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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독감 무조건 항생제?

의약분업 항생제 처방 공개에도 항생제 사용률 증가…
‘항생제는 만병통치약’ 인식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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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4호 박성훈⁄ 2009.04.20 22:04:27

사람들 사이에는 심한 감기일수록 항생제를 복용해야 빨리 낫는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누군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과연 옳은 상식일까? 감기에는 완치가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감기를 발병하게 하는 리노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균을 없애기 위한 치료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정신적·육체적 안정을 취하고, 적절한 영양과 수분을 섭취하는 게 상책이다. 증상이 심해지면 증상을 줄여주는 약을 의사에게 처방받아 복용하고, 심하거나 잘 낫지 않으면 의사에게 정말 감기인지, 다른 병은 아닌지 확인하면 된다. 인플루엔자(독감)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인플루엔자는 과거에 ‘독감’으로 불렸는데, 2000년 전염병예방법 개정으로 인플루엔자를 제3군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한 이후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극심한 일교차로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 바이러스’나 ‘코로나 바이러스’ 등과 달리, 증상이 심하고 전염성이 매우 강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해마다 10~11월에서 4월 사이에 유행하여 지역적인 유행이 시작되면 약 6~8주 간 지속된다. 감기 증상보다 훨씬 심한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37.8도 이상의 갑작스러운 발열과 두통·근육통·피로감 등의 전신증상을 나타내고, 기침·객담 등의 호흡기 증상 외에 복통·구토·경련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수퍼 박테리아 등 내성 강한 세균 발생 인플루엔자에 걸린 한 환자가 약국에 가서 종합감기약을 구입하며 목이 부어 아프다고 호소하자, 약사는 “병원에서 항생제를 맞으면 빨리 나을 것”이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 의심 없이 병원에 가서 약사의 조언대로 항생제 처치를 받고 왔다.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동네 의원에서 맞게 되는 주사는 대개 항생제이다. 항생제는 우리 몸을 지키는 소중한 무기다. 하지만 최근 나타난 병원균의 양상을 보면, 항생제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과용할 경우 몸에 내성이 생겨 약을 쓰더라도 듣지 않는 등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항생제의 일종인 메티실린에 내성을 보이는 황색포도상 구균(MRSA)이 발견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무슨 약에도 반응하지 않는 수퍼 박테리아가 발생해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퍼 박테리아로 보이는 초강력 세균이 등장하기도 했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이 강한 세균을 증식시켜 더 이상 쓸모 없는 약이 될 수 있다. ■항생제 사용률, 2006년 이후 다시 증가 지난 3월 2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감기를 포함한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비율이 2002년 75%에서 2006년 55%로 줄었다가 다시 57%로 증가했다고 한다. 2008년 3/4분기에 종합전문요양기관이 주사제 처방을 한 비율은 3.4%로 외국의 권고수치(1~5%) 수준이지만, 의원의 경우 2006년 5월 기관별 주사제 처방률 공개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으나 25.3%로 여전히 높았다.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도 이 기간에 요양기관 전체의 56.6%에 달했다. 기관별로는 의원이 57.3%로 으뜸을 차지했으며, 이어 병원 48.7%, 종합병원 48.2%, 종합전문 37.9% 순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각각 2005년 3/4분기 67.0%, 2006년 3/4분기 54.9%, 2007년 3/4분기 56.5%로 2006년까지 줄었다가 다시 오르는 추세이다. 지역별 편차도 발생한다. 심평원의 2008년 3/4분기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에서는 항생제 처방률이 대전·전북이 각각 51.5, 52.9%로 의원 평균(57.3%)보다 낮은 반면, 광주·전남은 각각 64.3, 62.2%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보건복지가족부와 심평원은 항생제 처방률, 주사제 처방률 및 처방건당 약품목수 정보를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다. 의사들은 감기 환자를 접하면 콧물을 멈추게 하거나, 두통을 가라앉히거나, 가래를 삭이는 등 우선 증상을 나아지게 하는 약을 처방한다. 그리고 박테리아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에 항생제를 쓴다. 감기와 같은 급성상기도감염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고, 세균감염이 의심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치료 효과가 없어 항생제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다는 게 의원들의 생각이다. 또, 주사는 먹는 약에 비해 체내 흡수가 빠르지만, 급성 쇼크, 혈관염 등 부작용 위험이 있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을 자제하는 게 병원의 관례이다. 항생제를 줄이기 위해 몇 가지 정책이 시행돼 왔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06년 항생제 처방률 공개가 대표적이다. 의약분업은 의사만 알고 있던 처방전을 외부 약국에 공개해 의사들의 항생제 처방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오래 가지 못하고 효과도 약해졌다.

