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忠臣)이 많은 나라는 부강해지지만, 간신(奸臣)이 넘치는 나라는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증명된 진리이다. 당장은 간신의 아부와 흉계가 득세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영웅·충신과 간신·아부꾼을 분류해서 평가한다. 간신을 단순히 ‘간사한 신하’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충신과 간신은 어떻게 다를까? 충신은 공공의 이익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간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공익 따위는 서슴없이 팔아버리는 족속이다. <간신론>이라는 책에서는 간신에 대해 “이권 싸움에서는 부모 자식 간이라도 양보하지 않는다”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을 배척하고 모함해 반드시 목적을 이룬 다음에라야 그만둔다”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양심을 팔아버리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공을 탐내고 잘못은 숨기며 죄와 책임을 남에게 미룬다” “자신과 뜻이 다르면 배척하고, 어질고 뛰어난 인물을 조정에서 내쫓는다” “두 얼굴에 세 개의 칼을 품고 다니며, 음모로 귀여움을 얻으려 한다” 등으로 열거하고 있다. 간신은 해석하는 측면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사서의 평가가 좋으면 충신이고, 아니면 간신인 경우가 많아 당대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명(明)의 희종(熹宗)은 어릴 적부터 목수 일을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위충현(魏忠賢)은 희종에게 접근해 온갖 아첨으로 그의 환심을 사 결국 출세의 길을 달린 간신이다. 그로 인해 희종은 목공에만 빠져 신하들을 돌보지 않았고, 결국 명나라는 쇠락해 갔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리더에게 간신들은 철저히 경계해야 할 존재이다. 국가와 사회의 쇠락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들 삶아 바친 ‘역아’, 황제 죽인 ‘양기’ 중국 역사 전문가 이영수 박사는 <치명적인 내부의 적 간신>이라는 책을 통해 중국 역사를 뒤흔든 19명의 간신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케이스가 많이 등장한다. 제갈량의 ‘출사표’에도 등장하는 동한(東漢)의 양기(?∼159)는 외척 간신의 효시이다. 그는 여러 신하들 앞에서 자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황제 질제(質帝)를 독살했다. 양기는 주색은 물론 도박·축구·닭싸움·개싸움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즐기다, 권력을 틀어쥔 뒤에는 부인 손수와 경쟁적으로, 미친 사람들처럼 부(富)를 탐했다. 양기가 자살한 뒤 몰수된 재산이 1년 국가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30억 전이 넘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역아(BC 7C)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천륜까지 저버렸다. 그는 춘추시대 패자로 군림한 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 살 난 아들을 죽여 삶아 요리해 내놓기까지 했다. 재상 관중과 포숙의 경고를 묵살했던 당대의 영웅 환공은 후일 역아의 쿠데타로 싸늘한 냉궁에 갇혀 죽었다. 복수의 화신 풍운아 오자서, 명예롭고 지혜로운 은퇴의 상징 범려, 병가의 성인 손무, 비운의 미녀 서시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로 중국 역사상 가장 극적이면서 흥미로운 시대로 남아 있는 춘추시대 후기 ‘오월춘추’ 시기의 대표적 간신 모리배는 오(吳)나라의 백비(BC 5C)다. 그는 미녀와 재물이란 달콤한 대가를 받고 적국 월(越)나라를 패망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만, 결국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복속한 뒤 망나니의칼 아래 목을 떨구고 만다.
