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이 말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사도행전 17:26)”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힘과 능력의 차이를 갖고 태어나지만,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기념일에 어린이날, 여성의 날, 노인의 날 등을 정해 해당 집단을 특별히 보호하자는 인식을 나누고 있다. 특정 계층에 대한 우대가 일반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있겠지만, 사회약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공유되지 않으면 인간차별 현상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기념일이라도 만들어 약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그것도 29번째 맞는 장애인의 날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MBC, 장차법 홍보 캠페인 송 제작 MBC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홍보를 위한 캠페인 송을 제작했다. 윤일상 씨가 작곡하고, 여성 그룹 카라와 가수 박현빈·전진·별·유키스 등 인기가수가 대거 제작에 참여했다. 이 캠페인 송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못한 점을 감안, 법의 취지와 내용을 널리 알리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법에서는 장애인의 문화예술 행위에 대한 차별을 금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법을 홍보하는 곡을 제작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인보다 비장애인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도 가사만큼은 중증 장애인인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의 배은주 씨에게 맡겨졌다. 이 캠패인 송은 MBC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들을 수 있다. ‘함께 걸어요’라는 제목의 캠페인 송은 다음과 같은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에 이는 들풀 하나도/햇살에 이는 바람 한 점도/모두 다 소중하게 모두가 아름답게/우리는 모두 우리여서 소중하고 아름답지… (중략) …꿈 많은 아이들 꿈꾸는 아이들/말하고 볼 수 없었기에 거절당한 슬픔은/오래 기억되어 오래 아파 왔지만/이젠 흩어진 꿈에 조각 모아 갈 수 있게 됐죠/같은 하늘 아래 같은 햇살 받아/살아가는 우리는 모두가 하나죠/서로 함께 하여 서로 하나 되어/두 손 마주 잡고 모두가 함께 걸어요.” 이 노랫말은 장애인과 일반인이 하나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 곡을 지은 장애인 배은주 씨는 “제도와 시설이 눈에 띄게 개선됐지만, 장애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제도나 시설의 불편이 아니라, 우리를 별난 세상 사람처럼 보는 일반인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정된 지 1년을 맞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사회에 올바로 정착되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마음속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중의 마음이 싹터야 한다”고 말했다. 배 씨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듣고 많이 불리워져서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인 모두가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며 함께 걸어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후천적 장애가 대부분 비장애인의 상당수는 장애를 남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심지어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배려’를 사회적 낭비로 여기기도 한다. 김 씨 사례처럼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진다. 복지부 조사에서 장애인의 79.7%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많다”고 답했다. 차별이 없다는 응답은 5.4%에 불과했다. 차별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보험을 계약할 때가 가장 많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험 가입이 되지 않거나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전체 장애인의 절반이 넘는 55.6%는 이런 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두 번째로 차별이 많은 영역은 학교였다. 또래 학생들로부터 차별을 받았다는 장애인이 절반에 가까운 48.9%였다. 취업 과정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응답자도 35%나 됐다. 3월에 복지부가 성인남녀 509명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매우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40.1%는 ‘장애인은 아이와 같다’고 답했다. 41.9%는 ‘장애인에게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다. 32.5%는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쉽게 화를 낸다’ 52.6%는 ‘장애인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복지부가 장애인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선천적 원인으로 장애가 된 사례는 전체의 4.9%에 불과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4.6%)와 출산시 문제로 생긴 장애(0.5%)를 합쳐도 ‘불가항력’으로 장애인이 된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55.6%는 질병, 34.4%는 사고로 장애를 얻었다. 장애인 10명 가운데 9명은 후천적으로 장애가 된 것이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국가에 등록된 장애인은 213만7226명이다. 이 가운데 192만3500여 명은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얻은 것이다.
■인권위 축소로 장차법 후퇴 우려 장차법은 국가 장애인 정책을 ‘정부가 베풀어주는’ 수준에서 ‘장애인이 스스로 권리를 찾는’ 수준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애인이 차별을 받았을 때 법에 따라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낼 수 있다. 인권위는 차별을 한 기관에 직권으로 시정권고를 내릴 수 있다. 그 기관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인권위에 접수된 장애인 진정은 746건으로 2007년 239건의 3배가 넘는다. 장애인 교통수단에 대한 불만(146건), 장애인 전용화장실·경사로 등 시설물에 대한 불만(102건)이 가장 많았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웹사이트에 음성지원 기능이 없어 이용하기 어렵다는 불만(69건), 고용시 차별을 받았다는 불만(74건)도 주요 진정사항 중 하나이다. 하지만, 최근 국가인권위 축소 방침이 알려지면서 장애인 인권도 다시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애인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의 처리율이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746건 가운데 처리된 건수는 502건(67%). 이동에 불편을 겪는 장애인의 특성상 시설물과 교통수단에 대한 진정이 가장 많은데, 이 분야는 각각 55.9%(102건 중 57건), 64.4%(146건 중 94건)만 처리가 됐다. 박옥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권리를 구제하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차별을 예방하는 정책이 더 중요하다”며 “정부가 국가인권위 기능을 줄이겠다는 것은 장차법을 제대로 시행하려는 의지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차법 상충 법안·법령 정비 시급 법안의 내용이 다른 법과 상충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이를 고치지 않으면 법의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상충하는 국내법 분석 연구’(우주형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교수)에서는 법률 66건, 명령 25건, 대법원 규칙 4건 등 총 95건의 법령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충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헌법 11조 1항에서는 차별금지 사유로 ‘성별·종교·사회적 신분’ 등을 명시해 ‘장애’를 빠뜨렸다. 법원조직법에서도 ‘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인해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판사 연임 발령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로 인해, 장애인이 뛰어난 법리적 해석·판단 능력을 갖추어도 장애를 이유로 발령에서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있다. 입양촉진특례법에서는 양친 조건을 ‘정신적·신체적으로 현저한 장애가 없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모자보건법의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대상에도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자’를 명시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충돌할 수 있다. 우 교수는 “상충 법령으로 법적 분쟁이 벌어진다면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장차법이 먼저 고려될 여지가 크다”면서도 “법 해석 혼란으로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들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차법 1년, 아직 갈 길이 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완전히 자리 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법 제정 1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는 장애인 고용, 정보접근권, 직장보육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과와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와, 장차법과 관련된 법들의 실효를 높이기 위한 방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조선대 특수교육학과 김영일 교수는 4월 14일 국가인권위가 광주에서 개최한 ‘장차법 시행 1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인권위에 접수된 교육영역 진정사건이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라며 “특수교육교원의 시험 및 현장학습 편의제공과 시청각 장애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학습자료 개발”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 구체적인 교육차별 사례로 ▲장애학생들의 일제고사 참여 배제 ▲수학여행 및 현장학습 참여 배제 ▲시청각 장애학생용 교재 및 웹 접근성 부족 ▲의사소통 문제로 인한 기초학력 부재 등을 들었다. 인권위 최경숙 상임위원은 “장차법이 장애인들에게 장밋빛 인생을 선물하지는 못했지만, 1년 동안 상당한 실효성을 거두는 등 연착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전국 순회 토론회에서 논의된 현실을 다시 한 번 조명해보고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