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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화랑]視知覺으로 자연을 찬양하다 - 박경호

박경호의 脫 일상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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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9호 편집팀⁄ 2009.05.26 11:01:19

80년대 박경호 화백의 그림은 세련되고 멋진 그림으로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주로 물감의 흘림과 여백의 긴장을 적절히 구사했던 추상 표현주의 계열의 작업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화단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붓을 던졌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난 작금에 와서 그는 불쑥 개인전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그는 그 동안 깊은 산속에 화실을 짓고 그곳에 은둔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 정황이어서 나는 대단한 호기심으로 그의 화실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예전의 그 멋쟁이 추상화가 아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풍경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추상화의 뿌리에다 풍경화를 심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20년의 공백기는 그에게 추상이 구상으로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천사(형이상학)가 세속으로 귀화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그의 이런 드라마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래서 왜 이렇게 딴 그림이 되었느냐고 묻자, 화가는 백발이 된 자신의 흰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할 수 없이 힘든 고난의 역정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산비탈에다 지은 콘센트 화실에는 크고 작은 신작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한눈에 그 풍경들이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이지만, 그러나 좀 더 세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신작들은 원근법으로 구성된 고전시대의 공원 풍경이나 화단 주변에서 유행하는 풍토지(風土誌)적인 풍경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풍경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풍경이라는 자연의 소재를 활용하여 자신의 서정과 낭만을 음악으로 작곡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비발디의 사계(四季)를 캔버스에 시각언어로 번역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산·구름·언덕·나무·바위·꽃·냇물 등은 비발디의 음악에서도 멜로디나 장식음을 만드는 중요한 소재가 되듯이, 박경호의 풍경도 일차적으로 이 모든 자연이 주는 회화적 요소들이 그의 독특한 화법으로 멜로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웅장하게 보이는 산, 치솟은 바위, 하늘로 높이 뻗는 나무는 분명히 남성적인 기상을 보여주는 언어소(言語素)이며, 언덕·냇물·꽃·한가로운 구름 등은 여성적인 기상을 보여주는 언어소가 되는 것이다. 자연은 두 개의 대립적인 언어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 대립은 생명을 파괴하기도 하고, 상생(相生)하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박경호의 풍경화는 이 두 대립적인 요소들을 교묘히 결합하면서 전체적으로 중성적(中性的)인 미감을 연출해낸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풍경에서 인적(人跡)이 제거되는 것은 그 첫 번째 증거이다. 무섭게 치솟은 뾰쪽한 바위는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과 대응되면서 중성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구름이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가볍게 너울대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런 전략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면은 언덕과 나무들에서도 볼 수 있다. 화가는 중용미(中庸美)라고 부를 수 있는 이 풍경을 실현하기 위해, 80년대에 보여주었던 그의 멋진 조형언어를 순수(純粹)라는 이름으로 찬양하지만, 그 뜻을 ‘자연의 속살’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조형작업은 결국 자연의 속살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 화가가 자신의 풍경세계를 음악적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도 결국 자연에 감춰진 속살을 그 나름으로 우리의 시선 앞에 펼쳐 놓으려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폴 클레가 “자연과의 대화는 예술가에게는 항상 불가결한 조건이다”라고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의 속살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었던 칸딘스키는 색채와 선묘(線描)를 적절히 원용했다. 그렇게 보면 박경호는 선묘보다는 색면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가 혼신을 다해 색면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그 점을 말해준다. 그가 만드는 색면(色面)은 몇 번의 붓질로 만들어지는 면이 아니다. 둑을 쌓을 때처럼 그의 면은 일정한 높이를 지니며 그 높이를 지탱하기 위해 물감의 공법(工法)을 이용한다. 우리는 이를 회화에서 요철(凹凸)로 형성되는 입체적 조직[畵面組織]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며, 현대 회화가 말하는 즉물적(卽物的) 미감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게 되지만, 박경호의 작업에서는 이런 어법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입체적 조직은 사실상 그의 잃어버린 30년의 역정을 살풀이하는 제의적(祭儀的)인 행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색면 만들기가 한 겹에서 끝나지 않고 여러 겹이 되어 층위(層位)를 이루고 있는 것도 그러하며, 그 미묘한 면의 겹치기는 사실상 평면인 그의 그림에 원근법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도 그 점을 말해준다.

낭만주의 시대의 화가들은 자연에 진실이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열정적으로 풍경을 그렸다. 영국의 비평가 클라크(K. Clark)는 풍경화를 논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풍경화는 우리들의 지각이 미치는 반경을 확대함으로써 우리들의 행복감을 고양시키는데, 이때 행복감은 곧 사랑이다.” 우리의 지각(知覺)이 미치는 반경은 한계가 있다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한계를 화가는 풍경화를 통해 넘을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풍경화를 통해 자연의 숨겨진 속살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미학자는 이 속살을 시지각(視知覺)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으며, 풍경화가는 그의 천재적인 시지각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의 속살을 경험하는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게 한다. 박경호의 색면 만들기도 바로 그런 노력의 성과물이고, 그 성과물은 그의 20년 은둔 세월을 보상해줄 수 있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박경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전신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개인전 13회 1969~1999 관인 녹지미술학원 운영 수상 대한민국 국전 6회(문화공보부) 한국미술대상전(한국일보사) 아시아미술교우회전(일본 도쿄) PARIS CRITIQUE(국제미술전) 특별상(프랑스 파리) 단체전 및 초대전 각종 단체전·초대전 70여 회 출품 저서 미대 진학생을 위한 지침서(우람문화사) 3부 현재 두즈믄전, 영토회전, 한국미술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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