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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 ⑭]잘못된 처방이 중환자를 만든다

76세 환자에 “걷지 말라” 잘못된 처방 내린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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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7호 박현준⁄ 2011.08.29 10:50:55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대형병원에는 일부이긴 하지만 지나친 권위주의에 빠져 자신이 유명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의사들도 있다. 환자를 많이, 열심히 보면서도 항상 과시를 하고 환자들에게 매우 불친절하다는 게 특징이다. 76세의 남성 환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심한 당뇨를 앓아 신장도 나빠지는 등 후유증이 생겼다. 1년 전에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면서 잘 아물지 않아 담당 의사를 찾아갔더니 “당뇨가 있으니까 발을 잘 보호해야 한다”면서 “이제부터는 걸어 다니는 것을 삼가라”고 권유하더라는 것이었다. 당뇨가 심해 발에 염증이 생기고 항생제 치료를 해도 염증이 회복되지 않아 위로 올라가면서 발목을 절단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염증 초기에 치료해 상처가 아물었는데 걷지 말라니…. 나이가 76세여서? 말도 안 되는 처방이다. 다리에 염증이 생긴 당뇨병 환자에게 늙었다고 “움직이지 말라”거나 “발목을 절단하라”고 권유하는 의사들이 있다. 이런 처방은 치료가 아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3개월이 지나면 근육량과 근육의 힘이 30%나 감소한다. 그런데 이 분은 한 6개월을 걷지 않고 의자에 앉아만 있다 보니 점차 서는 것도 어려워지고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벼룩을 없애려고 초가삼간을 태워버린 꼴이다. 당뇨병 환자가 발에 상처가 나는 것을 막으려면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발바닥에 기구를 사용하면 된다. 더욱이 현재 염증이 없다면 당뇨를 잘 조절하면서 주기적으로 관찰하면 된다. 과거에도 의사에게 “발에 염증이 심하니까 발목을 절단해야 한다”는 권유를 들은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옮긴 뒤 약물 치료를 받고 완쾌된 경우가 있었다. 나쁘게 생각하면 환자의 상태가 아니라 나이에 따라 치료 방침이 바뀌는 듯 한 느낌이다. 의사는 이 환자에게 ‘나이가 드셨는데 움직이지 않으면 어떠냐’는 생각에 걷지 말라는 권유를 했을까? 움직이지 않고 걷지 못한다면 구태여 발목은 있어서 무얼 하겠는가? 이 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서만 생활을 하면서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움직이지 않으니 당뇨병 조절도 잘 안 됐고, 결국 심장 관상동맥에까지 이상이 왔다. 그러나 심장 검사도 자세히 받지 않고 건성으로 정기 진찰만 받았다고 했다. 재활 치료를 받아 봤지만 진전이 없자 아는 사람의 권유로 나를 찾아 왔다. 지금 걸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신체 디자인을 강화 중이다. 2~3개월이면 서게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1년 이상 잘못된 치료로 생긴 의욕 상실이 회복되고 운동에 집중해야 한다. 70대 중반의 사람이 20년을 더 살 확률은 60%나 된다. 싫던 좋던 이 오랜 기간을 앉아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인체 기관은 퇴화되게 돼 있다. 어떤 결정이 옳았을까? 환자의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의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렵게 생각되는 의학. 그 중에서도 치료 방법을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으로 생각된다. 수술을 해야 하나? 항암치료를 해야 하나? 한다면 어떤 치료를? 내 분야는 아니지만 나를 잘 아는 탓에 내가 다른 의사에게 소개해준 환자들의 치료방법을 환자 자신이나 가족들에게 명확히 말해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떤 환자들은 주치의인 내과계 의사가 권하는 치료방법과 외과 의사가 권하는 치료 방법이 달라 혼동을 느끼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환자를 두고 같은 병원에서 의사마다 다르게 말하는 것은 분명 경솔하다. 원칙적으로 그 환자에 관여하는 의사들이 신중히 의논을 하고 결론을 말해야 하지만 요즘 의사들은 지극히 개인적이므로 의논을 않거나 의논을 하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미리 이야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연령의 내가 잘 알던 두 분이 폐암 진단을 받았다. 각자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두 분의 암 형태와 진행 상태는 3기로 비슷했다. 친척인 남성 환자는 주치의에게 설명을 들었고 “치료를 받고 싶다”며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폐암 3기 환자가 그 힘든 치료를 받고 좋아졌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다. 그 의미를 비슷하게 이야기하고 환자의 뜻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그는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고령의 두 환자가 있었다. 하나는 치료를 받으며 고통 속에 “왜 말을 안해 줬냐?”고 필자를 원망했고, 다른 환자는 자유롭게 살다 세상을 떠났다 반면 어머님의 친구 분이셨던 여성 환자는 진단을 받은 뒤 나의 의견을 묻기에 같은 대답을 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그럼 나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암에 걸린 분들에게 의사는 아무리 치료가 힘든 경우라도 일단은 치료를 권한다. 또한 환자들도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죽음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어서 대부분이 치료를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폐암 치료의 고통이 아주 심하다. 우선 수술을 하면 갈비뼈와 폐를 절단했기 때문에 웃기조차 힘들 정도로 고통이 심하며, 화학 요법은 사람을 땅 속으로 밀어 넣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힘든 치료를 거치고 약 2년 뒤 임종을 앞두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이렇게 힘든 치료였다면 죽어라 하고 말려 줬으면 좋았지 않았겠는가?” 치료를 거부하고 여행을 다니시던 여성 환자는 돌아가시기 약 한 달 전부터 고통을 느껴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상황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 사이에는 “혹 자살하신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기적도 있고, 같은 병이라도 사람마다 진행이 다 다른데, 결과만 보고 다시 이런 경우를 당했을 때 어떤 권유를 내가 해주는 것이 옳을지 아직도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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