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윤영상 ysangyn@naver.com 영등포역의 쪽방촌. 서울 영등포역에서 문래 방향 고가도로 쪽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하루 방값 7000원 가량인 임대주택들이 줄지어 선 곳이다. 일용직으로 방값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고, 그마저 어려운 이들은 영등포역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도 가끔 이곳을 찾곤 한다. 때로는 봉사활동을 하러, 때로는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기도라도 해주려고 말이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고가도로에서 쪽방촌 끝에 이르기까지 길바닥에 노숙인들이 줄지어 누워 있는데, 6.25 전쟁통의 야전병원도 아닌 마당에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도 종종 눈에 띈다. 오늘도 저녁이면 급식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자들이 어제처럼 모이고, 교회 같은 종교단체에서 봉사와 전도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이기도 한다. 영등포역 노숙자들을 찾아서 쪽방촌 인근에서 자란 내게 이곳은 희망도 소망도 없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길에는 술 냄새를 동반한 악취가 가득하고, 죽은 쥐와 쓰레기가 나뒹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이 든 남정네들에게 몸을 파는 일명 ‘박카스 아줌마’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성매매 업소의 호객꾼들은 어린 나에게까지 접근해오곤 했었다. 그런 기억으로 인해 그곳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오랜만에 영등포역을 찾은 어느 날 봉사활동 후에 문득 고민이 찾아왔다. ‘내가 봉사를 마치고 보람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지만, 남겨진 분들의 밤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고민이 생긴 것이다. 함께 간 봉사단원들이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며 하나 둘 어스름 속으로 흩어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늦은 밤. 노숙인들과 그날 밤을 함께할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남았다.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다행히도 한 노숙인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조금 친해지자, 그는 자신의 무리에 나를 소개해주었다. 그는 샤갈을 좋아하던 미술학도였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전과 때문에 젊은 나이에 노숙인이 되었다고 했다. 언행으로 보아 심한 알코올 중독 상태였다. 이렇게 해서 그의 소개로 노숙인의 무리에 섞여 들어갈 수 있었다. 나를 ‘윤선생님’ 혹은 ‘신입’이라고 부르던 그들은 노인, 장애인, 20대 청년 등 사연도 다양했는데,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이었다. 그리고 내가 섞인 그 하룻밤에도 몇 차례나 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폭력이 빈번했고, 주위에 널린 소주병은 위험한 무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그곳을 지나는 젊은 행인들 중에는 듣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노숙인들을 ‘거지’라고 부르며 놀려대는 철부지도 있고, 반대로 행인에게 시비를 거는 노숙인도 있어, 행여 싸움이라도 날까봐 조바심을 쳤다. 그들이 권하는 소주잔을 몇 차례 기울이고 그들과 밥을 먹고 그들의 싸움 현장에까지 동행하게 되면서,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범죄와 폭력과 알코올로 얼룩진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관심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많은 단체들이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가지만 영등포역은 그대로인 것만 같았고, 그들의 삶은 얼룩져보였고,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한 노숙인은 오랜만에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났다며 나를 불러내어 라면을 사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노숙생활을 하면서도 신학대에 입학하여 종교인이 되기를 꿈꿨다는 그조차도 계속되는 폭력과 알코올 중독 속에서 그날 밤도 괴로워하며 몸서리치고 있었다. 자정이 되자, 주변의 몇몇 교회에서 청년들이 찾아와 집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에 이런 집회가 열린다는 것은 정말로 의외였다. 노래에 맞추어 여성 노숙인은 춤을 추었다. 신앙을 위해서인지, 잠이 안 와서인지, 간식을 받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그곳에 모여 있는 노숙인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더 인상적인 것은 기도였다. 많은 노숙인들이 신에게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맨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는 노숙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날 밤 나를 노숙인 무리에 초청해준 사람이었다. 그날 밤 몇 차례의 폭력과 음주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 노숙인은 살인 전과자라고 했는데, 그는 신에게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엎드려 기도하였다. 하룻밤 경험한 작은 기적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도 숙연해졌다. 그곳에서 작은 기적을 일으키던 그날 밤의 예배 분위기는 사뭇 감동적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봉사자들은 지난 15년 간 노숙인들의 행패와 지하철 역무원들의 단속을 인내하며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고 한다. 끊임없는 사랑과 정성이 그곳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간 이곳을 찾을 때마다, 도저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고 지쳐 관심을 아예 끊으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꾸준한 노력과 관심은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는 것을 영등포역의 작은 기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그들에게서 한 자락의 희망도 소망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외부와의 단절감·소외감 때문이었으리라. 겉으로는 벽을 쌓은 듯이 보이는 그들이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니 그들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재기를 바라고 있었다. 주위의 편견과 따가운 시선 또는 무관심에 짓눌려 그들은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날 밤의 노숙인들을 꾸준히 찾아갈 자신은 없다. 그들도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할 때에 어느 누구도 또 보자는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이곳은 올 만한 곳이 아니니 다시는 오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충고만 들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그들은 분명히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정책적인 노력이 있어도 상대적 빈곤층과 상대적 소외계층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들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사랑과 따뜻한 관심일 것이다. 내가 겪은 그들은 이미 정상적인 판단과 사고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음과 마음의 소통으로만 그들의 의식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쌓인 벽이 무너질 때, 우리 마음에도 따뜻한 훈풍이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