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과감한 삭발 헤어 스타일, 단단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근육질 팔과 복근, 상대를 제압하는 강렬한 이목구비…. 기자가 뮤지컬 배우 문종원(32)을 처음 본 건 2년 전 뮤지컬 ‘아킬라’에서다. 당시 그의 인상은 배우보다 보디빌더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대 위 문종원의 활약에 넋을 잃은 기억이 난다. 악역이었지만 풍부한 성량과 함께 흘러나오는 문종원의 멋진 목소리에 여러 여성 관객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문종원은 2004년 뮤지컬 ‘렌트’에서 앙상블을 시작으로 ‘뱃보이’ ‘노트르담 드 파리’ ‘맨 오브 라만차’ ‘아킬라’ ‘생명의 항해’ 그리고 지난달 막을 내린 ‘아이다’까지 7년이 넘게 바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22일부터 10월 20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앙코르 무대를 갖는 뮤지컬 ‘올 댓 재즈(All that Jazz)’에서 세계적인 안무가 유태민 역에 캐스팅됐다. “너무 힘들어서 이번엔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생각이었어요. 원래 ‘올 댓 재즈’도 출연하지 않겠다고 거절했었는데, 그렇게 거절하고 나니 서병구 연출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다시 하겠다고 말했죠.” ‘아이다’에서 남자 주인공 ‘라다메스’의 아버지 조세르 역으로 농도 짙은 카리스마를 보여준 문종원은 많은 작품의 러브콜을 물리치고 ‘올 댓 재즈’로 돌아왔다. 이 뮤지컬은 지난해 초연된 창작 작품으로, 문종원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자식 같은 존재다. 문종원이라는 이름을 크게 걸고 하는 작품이라서 더 애착이 간다고 한다. “이번엔 덜 쫓기는 카리스마 보여 줄게요” ‘올 댓 재즈’는 케이블 방송 PD 서유라와 그녀의 옛 연인이자 세계적인 안무가 유태민, 유태민의 곁을 지키는 비밀스러운 존재 데이비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춤과 음악으로 펼친다. 안무가로 유명한 서병구가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아이다’에서 중년을 연기한 문종원은 “전보다 ‘늙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역할 후유증을 호소하는가 하면, “예전에 ‘올 댓 재즈’를 할 땐 쫓기는 카리스마, 카리스마를 위한 카리스마를 보여줬지만, 이번엔 좀 덜 쫓기는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다’ 때는 오랜 기간 원캐스트로 활약했지만 이번엔 절친한 친구 최수형과 함께 더블 캐스팅이다. 문종원은 최수형과 동갑내기로 ‘노트르담 드 파리’ 때부터 지금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에는 최수형, 윤형렬, 김성민과 함께 뮤지컬 보컬 그룹 ‘4ONE’을 결성해 앨범도 냈다. “견제요? 전혀 없어요. (최)수형은 제가 뮤지컬을 하면서 사귄 친한 친구 중에 넘버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성격도 정말 많이 닮았어요. 수형과는 술 마시면서 연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입니다. 같은 역할이지만 배우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지는 않겠지만요.” 문종원이 연구한 유태민은 안무가가 되고 싶어서 된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주위에서 성공했다고 해도 그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사랑도 인생도 포기한 안타까운 인물이다. 문종원은 “마지막에 유태민이 올리는 극 중 쇼 ‘올 댓 재즈’에서 그런 여운을 표현하고 싶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톱스타 조승우 따라서 시작한 뮤지컬 ‘유태민은 안무가가 되고 싶어서 된 인물이 아니다’라는 대목에서 문득 문종원이 뮤지컬 배우가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문종원은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걸까? 이에 대해 문종원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아니라고 했다. “대학 동기들은 내가 뮤지컬 배우가 된 걸 보고 혀를 내두른다”는 말을 덧붙였다. 놀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던 문종원이 뮤지컬에 눈을 돌린 계기는 뮤지컬 톱스타 조승우 때문이라고 한다. 조승우와 대학 동기인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본 조승우의 공연에 매료됐다. 그리고 단순하게 ‘나도 한 번 해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무턱대고 나선 오디션에서 덜컥 붙었다. 이후 매년 평균 2~3개의 작품에 꾸준히 출연했다.
