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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선 “작품 의미 하나씩 버리니 작업이 편해져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작업…차분한 색감 속 생생함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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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1호 김대희⁄ 2011.09.26 13:15:43

“나는 사람들이 왜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겐 오히려 고정관념이 더욱 무서운 존재이다”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의 말이다. 때로는 내가 알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보는 것,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해보는 것,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창조의 시작이고 내 삶과 일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작품의 의미는 중요하다. 이 때문에 수 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작가는 말이 아닌 그림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고정관념이 될 수 있다. 개인전이 열리기 하루 전 갤러리에서 한창 작품을 설치 중인 이상선 작가를 만났다.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엿볼 수 있었다. “지난겨울 작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하고 싶은 게 많았죠. 그러다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되는데 한가지로만 고민을 했나 싶었죠. 내용은 하나지만 표현방식과 방법을 다양하게 했어요. 작품의 의미를 둔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히려 하나씩 비워내기로 했죠. 앞으로 점점 더 비워낼 생각이에요.” 그동안 작품을 쫓아가기 바빴다면 이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마음에 여유마저 느껴졌다.

이상선은 이 시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표정을 과감하게 포착한 작품을 주로 그린다. 화면은 맹랑하고 행복한 웃음기 가득한 아이들의 표정과 마치 눈처럼 내리는 바람꽃으로 채웠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 있자면 현대인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소외감 또는 힘들었던 과거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다양한 심적 표현이 드러난다. 때문에 아이와 바람꽃이라는 단순해 보이는 구성이지만 오히려 그림에 활력이 넘치고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최근에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거리의 풍경도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이나 풍경은 모두 실제 모델을 스케치하거나 사진을 찍어와 그림으로 그린다. 그중 불필요한 부분이나 배경은 없애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이전과는 다르게 방향을 바꿨어요. 각 전시마다 조금씩은 달랐지만 예전부터 주제가 아이였어요. 그동안 같은 내용으로 이어져 왔는데 ‘삶에 임하는 태도’를 이야기했죠. 이번 전시 제목은 ‘추상적으로’에요. 작품마다 제목 없이 일련번호로만 적혀있어요. 디지털카메라에 찍히는 번호를 그대로 써넣었죠. 아무 의미는 없어요. 그동안의 의미조차도 벗어던지고 싶어요.”

전시 제목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여기에는 궁극적으로 추상작품을 하고 싶은 그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에 추구했던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은 작품 밑바닥에 깔려 계속 이어져 왔다. 한 가지 내용이지만 작품의 표현이나 전달방식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삶의 자세도 바뀌었다. 언젠가 그는 “너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구나.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공대생이었던 그가 미술을 하게 된 계기는 이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는 미술시간에 유화로 풍경을 그리던 중 미술선생님의 눈에 들어 선생님으로부터 유화로 그림을 배웠다. 하지만 공대로 진학했는데 군대를 제대했을 당시 미술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르게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과학기술대학교(구 서울산업대) 응용회화과로 편입했다. 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작업 초기에 조형작업을 하던 그는 자신과 맞지 않는 것 같아 회화를 시작했다. 먼저 사람을 그리다보니 사람이 좋아지고 그러다 아이들을 그리게 됐는데 이 과정이 10년 정도 흘렀다. 독일 유학 당시 입체작업을 했는데 회화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그는 입체작업에서 입체적인 요소를 빼고 평면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독일서 구조에 대한 많은 걸 배웠으며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구조라 생각했다. 특히 색상에 관심이 많아 대학 시절 색과 색을 섞어 원하는 색을 만드는 작업을 잘해왔던 탓에 그의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구도와 색상을 들 수 있다. 아크릴물감으로 작업하고 마무리에 유화를 사용해 완성하는 그의 작품은 최근에는 예전보다 색이 조금은 더 밝아졌다. “그림을 보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담아내는 게 고민이었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을 하나 둘씩 버리려 해요. 이 때문인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더 편하고 작업을 하는 자세가 더 안정적이 됐죠. 소소한 고민들을 하지 않게 됐어요. 머리로 작업했다면 이제는 내 느낌 그대로 가슴으로 작업했죠. 보는 분들도 내가 느꼈던 감정을 느껴갔으면 좋겠어요. 저마다 해석은 다르지만 감정은 비슷하리라 생각해요.” 그가 생각한 그동안의 개인전이 이전 작업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이전과 달리 마치 자신이 새롭게 태어난 듯 시작하는 전시라고 한다. “행복하게 살자”가 생활신조라는 그는 “죽는 순간에도 작업을 하고 싶다”며 21번째 개인전이지만 왠지 모를 설렘에 피곤함에도 아랑곳 않고 어린아이 같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인 이상선은 인사동 갤러리 비잉에서 ‘abstractly(추상적으로)’라는 제목으로 9월 17일부터 10월 4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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