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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 - 17]“가면 또 때리려고?”로 끝난 코믹 구타사건

‘기강 잡기’ 대단한 의사 사회였는데 요즘 왕자·공주님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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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2호 박현준⁄ 2011.10.12 14:29:42

이제는 군대가 많이 민주화 됐다고 하는데도 폭행 등의 사건이 간간히 일어나고 있다. 40년 전에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 구타당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겼었다. 학교에서도 체벌은 심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농구부를 나오면서 야구 방망이로 이틀 동안 50대를 맞았다. 엉덩이가 심하게 까져서 거의 일주일을 눕지도 못하고 엎어져 있어야 했다. 학생 시절 오리엔테이션은 매 맞는 시간이었고, 전공의 1년차 때는 과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과에서는 일을 못한다고 때리기도 했다. 최근 중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 운동부의 구타 사건이 말썽이 되기도 한다. 내가 연세대학교 농구부장 시절 각 급 학교에 가보면 아이스하키 스틱, 야구 방망이, 맨 주먹 등 닥치는 대로 때리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왜 때렸을까? 운동을 못 한다는 이유인데 때린다고 잘 할 수 있을까? 전공의도 마찬가지 이유로 기합을 주곤 했다. 전공의에 대한 기합은 교수 급이 하는 게 아니라 상급 전공의 소행이었다. 개인적으로 기합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단체로 체벌을 내릴 때도 많았다.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교수 앞에서 환자 보고를 잘못해 꾸지람을 들으면 그 후유증은 반드시 년차가 적은 전공의에게로 넘어갔다. 때린 선배와 도망간 후배 의사의 코믹 대화 한판 선배 “당장 들어오지 않으면 죽는다.” 후배 “들어가면 또 때리려고요? 싫어요.” 선배 “……야! 안 때리고 잘 해줄 테니 당장 들어와.” 내가 4학년일 때 산부인과는 그 기강(?)이 무서웠다. 년차가 적은 전공의가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허구한 날 기합의 연속이었다. 지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당하며 산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괴롭힌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날이 갈수록 더 정도가 심해졌다. 어느 1년 차 전공의가 기합을 받다가 그대로 도망을 쳐버렸다. 그런데 곧 잘못했다고 빌며 들어올 줄 알았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안 들어오자 기합을 준 전공의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교수가 알면 “어떻게 했기에 도망갈 정도로 기합을 줬느냐”고 문책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 어렵게 통화가 됐는데 그 대화가 우리를 웃겼다. 선배 전공의 왈 “야! 너 안 돌아올 거야? 당장 들어오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 후배 “싫어요. 들어가면 또 때리려고요?” 선배 “야! 안 때리고 잘 해줄 테니까 오늘 들어와.” 무슨 코미디 같아서 우리는 밖에 나와서 웃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전공의가 힘들어서 아주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엔 옛날 같은 기합이 없는데도 그만두는 전공의를 자주 본다. 집집마다 왕자님, 공주님만 길러서 인내심이 부족해진 탓이리라.

의대 선배는 영원한 선배? 아닐 때 있으니… 지위가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고 한다. 같은 동료로 있다가도 한 사람이 진급을 하면 달라진다. 함께 교수로 있던 후배가 총장이 되고 나면 총장이 되기 전에는 도와 달라고 요청했던 선배에게 함부로 대하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 의사 사회는 대학 시절 선후배의 질서가 엄격하다. 한 학년만 위라도 깍듯이 대해야 한다. 그런데 전공의가 되면 이 질서가 또 바뀌게 된다. 전공의를 군대 가기 전에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다녀와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 때 후배가 전공의에서는 연차를 따질 때 역전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럴 경우 전공의 선후배일 뿐 의사 생활 전반에 걸쳐서는 학교 선배가 항상 선배다. 그런데 불과 4년 동안의 전공의 생활에서 선배를 막 대하는 의사들이 종종 있었다. 이런 현상이 심하기로 이름난 외과계. 수술할 때 학교 선배에게 “야. 똑바로 해. 정신 어디 두고 있는 거야”라고 면박을 주기 일쑤. 심지어는 “야! 너 뭐 하는 거야!”라고까지 하면서 모욕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군대를 전역하고 소아과 전공으로 처음 시작하는 당직이었다. 그 당시 산부인과에서 수술로 출산을 시킬 때는 소아과 의사가 분만실에 들어가서 출신 아기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분만실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어정쩡한 상태로 분만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가 나의 졸업 동기였다. 그런데 아기가 출산되고 내가 아기를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를 친다. “소아과에서 왔냐? 왜 보고가 없어?” 나는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이미 들어올 때 그 친구도 나를 봤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은 평생 관계를 가지므로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지만 이런 관계가 깨질 때도 있어. 후배가 전공의 먼저 되면 선배에게 마구 반말하기도. 그런데 다시 “소아과 의사 왔냐? 아기 상태 보고해!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친다.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자니 그 친구 돌아보면서 “잘 모르냐?” 하면서 고개를 다시 돌린다. 나는 아기가 정상인 것을 확인하고는 “야! 그렇게 답답하면 네가 와서 봐라!”고 하면서 분만실을 나와 버렸다. 이런 일은 나만 당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런 친구들이 일부이긴 했지만 불과 4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졸속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일할 수 있는 기간이 긴 것은 의사라는 직업이 지닌 큰 장점이다. 의과대학 병원에서는 65세에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도 대부분의 의사들이 의사 생활을 계속 한다. 일부는 개업을 하고 일부는 다른 종합 병원에 취직을 하고…. 그런데 까마득한 후배가 운영하는 종합 병원에 취직을 한 사람 중 분노를 표출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일단 병원에 들어가면 후배인 병원주가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후배라 하더라도 직장에서는 상사이므로 그만한 대접을 해줄 수 있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을 막 하고 핀잔을 주거나 간섭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손을 뻗치는 후배…. ‘인생은 짧고 선배는 영원하다’가 진리는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하지 않을까?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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