“초반엔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요, 제가 오디션에서 잘 안 떨어지는 이유는 ‘어디 하나에는 꼭 쓰일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좋다’는 것이었죠. 지금은 강한 이미지로 굳어졌지만, 예전엔 이것저것 뭘 시켜도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뱃보이’를 할 땐 소녀 역할도 했고, ‘가스펠’에서는 삭발하고 예수님 역할도 했었죠.” 삭발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삭발은 종종 했는데 ‘맨 오브 라만차’ 오디션을 볼 때 삭발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아서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며 “삭발을 하니 캐릭터도 좋아 보이고 잘 팔릴 것 같은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머리 감기도 편하고 좋은 점이 참 많다”고 말하면서 큰 손으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올 댓 재즈’ 연습실에서 만난 문종원은 위트가 넘쳤다. 자신보다 상대를 재미있게 해주려는 그의 이야기에 기분 좋게 빠져들었다. -문종원 씨는 제가 본 남자 뮤지컬 배우 중에 가장 섹시한 사람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세요? “하하. 섹시하다는 말 정말 듣기 좋아요.” -여자보다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타입 같아요. 어때요? “주변에 남자가 많습니다. 저를 좋아하는 여자는 마니아에 가깝죠(웃음).” -자신이 가장 섹시할 땐 언젠가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네요. 대신 제가 무대를 볼 때 섹시한 사람을 말할게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앙상블도 없이 홀로 서서 숨 쉬는 모습이 그렇게 섹시해 보일 수가 없어요.” -남성적이고 섹시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입니다. 배우가 아닌 문종원은 어떤 사람인가요? “성격 완전 좋죠. 남자답다는 말도 많이 듣고요. 그런데 실제로 제 진짜 성격을 아는 사람은 어머니 정도입니다. 어릴 때부터 (남성적인 행동이) 습관이 돼 있어서인지 밖에선 대범하게 굴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한테 짜증을 내곤 했어요. 저도 제 성격이 이렇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어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제가 엄마한테 화를 내고 있더라고요. 남들은 저더러 배려가 좋다고 하지만, 배려가 아니라 존중하는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요.” -연기를 하려면 자신을 역할에 대입시키지 않나요? “저는 타당성을 찾는 쪽이 빨라요. 설정한 인물을 저를 통해 표현하는 거죠.” -성격이 좋아서 친구가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형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아요(웃음). 그 중에 연극배우 김명수 형님은 제게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라서 꼭 말씀 드리고 싶어요. ‘까미유 끌로델’에서 만났는데, 저에게 배우 마인드를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요즘엔 잘 뵙지 못하지만, 나중에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되면 형님 성함을 꼭 말할 생각입니다.” -뮤지컬 보컬 그룹 4ONE의 멤버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성민은 ‘몬테크리스토’에 출연 중이고, 형렬은 공익근무요원으로 지내고 있어요. 4ONE은 누군가 갑자기 하자고 해서 했어요. 제가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고요. 모두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앨범도 냈는데, 회사가 망하면서 없어졌어요.” -뮤지컬의 대중화를 위해 그룹도 결성하고,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군요. “저는 시작이 뮤지컬이기 때문에 뮤지컬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뮤지컬이 아닌 다른 분야에는 욕심이 없나요? “영화를 한 편 찍긴 했는데 아직 개봉을 안 했어요. 베니스영화제에 나갔는데 아무래도 상을 타야 개봉될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연극은 종종 하고 있어요. 다 잘하고 싶은데 끝이 없네요. 그런 면에서 뮤지컬은 정말 힘든 분야입니다. 한 가지를 잘하기도 힘든데, 연기도 음악도 잘해야 하니까요. 연기도 음악도 중간인 뮤지컬 배우가 많은데요, 저는 그들보다는 조금 나은 배우가 됐으면 해요. ‘쟤는 정말 연기도 노래도 잘한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까지 노력할 겁니다.”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뭐죠? “딱히 하고 싶은 작품은 없어요. 그때그때가 더 중요하거든요.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있습니다. ‘가스펠’은 언젠간 꼭 다시 할 겁니다.” -가장 잘한다고 자신하는 역할은요? “앉아 있는데 동적인 느낌 내기? 고생은 앙상블이 하고 저는 중앙에서 멋있게 보이고요(웃음).” -대학로의 ‘올 댓 재즈’는 어떻게 다를까요? “대학로는 젊음의 공간,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대학로의 독특한 냄새가 있죠. 하지만 ‘올 댓 재즈’는 대학로에서 그동안 볼 수 없는 작품이 될 겁니다. 이 작품이 대학로에 알려지면 앞으로 대학로가 어떻게 될지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9월부터 조광호 연출의 신작 연극 ‘도화만발(가제)’을 하고, 연극이 끝난 뒤 ‘XX(아직 밝힐 수 없다)’를 할 계획입니다. 노래가 한 곡도 없는 역할이어서 어떨지 굉장히 기대돼요. 또 내년 3~5월에 현재 기획 중인 작품을 할 예정입니다. 저 정말 쉬어야 하는데, 언제 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