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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부르는 사회 법제화는 아직…

민간조사원 1500명 물밑 활동…‘셜록홈즈법’ 경비업법 개정안 국회 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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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16,117호 박성훈⁄ 2009.05.07 09:32:53

A는 회사의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아 이를 건축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빌려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와 연락이 두절돼 사업지를 찾아가보고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상담을 하니, 형사적으로는 사기로 고소를 하고, 민사적으로 승소 판결문을 얻어도 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소용이 없으니 그 친구의 재산을 파악해 오라고 했다. 결국 A는 경찰서에 가서 사기로 고소를 했지만, 도망간 친구는 찾을 길이 없어 단지 기소중지만 됐을 뿐이고, 친구의 재산은 주소를 찾아 등기를 확인하는 일 외에는 조사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A는 경찰관과 변호사에게 그 친구의 가족관계·사업관계 등에서 추론할 수 있는 많은 단서를 주었지만,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직접 조사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고, 경찰도 명확한 단서 없이는 추가조사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결국 한 심부름센터에 친구의 소재를 찾아 달라고 의뢰했다. 이는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입법공청회에 참석한 민병덕 변호사가 예시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사기를 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상황이다. 검찰이나 경찰 등 공권이 아닌 개인이 범죄나 사고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셜록홈즈법’ 민간조사원 제도의 도입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민간조사원(PI. Private Investigator)의 업무는 이혼소송·소재파악·기업조사·경호 등 광범위하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업무가 소송과 관련한 사실조사와 증거수집이다. 이는 증거에 의한 사실 발견이 유·무죄를 결정짓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필요한 증거의 수집과 객관적 사실을 밝혀내는 전문가가 요구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민간조사제도’(일명 탐정) 도입을 위한 ‘경비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 의원의 개정안에 따르면, 민간조사관의 업무범위를 미아·가출인 실종자에 한해 가족 의뢰에 의한 소재파악, 소재가 불분명한 물건의 소재파악, 의뢰인의 피해 확인 및 원인에 관한 사실 조사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경비업법 개정안은 사설 경비업체에 대한 관리를 경찰청에 맡기고 있다. ■실종사건 등 흥신소 도맡아…부작용 발생도 민간인 실종사건은 연간 수만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탐정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면 불법이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탐정이라는 용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채권추심 업무를 허가받은 신용정보업자 외에는 특정인의 소재를 탐지하거나 사생활을 조사하는 일도 못 하게 하고 있다.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도청 등으로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따라서 사건 당사자들은 심부름센터나 흥신소 등을 이용하게 된다. 전국적으로 3000개가 넘게 영업하고 있는 심부름센터들은 ‘자영업’으로 분류돼 있어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 유출, 불법 도청 등 불법행위가 이루어지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대표는 “실종아동법 제정 이전에는 경찰이 미아 찾기를 등한시했기 때문에, 부모들은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에 아이 찾기를 의뢰한다. 하지만 돈만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사건해결을 위해 들이는 의뢰비용은 적게는 몇십만 원 선에서 몇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탐정 제도가 법제화되지 않아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금석 한국민간특수행정학회 회장은 “심부름센터나 흥신소 등의 불·탈법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도 민간조사원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늦었지만 하루빨리 합법적으로 미아사건 등을 해결하는데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형호 유괴사건 등 공소시효가 끝나 수사가 어려워진 사건도 부지기수이다. 이 사건들은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해 미결로 남아 사건 당사자들은 아직도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민간조사원이 법제화되면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경찰이 보관한 자료를 재검토해 미결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또, 사건 수사에 민과 관의 경쟁을 유도하여 공권의 수사력이 향상될 수 있고, 국민들이 보다 양질의 치안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계명대학교 경찰학부 이성용 교수는 “공권력이 감당할 수 없는 실종자 찾기, 기업의 재산권 침해 문제 등 증거·사실 조사 수요를 민간조사제도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탐정 사설자격증 희망자 꾸준히 늘어 한국판 ‘셜록 홈스’를 꿈꾸며 탐정 민간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사람들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현직 경찰, 전직 국정원 요원, 법무사, 보험회사 조사원 등 직업도 다양하다. 