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병원에서 보면 알코올 중독 이외에도 술 탓에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많다. 추운 날 술 마시고 길에서 자다가 동사 직전에 실려 온 사람, 술을 마시고 토하다가 위액이 호흡기로 들어가 치명적인 폐렴에 걸린 사람,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 자신이 무슨 일을 한지도 모른 채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 등 ‘술병’의 종류도 다양하다. 필자의 미국 보스턴 유학 시절 살던 집에서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조그만 바가 하나 있었다. 묘한 것은 아침에도 가게 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이다. 슬쩍 들여다보면 가관이었다. 몇 사람이 카운터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중 한두 명은 술병과 오른손을 넥타이로 묶고, 넥타이를 목에 둘러맨 뒤 왼손으로 다른 쪽 넥타이 끝을 잡아당겨 술병을 입 쪽으로 가져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손이 너무 떨리기 때문이리라. 대체로 알코올 중독이 되면 술 이외에 다른 음식은 잘 먹으려 들지 않는다. 알코올의 열량이 높기 때문에 다른 음식을 먹지 않아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마치고 모 병원에 인턴으로 근무했는데 중소 병원이었으므로 인턴이었지만 전공의 수준의 일을 다 했다. 하루는 40대 남성이 입원했는데 병명이 알코올 중독이었다. 중독 치료를 위해 단독 병실에 입원시키고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알코올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정신과 과장의 회진에 동행했는데 환자는 잘 견딘다고 생각될 정도로 멀쩡했다. 보통 알코올 중독 환자를 입원시키고 술을 끊게 하면 금단 증세가 나타나 환자가 안절부절 못하고 난동을 부린다. 그런데 입원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때 이 환자가 병원 마당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 벽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사실인즉 이 환자는 그동안 주로 밤중에 병실 창문을 통해 5층에서 홈통을 타고 내려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밤에도 역시 술을 마시고 병실로 올라가다 떨어진 것이었다. 목숨은 구했지만 다리와 팔이 부러져 잠시 동안이나마 완전히 술을 끊어야 하는 신세로 수감(?)이 됐다. 술 때문에 닭 모가지 같은 신세가 된 일화도 있다. 신촌의 병원 근처에서 자전거가 나뒹굴고 그 옆에 20대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전공의가 들여다보았다. 숨을 못 쉬는 것 같아 호흡을 도와주는 튜브를 목에 넣으려고 했지만 저항이 심해 실패했다. 그러자 전공의는 목젖 아래 부분을 절개하고 튜브를 넣어 산소를 공급했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20년 전 전쟁터 같던 응급실, 그리고 아직 일천한 실력의 전공의가 ‘잘못된 진단’을 내려 생긴 일이었다. 이 환자, 술에서 깨어 보니 손은 침대에 묶여 있고 소리를 쳐 보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몸짓으로 아우성을 치는 걸 내가 발견하고 목의 튜브 구멍을 막아주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느 놈이 내 목을 땄어?” 나도 20여 년 전 우리 병원 동료, 선배 선생님과 술을 좀 과하게 마신 뒤 내가 운전해 병원으로 돌아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브레이크를 밟고 보니 앞은 절벽이고 한 쪽 바퀴는 이미 절벽 밖으로 나가 있었다. 뒷좌석의 두 사람에게 이 사실을 말했지만 술에 취한 두 분 왈 “야, 운전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지금 딴 소리야?” 나는 술 취한 김에 기어를 후진으로 놓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다행히 우리는 살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술을 마시면 절대로 운전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음주운전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음주운전을 하는 순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술 취한 개라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