 엄마인 강희 씨에게는 아이들의 아침을 차려주고 등교시키는 일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이다. 고물상에서 강희 씨의 주요 업무는 고물을 분류하거나 사무실 경리 업무이다. 고물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매번 현금으로 돈을 지급하다 보니, 목돈보다는 푼푼히 나가는 돈이 많아 경리 업무가 필수다. 강희 씨가 출근했으니 광호 씨도, 덕렬 씨도 이제 한손을 덜게 됐다. 잠깐 손님이 없는 틈이 이들에게는 커피라도 한 잔 하며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자 내부 정리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유 씨는 잠깐 업무가 한가해지자, 호스를 이용해 폐지에 물을 고루 뿌렸다. 수거 차량이 이동하는 와중에 종이가 도로에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종이가 휘날리면 도로 환경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통행하는 차의 앞유리 등을 덮칠 경우 대형 교통사고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의 단속대상이 된다고 한다. 또, 박스 등은 표면이 미끄럽기 때문에 크레인으로 집어내거나 이동하는데 수월하도록 해주기도 한다. 김 씨는 “종이가 눅눅해져 수거가 어려워질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집어 나르기가 편하다. 또, 물을 뿌려 놓으면 이동 중에 종이가 날리지 않아 물을 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물을 뿌린 만큼 무게를 빼서 계산한다. ■ 조립식 칸막이도 고물로 쳐준다 11시쯤 되자 단골손님 한 명이 왔다. 서대문구 연희삼거리에 위치한 연희우체국 2층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조립식 칸막이를 수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광호 씨와 덕렬 씨는 트럭을 몰고 현장으로 갔다. 건물 2층에는 조립식 패널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광호 씨는 이를 보고 “실어 가도 돈이 될지 모르겠다”며 “오늘도 힘깨나 쓰게 생겼다”고 혀를 내둘렀다. 광호 씨는 “사무실이나 건물 내부 인테리어를 할 때 이런 조립식 칸막이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간혹 있긴 하지만, 사무실 크기에 따라 맞춤 제작해서 나오는 자재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조립식 칸막이는 누군가 통째로 재활용하기 위해 사 가면 모를까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다. 개당 무게가 60kg 가량 되지만, 얇은 철판 속을 석면으로 채운 샌드위치 패널이라 실속이 없다. 게다가 해체작업을 하면 해로운 석면 가루가 날리기 때문에 수거 자체를 꺼리는 품목 중 하나이다. 그래도 혹여 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물건을 수거하기로 했다. 이런 폐자재는 보통 고물상에서 15일~한 달 간 쌓아 뒀다가,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면 분해 처리한다.

작업은 처음에는 그리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계단과 복도가 좁은데 비해 패널이 무겁고 넓어 밖으로 빼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호 씨와 덕렬 씨가 한 조, 현장에서 인테리어 작업을 하던 기술자와 인부 등이 2명씩 한 조를 이루어 밖으로 가져갔다. 이리 돌리고 저리 뒤집어서 한 장씩 빠져나온 패널은 트럭의 짐칸에 다시 차곡차곡 쌓였다. 처음에는 한 장 내리기도 힘겹던 작업이 익숙해지니 수월하게 진행됐다. 광호 씨는 “그래도 이번 현장은 그리 힘든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승강기도 없는 공사 현장에서 지상 5층이나 지하 4층의 무거운 폐자재를 밖으로 내와야 할 때도 있어, 이번 일은 그나마 쉬운 편이라는 것이다. 작업은 약 한 시간 가량 소요돼 마무리됐다. 이제 이 패널들의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계량해서 계산하는 일만 남았다. 광호 씨는 고물상 입구의 대형 전자계량기에 패널을 실은 차를 올려놓고 무게를 쟀다. 그리고는 흥정에 들어간다. 