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위에 앉아 웃고 있는 고릴라, 폼 나게 골프채를 휘두르는 고릴라 등 익살스런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뭔가 모를 씁쓸함이 감돈다. ‘댓글놀이’라는 제목을 지닌 마우스 위의 고릴라는 악의성 댓글로 고통 받아 자살했던 사람들, 골프 치는 고릴라는 무분별한 자연 파괴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불편한’ 진실들을 보기 꺼려한다. 이에 수면 속 깊이 가라앉아 있는 진실을 꺼내 보여주고자 권오인 작가가 ‘What am I lost? 전’을 서울 인사동 JH갤러리에서 8월 10일부터 16일까지 연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그것이 작가가 잡은 이번 전시 주제이다. 정확히 문법적으로는 ‘What have I lost’가 맞지만 오히려 이 어긋난 어법 또한 전시 주제에 잘 부합된다는 생각에 밀어붙이게 됐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 중 한 명으로서 지금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해마다 그렇지만 올해도 역시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려요. 그 잊힌 현실들을 꺼내보고 싶었어요. 전시명 같은 경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의미조차 모호한 현실에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풍토에 대한 질문의 의미를 잘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는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수집한 오늘의 이미지들을 재현하는 작업을 ‘알레고리(allegorille)’라는 이름하에 이어왔다. 이는 알레고리의 불어식 표기 알레고리(allegorie)와 고릴라를 뜻하는 불어 고릴(gorille)의 합성어로 플라톤의 동굴의 알레고리 철학으로부터 비롯됐다. 즉, 동굴 속에서 실제를 등지고 돌아서서 반대쪽 벽에 비춰진 실제의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실제라고 믿는 죄수들처럼 현실의 사람들도 ‘진실’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진실의 ‘그림자’만을 보면서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무엇이 진실인지 모호한 현실이지만 적어도 진실의 그림자라도 쉽게 잊어버리지 말고 진지하게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계속 보다보면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어요.” 이번 전시에는 이전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서유기’를 접목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서유기’에서 현대 사회와 겹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한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시리즈로 앞으로 할 작업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볼 수 있다. “해보고 싶은 작업들이 많아요. 고릴라 작업 뿐 아니라 트럼프, 모노폴리 등 게임들을 가지고 사회를 표현하는 ‘더 게임’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고 비디오 작업도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자연’을 주제로도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완벽한 미술은 ‘자연’ 속에 다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모든 작업들을 ‘재미있게’ 이어가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