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호 박현준⁄ 2011.10.24 14:15:55
1970년대 중반 전공의 시절 유신 독재가 시작되면서 데모가 끊이질 않았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정부뿐만 아니라 가업을 비롯한 모든 기관의 ‘장’ 권력이 대단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이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어느 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도 웃지 않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다. 의과대학도 비슷했다. 각 교실의 주임교수 권력은 막강해 전공의 인사권, 교수 임명권, 진급 그리고 교수들의 수당 분배까지도 주임교수(당시는 과장 겸임)의 손에 달려 있었다. 교수 회의가 있기는 했지만 형식적이었다. 여러 교수들은 주임 교수의 뜻을 거역하는 의견을 제출하지 못했다. 필자가 졸업하던 때는 지금과 양상이 많이 달랐다. 내과, 소아과 등이 인기 있었다. 아니 인기 있었다기보다는 메이저 과로서, 의사는 외과, 내과, 소아과 등 의학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과를 전공하는 것을 보람되게 생각했다. 특히 내과는 전공의 경쟁률이 심해 성적이 나빴던 나로서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상실습에서 나를 잘 보았는지 당시 조교수였던 분이 부르셔서는 내과 지원을 권하셨다. 나는 성적이 나쁜 것을 상기시켜 드렸지만 “상관없다”고 하시며 주임교수에게 데리고 가셨다. 다시 성적 얘기했다. 그런데 주임교수도 문제가 안 된다며 “젊은 교수들이 추천을 했으니 내과로 오라”고 했다. 그 후 한 달쯤 지나 주임교수가 나에게 “지금 내과를 지원한 학생이 많기는 한데 활발한 학생이 적으니 추천할 만한 학생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겠다는 내 친구를 설득해 내과를 지원하게 했다. “성적 낮다”는데도 “문제없다”고 강권하던 교수, 나는 불합격 시키고 내가 추천한 친구만 받아들여. 결국 그 친구도 1년 뒤 “웃긴다”며 전공 바꿔 졸업이 가까울 무렵, 각 과에서는 과에 남을 전공의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웬 일? 내과 발표자 명단에서 내가 빠진 것이다. 나는 주임교수를 찾아가 내가 왜 탈락했는지를 물었다. “성적이 나빠서…”라는 대답에 나는 “이미 전에 말씀드린 사실이며 그건 문제가 안 된다고 하셨다”고 상기시켜 드렸지만 “군대 갔다 와서 보자”고 한다. 내가 계속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강조하자 교수는 “나가 봐. 요즘 학생들은 스승 말을 안 들어. 이러면 군대 갔다 와도 안 받을 거야”라고 하신다. 나는 “군대 갔다 온 뒤 내과 지원 안 합니다. 선생님이 이유 없이 약속을 어기신 겁니다” 하고 방을 나와 버렸다. 나를 추천했던 교수는 민망해하며 “이유가 황당하니 알려고 하지 말고 군대에 가라”고 하셨다. 훈련을 마치고 나와 밤 12시까지 함께 술을 마시면서 들은 이유는 이 글에서도 말하기 싫을 정도로 유치했다. 그런데 내 권유로 미국행을 포기하고 내과를 지원했던 친구는 1년 뒤 내과를 그만두면서 말했다. “참 웃긴다. 추천한 너는 떨어지고 나는 되고….” 그 친구는 군대에 다녀온 뒤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내가 소아과 교수가 된 뒤 나를 이유 없이(?) 배척했던 그 주임교수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맘에 드는 의견만 골라듣던 청와대 처음 건강보험이 시작되던 1970년대 정부에서 각 과와 학회를 대상으로 진료 수가를 보고하라고 했을 때 ‘혹시 세무조사를 하는 건 아닌가’ 해서 너무 심하게 축소해서 낸 과-학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의료비가 무척 비싼 상태였으므로 정부는 보고된 의료수가를 더 깎았고,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모델을 혼합해 건강보험 안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강보험이 전반적으로 시행된 것은 1980년 후반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후 의약 분업 문제가 제기되고 의사와 약사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도될 정도로 치열했다. 워낙 예민한 사항이므로 정치권에서도 의사 출신 국회의원과 약사 출신 국회의원 간의 로비 경쟁이 치열했다. 의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건강보험 수가인데 약값마저도 못 받으면 안 된다”고 외쳤고, 약사들은 “약은 당연히 약사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약 분업이 결정되기 전 청와대는 여러 경로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당시 내 친구가 청와대 고위직에 있었다. 한 번은 내게 전화해 솔직한 의견을 말해 달라고 했다. 물론 전화통화였지만 그 곳에는 여러 명이 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대통령 주치의가 대통령이 “의사들의 의견을 말해 달라”고 물어도 아무 의견도 안 냈고, 정부에서 준비하는 안에 무리가 없다고 답변했다는 얘기를 듣고 속이 상해 있을 때였다. 청와대에서 전화 걸어와 “의약분업 의견 말하라”고 해서 의견 말했더니 “왜 정부 비판을 하느냐”고 화를 내던 그 사람들 질문의 요점은 시행하려는 의약 분업에 대한 내 의견이었다. 나는 “너무 짧은 기간에 졸속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먼저 선진국에서 실시되는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해 우리나라에 맞는 방안을 구성한 뒤에 의약계와 이를 이용하는 국민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지 않겠냐.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충 정하는 안이 의약계의 분쟁을 조성하는데, 이에 못지않게 국민들도 불안하다. 독선적인 결정, 정치적인 결정은 위험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말이 좀 심하지 않냐? 순수한 의견을 물었는데 정부를 비난하는 말을 해서 되겠냐”며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다. 나는 “그러면 왜 내 의견을 물었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이 나오면 억누르려는 태도가 문제다. 의약분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물론 일부 의사나 약사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이 전부인 양 부추기는 것은 정부와 언론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는 아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 수렴도 좋지만 ‘전문적인 검토를 통해 다른 나라의 실패를 따라가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자신들의 의견만 옳다고 생각하며 합리화시키려는 그들의 태도가 불편했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