중국인이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전설적 장군 악비를 모함하여 해친 진회,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해 권력을 훔친 조고, 양귀비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궁에 들어가 제국을 기절시킨 양국충, 지식인 간신의 대표주자 엄숭 등 외에도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는 간신은 수도 없이 많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비무극(費無極), 환관정치의 막을 올린 한나라의 석현(石顯), 이자성의 난을 부른 명나라 말기의 온체인(溫體仁), 삼국지에 등장하는 동탁, 수호지에 나오는 채경 등도 희대의 간신으로 꼽힌다. 이 박사는 “역사를 돌아보면 간신들은 인성의 약점, 제도의 미비, 경각심의 부족, 역사의식과 통찰력의 부족이란 허점을 뚫고 반복적으로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 임사홍·유자광 등 연산군 대에 간신 들끓어 조선시대에도 나라가 뿌리까지 흔들리던 시기는 간신들이 득세하던 때이다. 연산군 집권 당시 많은 간신들이 연산군을 둘러싸고 있었다. 임사홍(任士洪)은 성종 대부터 연산군 대에 걸친 대표적인 간신이다. 그는 자식 둘(광재(光載)와 숭재(崇載))을 공주와 옹주에게 장가보내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선다. 그는 성종 집권 당시 조정에 파당을 만들어 기강을 흐리기도 했고, 무오사화(戊午士禍) 후에는 연산군의 처남 신수근(愼守勤)과 함께 성종 때의 중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폐비 윤씨 사건을 연산군에게 밀고하여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켰다. 임사홍의 둘째 아들인 임숭재도 간신 중의 간신이었다. 성종의 딸 혜신옹주와 결혼한 그는 색을 좋아하는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한 인물이었다. 훗날 숭재가 죽고 나서 연산군이 대신들에게 말하기를 “숭재는 아무리 술을 마시라 해도 한사코 거부했으니 이는 왕명을 거부한 것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술에 취한 모습을 임금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예의 바른 신하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시집간 누이동생을 연산군과 잠자리에 들게 하고, 왕은 임숭재의 처인 옹주까지 아울러 간통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임숭재는 죽기 전까지도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다만 미인을 바치지 못한 것이 유한”이라고 왕에게 간했다. 역사와 국가에는 간신이었지만, 연산군에게는 둘도 없는 충신이었다. 같은 시대의 유자광은 서자 출신으로서 자신의 영달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인물로 꼽힌다. 그는 세조 대에 이시애의 난에서 지대한 공을 세워 신분의 한계를 이기고 관직에 들어서지만, 남이 장군을 역모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또, 사림 학살의 첫 번째 사건인 무오사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일손·이목 등이 처형당하고, 이미 죽은 김종직은 관에서 꺼내져 목이 베어지는 부관참시형에, 김굉필 등의 숱한 사림들은 귀양에 처해졌다. 항우에게 죽음을 당한 의제(義帝)를 추모하는 조의제문을 사림 척결에 사용한 것이다. 그는 연산군 때 기회를 엿보다가, 중종반정 당시 성희안·박원종·유순정 등 반정 주도 세력에 줄을 대 공신으로 책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철천지 원수로 보는 사림세력의 반발로 유자광은 귀양에 처해졌고, 5년 만에 죽음을 맞았다.
■ 한명회·홍국영부터 을사5적까지 한명회와 홍국영도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살았던 최고의 권세가로서, 왕권 강화를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쓰고 왕에게 절대적 신임을 받아 왕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었지만, 민중에게는 세도정권을 이루고 온갖 횡포와 전횡을 일삼은 장본인들이다. 특히, 조선후기의 홍국영(洪國榮)은 조선의 왕 중에 가장 통치기간이 길었던 영조 때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주동역할을 한 벽파(노론)들이 세손(훗날의 정조)까지 해하려고 음모를 꾀하자 이를 막아 세손에게 깊은 신임을 얻은 인물이다. 정조가 즉위하자 천하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왕권강화라는 명목 아래 누이동생을 빈으로 들여보내 세도정권을 이루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간신들이 조선시대에 득세하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이첨과 정인홍은 광해군이 보위에 오르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구실로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영창대군(당시 8~9살)을 역적으로 몰아 불에 태워 죽인 장본인이다. 한찬남은 광해군보다 9살 어린 의붓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이 폐위되자 봉상시라는 사람의 하인에게 얻어맞고 목이 달아났다. 조선 말기에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을사 오적’도 조선조를 망국에 이르게 한 간신으로 꼽을 수 있다. 박제순(朴齊純, 외부대신), 이지용(李址鎔, 내부대신), 이근택(李根澤, 군부대신), 이완용(李完用, 학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농상부대신) 등 한국 측 대신 5명은 외교권 포기, 통감부 설치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실질적으로 국가의 주권을 상실하는 의미를 갖는 조약에 서명을 해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 반면교사 삼아야 할 간신열전 세계의 역사에서 충신과 간신의 대립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충신보다는 간신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도 세태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장관이 아부를 했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한창 권력이 부정부패에 곪을 대로 곪아 혁명의 불씨가 싹트고 있을 때, 측근들의 아부는 결국 이승만 대통령을 파멸로 몰아갔다. 비단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는 비자금과 분식회계 등으로 각종 불법을 저지르고 부실경영의 싹을 키워 결국 넘어지고 만 국내 유수 대기업의 회장들이 나락으로 빠지게 된 것도 무사안일을 키우는 주변의 현혹 때문인 경우가 많다. 주변의 따가운 충고보다 달콤한 아부가 더 듣기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듣기 좋은 말만 쫓아다니면 결국 삶에 불명예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평생을 티 없이 살다 인생 말년에 법정을 들락거리고 신문지상에 불명예스럽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개인의 파멸뿐만 아니라 때론 가족과 공동체,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수치까지 불러온다. 이 시대의 리더들이 옷깃에 적어 두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