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아동 성범죄자들에 대한 양형기준 등 형법에 변화가 일 전망이다. ‘나영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이 만취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심신미약이라는 ‘면죄부’가 돼 감형 처벌을 받는 등 성범죄 관련 형법에서 허점이 드러남에 따라 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성폭행범 중에서도 아동 대상 성폭행범의 죄질은 더 흉악하다는 게 최근 사회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의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많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성폭행범 586명에 대한 1심 양형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대상 성폭행범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사실이었다. 법정형이 7년 이상인 13세 미만 아동 성폭행범의 경우 40.4%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이들 가운데 7년을 초과하는 징역형은 한 명도 없었다. 주취 정도가 심할수록 처벌이 약해진다는 것도 그간 행해져온 판결이었다. 법원은 피해자의 친고죄가 아닌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도 피해자가 합의하고 피해를 보상했다면 형량을 줄였다. 강간죄가 친고죄라는 특성이 있어서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 1심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 67.2%가 풀려난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 조사에 따르면, 아동대상 성폭력 피의자 5명 가운데 2명 가량이 불구속 처분됐고, 재판을 받은 피의자 중 40%만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 동안 검찰이 기소한 13세 미만 대상 성폭력 사범은 총 1637명으로, 이 가운데 구속자는 991명(60.5%)이었고, 나머지 646명(39.5%)은 불구속됐다. 연도별 구속률도 감소 추세를 보여, 2006년에는 41%였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33%에 그쳤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재판을 받은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 범죄 피의자 1446명 가운데 실형선고를 받은 경우는 580명(40%)이었고, 집행유예 652명(43%), 벌금 103명(7%), 무죄 28명(1.9%) 등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아동 성범죄 양형기준과 관련 대책을 마련한데 이어, 국회에서도 관련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정부, ‘아동성폭력재발방지대책’ 마련 정부는 10월 9일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양형기준을 7~11년으로 상향 조정하고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전면 공개하는 ‘아동성폭력재발방지대책’을 마련했다. 박영준 국무차장 주재로 여성부·법무부·보건복지가족부·교육과학기술부·행정안전부·경찰청 등이 참석한 관계부처 회의에서는 ▲양형기준 상향과 유기징역형 상한 확대 ▲아동 성범죄 사건 조사 시 전문가 참여제 확대 ▲성범죄자 신상정보 인터넷 공개제도 시행 ▲등·하교 도우미 및 상담전문교사 배치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이 마련됐다. 정부는 10년 동안 차고 다녀야 하는 전자발찌 부착 기간을 연장하고 발찌를 착용한 사람에 대한 보호관찰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법을 개정해 12월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정부는 그간 범정부 차원의 아동·여성 보호대책을 추진해왔으나, 이번에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크므로 보다 강화된 대책을 마련·추진키로 하였다.
또, 검찰은 성폭력범은 타 범죄에 비해 재범률이 높은 반면 실형 선고율이 40%에 못 미치고, 나아가 가석방까지 감안하면 사회격리 효과가 낮다는 점에서, 법원 심리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형량이 낮을 때 적극 항소하여 감경사유 적용을 되도록 엄격하여 공소유지하기로 했다. 흉악범 DNA 정보 수집·활용을 위한 법 제정안이 오는 11월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며, 사건수사 시 범죄 상황의 자세한 진술 등으로 인한 2차 피해, 어린이 진술 증거능력 미흡 등을 보완하기 위해 피해자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조사 시 전문가 참여제를 확대 시행키로 하였다. 성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과 관련하여, 성범죄자의 정보 공개 실효성을 위해 현재의 경찰서 공개에서 인터넷 공개로 확대하고 20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 열람이 허용되는 안이 내년에 시행된다. 정부는 대국민 홍보를 강화키로 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등·하교 상황을 휴대폰으로 알려주는 안심알리미 및 맞벌이 가정 아동에 대한 등·하교 도우미 제도도 확대한다. “아동 성범죄 양형감각-국민감정 엄청난 괴리” 국정감사에서도 아동 성범죄는 단연 뜨거운 감자였다. 서울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성범죄에 대한 법관의 양형의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조두순 사건’ 1심인 안산지원을 관할하는 수원지법 이재홍 법원장은 국회의원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다. 법원 국정감사는 주로 사법행정분야에 대한 질의가 주를 이뤘으나, 이번 국감에서는 조두순 사건의 파장으로 여야가 한목소리로 아동 성범죄 양형 문제를 놓고 법원을 질타했다.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조두순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고 법원의 판결에 대한 국민의 원성과 비판,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들끓고 있다”며 “이번 국정감사에 임하기에 앞서 법원은 판사회의를 통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갖고 나왔어야 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은 “검찰이 기소를 잘못했더라도 법원이 공소장 변경을 할 수도 있었다”며 “이번 사건은 대단히 잘못된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또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2008년 6월부터 성폭력범죄처벌특별법에 따라 가중처벌되고 있는데도 검찰이 일반 형법을 적용해 잘못 기소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법원장은 “현행법, 형법이론과 국민의 법감정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 같다”며 “음주감경·주취감경제도를 폐지하든지, 현재는 필요적으로 감경해야 하는 이 제도를 ‘임의적’으로 개정해 판사가 선택할 수 있게 개정하든지 등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아동심리학자의 조사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하거나 아동 성폭행 전담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대전고등법원 국정감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조두순 사건으로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법관들의 양형 감각과 국민 감정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음이 확인됐다”며 “아동 대상 성범죄는 영혼을 살해하는 것으로 피해 아동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적인 기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법관들이 인권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주지법에서는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일가족 4명에 대해 지난해 말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친박연대 노철래 의원도 “법원의 관대한 처벌 때문에 아동 대상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은 “수원법원장이 조두순 판결에 법률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 들끓는 국민의 분노가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감정 표출이라고 보느냐”고 따졌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구욱서 대전고법원장은 “음주로 인한 범행에 비교적 관대한 사회 분위기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성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에서 주취 여부를 감경사유로 참작하는 데 신중을 기하겠다”고 답했다. 양형기준 재정립 필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성범죄 등 8대 주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어 올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양형위원회는 일관성 없는 양형의 차이를 없애 전관예우 등 법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2007년 5월 출범했다. 양형기준은 물론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판사들이 형량을 정할 때 이를 존중해야 하는 원칙이다. 이 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할 때는 판결문에 사유를 명시하도록 법원조직법이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위원 13명 중 5명은 아동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 중 3명의 위원들은 살인·강도 등 다른 범죄와의 형량에서 아동 대상 성범죄 양형기준만을 강화하면 형평성이 깨져 수정이 힘들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양형위원회는 조만간 임시회의를 열고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조정할지를 집중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쪽은 현행 양형이 국민의 법감정과 거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에 반대하는 위원들은 법적 안정성을 내세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최근 “여론에 따라 형량이 바뀌면 사법 신뢰가 무너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일반 성범죄와는 성격이 다르다. 무방비 상태의 아동을 상대로 저지른 성범죄는 평생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남기는 범죄인 만큼, 일반 범죄와 다른 취급이 필요하다.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올리면 다른 범죄와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