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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끼리 오순도순 “아픔 털고 미래 준비할래요”

이혼한 이주여성들의 보금자리 ‘명락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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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0호 박성훈⁄ 2009.10.20 13:12:26

“오갈 데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니 감사해요. 그동안의 아픔과 고통은 잊고 열심히 살아서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 여러 직원 선생님들이 어떤 힘든 점이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니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서울 관악구 청룡동에 위치한 천태종 명락사(주지 무원)가 운영하는 이혼 이주여성을 위한 모자(母子) 쉼터 ‘명락빌리지’ 입주자들의 말이다. 이곳에서 만난 조선족 ㅈ씨는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불화로 이혼을 했다. 국내 결혼이 재혼이었던 ㅈ씨는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남편과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한국 땅을 밟았지만 현실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남편은 술 마시면 손찌검을 하는데다 바람을 피우기 일쑤였고, 이를 못 이긴 ㅈ씨가 이혼하자고 하자 남편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어느 날 남편은 식당에서 일하는 ㅈ씨를 때려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혔다. 얼굴을 한 대 쳤는데, 이를 맞고 넘어진 ㅈ씨의 머리가 떨어진 곳이 하필 식탁의 모서리였던 것이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딸아이는 그때 입은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밤에 불을 끄고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한다. ㅈ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병원에서 퇴원할 때에는 죽고 싶었지만, 이주여성센터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몽골에서 온 ㅊ씨는 남편이 아이를 원치 않아 임신한 몸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당시 그를 보기 위해 방한한 75세의 노모와 함께 내쫓긴 ㅊ씨는 열흘 동안 어머니와 노상에서 머물다, 이주여성 상담전화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임신한 몸으로 어머니와 끼니 해결도 못하면서 길거리를 정처 없이 헤맸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각박한 도시의 길거리. 가뜩이나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 소박맞은 이주여성들이 발붙일 곳은 더더욱 없다. 최초의 다문화 모자 쉼터 ‘명락빌리지’ 무원 스님이 지난 4월 명락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사찰을 국내 최초의 다문화사찰로 표명하고,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원 스님은 종교의 의무로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보살펴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 불교도 수행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문화의 충돌로 발생하는 문제에 문제의식을 가진 무원 스님의 적극적인 추진과 신도들의 호응으로 우선 시작한 사업이 바로 국내 최초의 다문화 모자 쉼터 ‘명락빌리지’였다. 명락사 뒤편에 자리한 명락빌리지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여관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낡은 건물을 보수하면서 빌리지를 꾸몄고, 7월에 개괄적인 시설 개보수를 마치기까지 복지재단 직원과 자원봉사자·불신도 등이 힘과 열정을 합쳤다. 페인트로 도색하고, 건물 앞의 시멘트 벽에 도자기 파편과 타일을 붙여 장식을 했더니, 삭막했던 공간이 제법 사람 살 만한 따뜻한 공간으로 변했다. 건물이 워낙 오래돼 손봐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입주해 새 삶을 꾸릴 이주여성을 생각하면 개원을 늦출 수 없었다. 8월부터 입주가정을 받아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가정 2세대가 머물다 독립했고, 현재는 중국인 7세대(한족 4세대, 조선족 3세대), 몽골인 1세대를 합쳐 총 8세대 14명이 화장실이 딸린 3평 남짓한 공간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생활비·의료비 지원, 자립기반 유도 입주한 가정은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영아에서 초등학생까지 아이 딸린 집이 대부분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파른 탓에 넘어지면 크게 다칠 우려가 있어, 아기가 있는 가정은 주로 1층에 배치하고 있다. 명락빌리지 지하 1층에는 냉장고와 보온밥솥·식탁 등이 마련된 주방이 있다. 이곳은 빌리지에 입주한 이주여성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아침마다 천태종 복지재단의 직원이 들러 쌀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반찬은 충분한지를 확인해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식사는 방마다 순번을 정해 이주여성들 간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입주자들은 면담할 기회가 많지 않아 이따금씩 전화로 근황을 묻고 있다. 또, 매주 금요일에는 전체 입주자 회의를 열어 입주자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명락빌리지의 실무를 맡고 있는 김남수 사무국장은 “아침 8시에 나가서 저녁 10시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입주한 이주여성 대부분이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원만 하고 있고, 자립의 기반을 만들도록 직업을 갖게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직장을 갖지 못한 이들도 많아, 가구당 한 달에 긴급생활지원비를 5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이 없는 이주여성에게 의료비 부담이 큰 것을 고려해 병원 진료비와 약값도 대신 부담해주고 있다. 김 국장은 “이주여성 문제 중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이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데 엄마는 외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데에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원봉사 시스템이 과제 빌리지의 운영비는 천태종 복지재단에서 조달하고 있다. 또, 명락사에서는 다문화 모자가정을 도울 수 있도록 이름을 단 연등을 걸고 후원금 1만 원씩 모금하는 다문화 기원 만등불사 행사를 100일 간 진행하고 있다. 명락사 앞에는 이미 수천 명에 달하는 도움의 손길이 연등이 되어 주렁주렁 청룡동 대로를 장식하고 있다. 김남수 사무국장은 “입주에는 별다른 조건이 따르지 않는다. 이혼해 오갈 데 없는 이주여성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며 “아직 시설 등록이 안 돼 있고 홍보도 부족해 직접 찾아오는 이주여성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 많이 찾아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명락빌리지 사업이 조금씩 신도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자원봉사를 하고자 하는 이들의 문의가 많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자원봉사단을 꾸려낼 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 과제로 남아 있다. 빌리지를 보수하는 과정에서는 벽을 꾸미는 작업이나 시설을 고치는 작업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협동의 장을 만들었지만, 시설이 완성된 후에는 자원봉사 활동이 소강에 접어든 게 사실이다. 이주여성들이 입주를 한 이상 개인생활은 알아서 하고, 기본적인 지원은 직원들이 맡아 하는데다, 필요 이상의 도움은 그들의 자립심을 더욱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직업교육 프로그램과 한국어 교육 등은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전담해야 하는 분야라서 자원봉사단만으로 충당하기 힘든 면도 있다. 하여, 천태종 복지재단에서는 입주자들과의 연계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골몰하고 있다. 김남수 사무국장은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여성은 우리나라에서 아이 양육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책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얻는 육아 정보가 한국어로 돼 있어 정보가 부족하다”며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자녀 양육방법을 배우는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실험하면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명락공동체’로 발전하는 게 목표 명락빌리지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1년. 여타 이주여성 쉼터와 동일하다. 시설이 한정적이고 보호가 필요한 이주여성은 많다는 문제도 있지만, 이주여성들이 입주시설에 안주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기간을 정해 놓을 수밖에 없다. 결국 직업훈련 등 이주여성이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시설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게 이혼한 이주여성들의 처지이다. 김남수 사무국장은 “시설을 처음 방문한 이주여성보다는 서울이주여성쉼터와 같은 기존 시설의 소개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명락빌리지에서 사회적응 훈련을 준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악구청 등과 협조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찰 교육관에서 건축 인테리어 등 별도의 직업교육을 병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미술교육을 통해 인테리어 등 직업으로 특성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갖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김 사무국장은 “면담해보면 대개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거나, 찜질방 청소, 공사장 청소 등 고된 일을 하는 이가 아니면 미취업자들”이라며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육아를 비롯한 여러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명락빌리지는 장기적으로 다문화자활센터, 다문화지역아동센터, 청년전문문화예술단체 ‘야단법석’을 중심으로 지역의 건전한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쾌적한 환경을 구현하는 ‘명락공동체’를 결성해 새로운 복지공동체의 모델을 정립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아직은 14세대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작은 공동체이지만, 도량에 맞게 복지사업을 꾸리면서 향후 역량을 늘려 나가겠다는 게 ‘명락공동체’를 준비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인터뷰]명락사 주지 무원 스님 “이주여성도 소중한 인연, 차별하지 말아야”