민간조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 기관은 한국민간특수행정학회와 한국탐정협회·한국민간조사협회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보험사기범죄, 기업조사 및 보안, 경호 등의 업무를 소화해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탐정 민간 자격증 취득자 수도 현재 1500여명에 이른다. 현재 민간조사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곳은 경성대, 한세대 평생교육원, 한국민간조사협회 등 3곳. 교육생들은 교통사고·사이버범죄·보험범죄·조사방법·지문감식 등 8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 한국민간조사협회에서는 민간 자격증을 따고 민간 조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약 5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한국민간특수행정학회에서는 8주간의 민간 조사관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감시·추적·미행실습 외에 인간행동심리, 보험범죄·교통사고 조사, 탐정 사격훈련, 도·감청 탐색, 필적·문서 위조 감정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교육과정을 수료한 사람도 2002년부터 지금까지 950여 명에 이른다. ■외국 탐정회사들 국내 활동 ‘눈독’ 우리나라의 민간조사 수요를 금전적으로 환산하면 최대 약 2조원까지 평가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민간조사를 원하고 있다. 이미 많은 외국의 탐정기업들이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의 형태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탐정제도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에서는 5만2000명의 공인탐정이 활동하고 있고, 영국에는 1만 명이, 프랑스와 독일은 4000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3887곳의 공인 탐정 사무소가 신고사업자로 등록돼 활동 중이다. 이를 감안해 해외 민간조사 기업들도 국내의 시장성은 무한하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H&A·크롤·핀커튼 등 20여 개 해외 민간조사업체는 ‘위기관리 센터’ ‘컨설팅’ 등의 간판을 달고 민간조사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탐정업의 관련 법 제도가 마련될 경우 본격적인 탐정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국내 시장현황에 대한 사전분석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 탐정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민간조사관을 준비하는 기업체들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탐정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 이 분야에서의 탐정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표권과 저작권 침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면서,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위조상품에 대한 민간 조사관을 고용하여 시장을 감시하고 증거를 수집해 이를 근거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송제도의 변화와 함께 앞으로 지적재산권 분야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조사수요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금석 회장은 “민간 조사관의 주요 업무 중 민·형사소송 및 이혼소송, 소재파악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소송 관련 정보조사 의존도에 비해 법적인 기준이 미약하여 빨리 민간 조사원이 공식적인 전문직으로 인정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탐정관리’ 경찰청-법무부 갈등으로 법제화 지체 하지만 경비업법은 나중에 제출된 민간조사업법과 충돌해 법안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다. 민간조사업법에서는 사설탐정의 관리감독권을 법무부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설탐정의 관리감독을 두고 경찰청과 법무부가 이권 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인탐정법안은 1999년 한나라당 하순봉 의원이 처음 발의했지만,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 우려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각각 탐정 관련 법안을 내놓았지만, 지금의 관할기관 논란으로 불발됐다. 민간조사업법은 한나라당 이한성·성윤환 의원이 각각 법안을 제출했다가 스스로 철회한 바 있다. 경찰은 치안력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긍정적 제도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사설 탐정이 도입되면 미아나 실종자 찾기에서 상당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매년 경찰에 접수되는 실종사건은 무려 5만∼6만 건에 이른다. 이 중 14세 미만 아동 실종자는 2006년에 7064건이던 것이, 2007년 8602건, 2008년 9470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검찰은 사설 탐정이 등장하면 변호사 업무를 상당 부분 잠식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이에 하 회장은 “변호사와 민간 조사원의 업무는 분명 구분돼 있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지 영역을 침범하는 성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민간 조사원의 제도화가 10년 간 지지부진해 오고 있다. 정부 간 이권 다툼으로 법제화가 이번에도 미뤄진다면 음성적으로 벌어지는 민간 조사의 부작용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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