광호 씨는 “단골 손님이라 일부러 값을 쳐줬다”며 돈을 건넸지만, 단골은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에 “다른 업체에서는 처리하기도 버거워 가져가려고도 안 한다”며 광호 씨가 통사정을 하자, 그제야 발걸음을 돌린다. 그는 돈을 받고 돌아가면서 “요즘에는 고철 값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옛날에 비해서는 그나마 오른 것”이라며 푼푼한 마음을 안고 돌아섰다. 고물상에 돌아왔을 때에는 오전에 주문했던 크레인차가 이미 도착해서 폐지를 수거해 가고 있었다. 광호 씨는 “고물마다 취급하는 업체가 제각각”이라며 “금속을 다루는 업체도 철과 동·놋쇠 등으로 세분화된다”고 설명했다. ■ 길 가다가도 공사 소리에 ‘솔깃’ 근처 소머리국밥 집에서 식사를 마친 고물상 식구들은 오전 내 수거한 고철들을 모아 ‘I 철 스크랩’ 가공업체로 가져갔다. 철 스크랩은 철강제품을 가공할때 나오는 철 조각이나 오래된 철 제품 등 고철을 말한다. 철 스크랩 가공업체에서는 거대한 프레스가 여러 모양의 고철을 한데 모아 정육면체 모양으로 찍어낸다. 광호 씨는 자신이 30년 전부터 일한 이 업체에 고철을 납품한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광호 씨는 어디 일감이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혹시, 종이 한 장이라도 떨어진 곳이 있지 않나 살피기도 한다. 모든 재활용 폐기물이 그에게는 돈벌이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단연 건설·설비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값나가는 비철류인 동파이프나 철근·철판 등 고철이 많이 나온다. 보통 사람이면 그냥 지나치는 공사현장이 광호 씨에게는 생계벌이에 더없이 귀한 ‘거래처’가 된다. 광호 씨는 이같이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폐품이라고 버리는 물건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보물처럼 보입니다. 작은 박스 하나라도 돈이라고 생각하면 손이 안 갈 수가 없어요.” ■ “봄이 오면 일감도 많아질 겁니다” 고물상은 오전에 손님이 점차로 늘다가, 12시부터 2시까지가 가장 바쁘다. 하지만 이날 따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한국수입업협회가 매달 원유·철강재 등 주요 원자재 30개 품목의 수입가격을 종합해 발표하는 코이마 지수는 2007년 1월 219.02였는데 12월엔 310.18로 50% 가까이 상승했다. 2008년 들어서도 상승세를 지속, 7월에 453.54로 가장 높았다. 이때 고물상의 숫자도 덩달아 급증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고물상은 2008년 기준으로 모두 760개에 이른다. 2007년의 700개에서 60개가 증가했다. 80개의 고물상이 영업을 새로 시작했고, 20개는 폐업했다. 광호 씨는 “서울시에서 파악하고 있는 숫자가 760군데 정도이지, 실상 작년과 올해 들어 더 많이 증가했다”며 “5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에서 나 혼자 고물상을 운영했는데, 지금은 주변에 고물상이 10개도 넘게 생겨 수입이 적어졌다”고 말했다. 지역 내 고물 공급이 일정한데 파이를 나누려다 보니 몫이 자연히 적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코이마 지수는 하락세로 접어들어 10월엔 200선 대로 내려앉았다. 고물상의 증가추세는 줄어들었지만, 이미 많아진 고물상 수에 비해 원자재 값은 갈수록 떨어져 고물상들 전체가 크고 작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광호 씨의 고물상도 1년 전까지만 해도 4명이서 고물상을 꾸렸는데,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직원 두 명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광호 씨는 앞으로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3월 말부터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떨어졌던 원자재 값도 서서히 오를 테고, 봄이 오면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풀리잖아요. 그래서 이사하는 집도 늘어나고, 동작을 멈추었던 건설현장에서도 공사를 시작하거든요. 그럼 저희들의 일감도 자연히 늘어나게 됩니다.” 고물상에게도 봄은 희망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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