“불교에서는 인연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한국에 오는 이주여성들도 인연입니다. 좋은 일을 했든, 빚을 졌든, 전생에 기막힌 인연이 있어 이역만리 흘러와 자식까지 낳았는데, 이들이 오갈 데 없이 헤맨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토대를 만들어주는 게 종교의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다문화여성 쉼터 ‘명락빌리지’를 설립한 명락사 주지 무원 스님은 이주여성을 위한 사업을 시작한 계기와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의 개념을 결합시켜 설명했다. 그가 다문화가정에 주목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현재 천태종 총무부장과 함께 한국 다문화센터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 국회 다문화포럼을 창립했다. 무원 스님은 다문화사찰을 표명한 것과 관련 “세상엔 빛과 어둠이 항상 공존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밝은 곳만 보려 한다”며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모든 외국인 가정이 잘 정착하고, 나아가 외국인과 한국인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도우며 발전할 수 있도록 다문화인들을 위한 사업을 계속 벌여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원 스님은 한국의 다문화화에 대해 “우리나라는 이제 단일민족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서 세계가 국경 없이 드나드는데,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려면 내 주위의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가족처럼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농촌 신혼신부의 38.5%가 결혼이주여성이고, 2020년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농촌 초등학교 학생 수의 50%를 차지하게 된다고 한다. 이 같은 세태에 대해 무원 스님은 “사회문제가 생겨서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농촌에서는 다문화가구의 비율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편을 가르는 문화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회분열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그들을 적대시할 때가 아니다. 자식들과 통합할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저출산으로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인구 공백을 다문화가정에서 메워준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람이 기피하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며 이민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주여성의 인권피해 사례가 불거지는 일을 우려하며 “우리나라도 어려운 시절에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로 핍박을 받은 일이 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무원 스님은 이주여성이 이혼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2년 이상 체류해야 국적취득 신청이 가능한데, 그 기간 안에 한국에서 자식을 낳으면 자녀와 엄마가 국적이 달라 문제가 발생한다”며 “국제결혼한 한국 남성들이 이주여성 배우자와 일정 기간 동안 함께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법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가 하나의 꽃이라는 뜻)’ 사상이 있습니다. 강물마다 각기 이름이 달라도 바다에 이르면 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듯, 얼굴색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국적과 인종이 다르다고 분별하거나 차별하지 말고 부처님의 자비로 서로를 위하고 다 함께 행복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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