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호 박현준⁄ 2011.07.11 11:57:14
윤종찬 연세대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심장내과 임상연구조교수 의사들이 병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할 때뿐만 아니라 각종 건강관련 뉴스나 건강 보조 식품에도 염증과 관련된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자칫 모든 병의 원인이 염증이고 염증을 조절하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게 한다. 염증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모호한’ 의미로 남용하게 되면 오히려 그 본래의 중요성마저 훼손되기가 쉽다. 그렇다면 염증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염증이 심혈관계 질환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염증(炎症, Inflammation)이란 말의 어원은 한자와 영어에서 모두 ‘불’과 관련되어 있다. 한자어 ‘염(炎)’은 불꽃을 의미하고, 영어 표현인 ‘인플러메이션(Inflammation)’은 ‘불을 지르다’라는 뜻인 라틴어 ‘인플러메어(Inflammare)’에서 유래하였다. 오래 전 사람들은 우리 몸 어딘가에서 불이 난 것과 같은 현상을 ‘염증’이라고 표현한 셈이다. 그러면서 염증의 특징을 4가지로 요약하였는데, 해당 부위가 ‘붓고’, ‘붉어지고’, ‘열이 나고’, ‘아픈’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고대의 설명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예를 들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목감기’라고 알려진 편도선염의 경우도 편도선이라는 조직에 발생한 염증을 말한다. 보통 편도선에 세균이 감염되면 이 부위가 붓고 붉게 변하면서 열이 나고 통증을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염증 반응을 통하여 우리 몸에서는 ‘세균’이라는 위해한 자극을 제거하고 자극을 받아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킨다. 즉 일련의 염증 반응을 통하여 편도선에 침입한 세균을 제거하고 다시 조직을 복구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염증은 지속 시기에 따라 급성 염증과 만성 염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위에서 예를 든 편도선염은 급성 염증에 해당한다. 급성 염증은 갑작스럽고 몹시 심한 양상을 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완화되면서 사라진다. 대부분의 급성 염증은 세균 감염으로 발생한다. 우리 몸이 감염을 이겨내기 위한 반응이 염증으로 나타나며, 며칠 후 염증은 가라 앉게 된다. 물론 결핵과 같이 만성적으로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도 있다. 만성 염증은 마치 ‘잔불’이 계속 지속되는 것처럼 증상은 심하지 않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염증 반응이 지나치게 오랜 기간 지속되거나 염증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발생하면 해당 부위의 조직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 우리 몸의 전반적인 염증성 경향을 높여 다른 여러 가지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성 염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1. 외부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특별한 질병상태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계속 반복적인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나 2.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당뇨병, 3.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 4. 독성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5. 과도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경우에서 모두 만성 염증이 발생한다. 이러한 과도한 만성 염증 반응이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발생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뇌로 가는 혈관에 발생하면 뇌경색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단순히 혈관 안에 콜레스테롤과 같은 기름덩어리가 끼면서 좁아져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왜 어떤 경우에는 혈관에만 기름덩어리가 끼고, 또 어떤 환자에서는 비슷한 정도의 기름덩어리이지만 이 기름덩어리(플라크)가 파열되어 급성심근경색 등 심각한 질병을 초래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근래 혈관벽에 발생한 만성 염증의 존재와 정도가 협심증과 심근경색의 병인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로 알려지고 있다. 즉 만성 염증이 협심증과 심근 경색에 있어서 병을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인자라는 것이 여러 가지 동물실험과 대규모 역학 조사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최근에는 과도한 만성 염증 반응이 심혈관계 질환뿐만 아니라 암이나 치매와도 관련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염증 반응이 무조건 나쁜 것처럼 생각될 수 있으나 앞에 살펴 본 것처럼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좋은 염증 반응’이 사실 대부분이고, 아주 일부의 ‘나쁜 염증 반응’이 심혈관계 질환이나 암, 치매와 같은 질병 발생에 관여하는 것이다. 또한 드물지만 루푸스나 류마티성 관절염 등도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나쁜 염증반응이다. 따라서 염증을 억제한다고 하는 약제나 식품이 모두 좋을 수는 없다.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염증 반응까지 억제되면 자칫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치명적인 감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염증 반응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심혈관계 질환이나 암, 치매의 발생에 관여하는 ‘나쁜 염증 반응’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치료법은 개발되지 못하여 많은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염증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하여 약들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치료법은 아니지만 근래 많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웰빙요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식사를 조절하고 금연을 실천하는 등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기저 질환을 잘 관리하면서 평소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는 것이 ‘나쁜 염증 반응’을 줄이는 가장 손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담당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