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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노동계 최저임금 ‘줄다리기’

올리라는 노동계 “저임금 노동자 임금 보장”-정부와 재계 “영세기업 보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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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3호 박성훈⁄ 2009.06.23 16:33:01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있는 근로자가 222만 명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올해 3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토대로 이 같은 결과를 산출했다. 이는 지난해 8월보다 47만 명 증가한 수치이다. 최저임금 미달자 수는 2001년 8월 59만 명, 2007년 8월 189만 명 등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함께 늘어나는 양상이다.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노사 간 임금산정 과정에서 사용자가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 제도이다. 이는 임금이 터무니없이 저평가되지 않고 적정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지노선의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제가 실시된 것은 1988년부터이다. 그 동안 최저임금은 적용대상이 제한적이고 그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저임금 계층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최저임금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최저임금 수준도 일부 개선됐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최저임금은 연평균 10.1%나 인상돼, 같은 기간 연평균 명목임금 인상률 6.7%를 크게 앞질렀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시대에 따라 등락을 거듭해 왔다. 정부 최저임금법 개정안 국회 계류 최근에는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취지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국적과 지역·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별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60세 이상 고령자는 711만 명이고, 취업자는 272만 명이다. 최저임금 적용대상인 고령노동자는 101만 명이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사람은 43만 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가구 빈곤율은 45%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노인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족 중심의 부양문화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혼자 사는 노인가구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에, 최저임금마저 깎이면 노인가구의 빈곤율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부는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고용안정을 위한 조처이지 최저임금을 깎자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7~8년 동안 계속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이를 쫓아오지 못하는 기업들이 느는 게 원인이다. 감독이 부실해서 미달자가 는다면 기업에 역량이 있다는 뜻이고 감독 강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대환영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계 요구대로 내년 최저임금이 시급 5000원 수준이 된다면 미달자의 수는 440만~50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는 사업체 조사가 아닌 가구조사이기 때문에 세전·세후·수당 등을 잘못 계산하거나 배우자가 부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는 만큼 실상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최저임금 미달자에게는 법 적용 예외자도 포함된다. 하지만 최저임금 적용실태를 파악할 다른 통계는 없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와 경영계는 내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5150원과 3770원을 제시하고, 이달 말까지 노동부에 제출할 최저임금안을 논의 중이다. 노동계 안은 28.7% 인상이고, 경영계 안은 사상 첫 삭감(-5.8%)이라서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3월 한승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제의 유예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부 기관마저 안 지키는 최저임금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공공기관마저도 최저임금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예산 10% 삭감을 골자로 하는 기획예산처의 올해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을 내세워 청소용역 근로자들에 대해 최저임금법에서 정한 최저임금 반영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6월 14일 최저임금위원회와 민주노총 여성연맹에 따르면, 정부 대전청사의 경우 대부분 비정규직 여성인 청소용역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을 받아 왔다. 그런데 올 들어 이들에게 최저임금 인상분(6.1%)이 적용되기는커녕 월급이 7만 원 삭감됐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은 제조업 보통인부 단가를 기준으로 청소용역 예정가격을 책정하도록 돼 있다. 참여정부 당시 수립한 공기업 비정규직 대책에 따라 2007년 10월에 국가계약법상 최저임금 기준의 용역단가가 최저임금보다 43%(2008년 기준)나 더 많은 보통인부 단가로 바뀐 것이다. 정부 대전청사가 이를 반영하지 않자, 여성연맹은 지난 3월 초부터 대전청사 행정과와 입찰을 대행한 대전지방조달청에 시정을 요구했다. 대전청사 측은 “국가계약법상 회계 예규는 꼭 지켜야 할 강제 규정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여성연맹이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하자, 용역업체인 오뚜기토탈시스템과 이 회사 노조는 올 들어 삭감된 임금을 1월부터 보전하고 최저임금 인상분으로 4월 1일부터 1인당 4만6000원을 책정하며 행정안전부가 7600만 원을 마련한다는 조정안에 지난 4월 20일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합의사항은 하나도 실천되지 않고 있다.

한국철도공사도 지난 1월 말 10개 지사의 청소용역 신규 입찰계약에서 감원과 임금삭감을 동시에 단행했다. 이로 인해 청소용역 근로자들의 급여가 95만7000원에서 85만 원으로 13.1% 깎였다. 대구시 지하철은 올 들어 청소용역 월급여를 5만800원 삭감했지만, 하루 근로시간을 30분 단축하는 편법으로 최저임금법 위반 시비를 피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정태면 상임위원은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예산삭감 지침이 내려올 때마다 형식상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인원을 줄여 남은 용역근로자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편법을 사용하곤 한다”면서 “노동부가 관계부처와 협의를 강화해 최저임금 인상분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지침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시급 5150원-경영계 3770원 평행선 매년 이어지는 최저임금 수준을 둘러싼 노사 간 줄다리기는 올해도 팽팽하다. 최근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민주노총은 2010년 최저임금을 시급 5150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은 시급 3770원. 올해는 4000원으로 올랐다. 이는 5.8% 인상된 금액으로, 지난 4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3.8% 인상된 것에 비교하면, 실질적인 인상율은 2%이다. 현행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고작 36.6%여서, 최저임금 수준이 가장 높았던 1989년(38.4%)보다 모자란 수준이다. 민노총에서 요구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2009년보다 28.7% 인상된 금액이며, 최저임금을 일급 4만1200원에 주 40시간 근로 기준 월급 107만6350원으로 맞춘 것이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연대는 “이 요구액은 2008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며 “노동계의 최저임금 요구액이 관철될 경우 2008년 도시노동자 전 가구 한 달 가계지출액 303만6916원의 27.5%에 불과한 현행 최저임금이 35.4%로 향상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적용 확대와 제도개선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 억제와 법 개악 움직임은 더욱 우려스럽다”며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줄어들고 회사가 어려워진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각도에서 반론에 부딪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경영계는 오히려 올해보다 5.8% 삭감한 3770원을 제시했다. 노동부의 최저임금위원회는 기업의 지불능력과 근로자의 생활안정 등을 고려해 합리적 수준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근무시간을 교묘히 줄이는 등 편법으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은 강력히 단속하기로 했다. 문형남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임금 지급 능력이 취약한 업종에서 복지후생수당을 없애거나 과도하게 휴게시간을 설정하는 등 편법을 사용해 최저임금을 맞추는 사례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또, “최저임금이 최근 수년 간 너무 많이 올랐는데도 노동계는 조직과 운동 논리에 갇혀 계속 고율의 인상을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수준에 해당되는 취약계층 근로자들을 위한 보호대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최저임금 낼 형편 안 되는 영세기업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최저임금이 경제회생의 희생양처럼 쓰이는 형국이지만, 영세기업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영세기업들의 임금 지불능력도 그다지 갖추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영계는 최저임금제도가 범법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일선 노동관서에서는 근로자와 처지나 사정이 비슷한 자영업주 등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어겨도 처벌하지 않고 합의를 유도하는 선에서 불법을 눈감아주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결정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개 노사 간 의견 합치가 이뤄지지 않아 공익위원들이 양쪽 주장의 기계적 절충선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다 보니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최저임금을 낮게 유지하는 게 능사도 아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실제로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20년 간 국내총생산은 7.47배 늘어났으나 최저임금은 6.91배 상승하는데 그쳤다. 최저임금이 소득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본래의 목적을 만족스럽게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자꾸 높아지는 것은 적절한 부실기업 퇴출제도의 부재라는 산업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즉, 월급을 제대로 못 줄 정도여서 망해야 할 기업이나 자영업주들이 버젓이 영업을 계속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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