■약에 대한 무방비 경계심, 항생제 사용 늘려 우리나라 환자들에게는 외국처럼 항생제 처방 없이 집에서 푹 쉬면서 감기를 치료한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주사 한 방’을 맞으면 다 나을 것 같은 기대가 크다. 환자의 연령과 지역, 동네 의원의 진료과목 등으로 처방 실태를 정밀하게 분석해 항생제 남용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2000~2005년 의약분업에 20조 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돈이 많이 든 비싼 개혁이었지만, 비용에 비해 효과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의약분업보다 항생제 처방률 공개가 효과가 더 컸다. 의사들도 항생제를 많이 처방하는 병원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위해 처방을 줄였다. 항생제 사용이 많아진 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을 쉽게 접하는 버릇이 있다. 감기에 걸리면 항생제부터 먹고 하루빨리 감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의사는 항생제 처방이 가장 효과가 빨라 선택의 여지 없이 항생제를 처방한다. 주사제도 마찬가지다. 김미란 소아과 의사는 “과거에 비해 주사제가 필요한 세균 감염이 줄었지만, 동네 의원들은 여전히 주사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주사의 효과를 과신해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의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항생제 처방률은 10~40% 정도다. 외래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비율은 미국 5%, 영국·스웨덴이 1% 이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항생제·주사제 처방률을 공개한 지 3년이 지나면서 효과가 무뎌졌다. 특히 의사들의 감각이 무뎌졌다”며 “의료계가 학회 차원에서 항생제를 줄이려 노력하는 게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항생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질환도 의료계의 다른 일각에서는 감기 후 류머티즘열을 일으켜 소아에게는 심장판막에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키는 연쇄상구균 감염이 의심되면 반드시 항생제를 써야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소아가 콧물은 나지 않으면서 목이 아프고 고열이 나고 편도선이나 인후에 이물질이 끼고 목의 임파선이 부었다면 반드시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항생제에 따라 3일부터 7일까지 처방한 항생제를 모두 복용해야 류머티즘열의 합병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제 내성 결핵의 경우 그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데, 항결핵제로 사용하는 항생제는 일반적으로 동네 의원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며, 결핵의 치료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항생제이다. 이는 결핵균의 특성상 일반 항생제로는 치료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제 내성 결핵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개 결핵 환자가 완치되지 않았음에도 임의로 항생제 복용을 중단하는데 있다. 결핵 치료의 특성상 6개월 이상 장기간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고, 또 약의 부작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핵균이 이전 약제에 내성을 가지게 되고 치료가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다. 결핵균이 항결핵제에 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항결핵제에 노출되어야 하는데, 이런 약을 동네 의원에서 감기에 사용할 리 없다. 결핵의 치료는 의사 중에서도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항생제, 전혀 안 쓸 수는 없다 감기에 있어 항생제 처방은 이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 왔고, 실제 대부분의 의사들은 제한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비록 감기가 바이러스성 질환이긴 하나 세균에 의한 2차 감염을 의심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심하지 않은 폐렴이나 기관지염 등이 동반된 경우 동네 의원에서 단순 감기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는 점도 일반 의원들이 감기를 제대로 진단하기 힘든 요인이다. 경험상 단순 감기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 때는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증상 호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항생제를 전혀 안 쓸 수도 없고, 거의 모든 환자에게 항생제를 쓰는 행위도 위험할 수 있다. 의사마다, 전문과목마다 방문하는 환자가 다르고, 실제 상황에서 항생제를 써야 하는 환자와 쓰지 않아도 되는 환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생제는 필요할 때는 꼭 써야 하고, 쓸 필요가 없을 때는 쓰지 말아야 한다고 의사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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