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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 - 22]나살려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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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9호 박현준⁄ 2011.11.21 13:37:22

1970년대 지방의 병원은 매우 열악했다. 대부분의 종합병원에는 각 과마다 의사가 부족해 중환자들이나 수술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1977년 나는 제주시 보건소 의사(당시는 레지던트가 의무적으로 6개월간 지방병원에 근무하는 제도가 있었다)로 있었다. 보건소 의사가 하는 일은 고작해야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검진하는 정도였다. 신제주 시가 막 건설되는 시기라서 나는 신제주에 제 1호로 생긴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무료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병원에서 야간 당직을 1주일에 서너번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저녁을 먹고 7시 경에 병원에 도착하니 환자는 하나도 안 보이고 조용했다. 응급실을 돌아봐도 환자는 없었다. 원장님께 인사하고 내려오니 총무과장이 맞아준다. 나는 내가 묵을 방이 어디냐고 안내를 부탁했다. 방에 가방을 두고 TV를 보고 있는데, 남자 직원이 들어와서 “응급실에 작은 방이 있는데 그 곳에 계시는 것이 편할 텐데요”라고 한다. 4층 방에서 내려와서 응급실에 딸린 방에 가보니 침대도 없이 책상과 의자만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직원이 환자가 오면 4층까지 연락하기가 귀찮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4층으로 올라와서 편하게 자리 잡고 TV를 보고 있었다. 8시가 조금 넘자 소아 환자가 왔다고 한다. 내려가서 환자를 보고 있는데 연속해서 환자들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시 경 이제 좀 조용한가 싶어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직원이 급하게 내게 와서 하는 말이 “제주 남단 20km 해상에서 배의 스크루에 팔을 다친 환자가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술이라고는 맹장 수술밖에, 그것도 딱 한 번 해봤는데 팔이 잘린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란 말인가? 2시간 쯤 지나자 그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실로 옮기고 소독을 하고 마취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의사가 아닌 40대 중반의 직원들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술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그냥 앞에 서 계시시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수술하는 기계였다. 능숙하게 찢어진 부분을 꿰매가며 1시간 여 만에 수술을 끝낸 뒤 다음 치료는 서울에서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의사라는 신분이 창피할 정도였다. 물론 내가 외과 의사는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저 사람들은 의사도 아닌데 얼마나 오랜 기간 보고 실제로 수술을 했으면 웬만한 베테랑 의사보다 더 수술을 잘한단 말인가? 이 일을 계기로 알게 된 사실은 제주도 뿐 아니라 서울, 부산 등 큰 도시를 제외한 곳의 병원에는 소위 조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개인 산부인과 병원에서 환자가 이송됐다. 이송된 환자는 낙태 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미숙으로 자궁에 손상을 받은 상태였다. 그 병원에서는 낮에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탓에 직원들이 술집에 있는 전문의를 찾아서 병원으로 데려 왔다. 이 분은 40대 중반인데 거의 매일 술을 드시는 분이었다. 수술을 하는데 역시 산부인과 의사는 앞에 서서 농담을 하고 있고 수술은 일반 직원이 하는 것이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산부인과 의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의사는 구경만 하고 수술은 일반 직원들이 능숙하게 하는 희한한 병원이 있던 시절도. 열악했던 지방병원 형편, 지금은 좋아졌어야 할텐데… 다음날 아침 나는 몰려드는 환자를 잠시도 쉬지 못하고 치료(?)한 뒤 지친 몸으로 병원을 나오다 그 산부인과 의사와 마주쳤다. “선생님, 어제 그 환자 괜찮겠지요?” 하고 묻자 그는 이상하다는 모습으로 나를 보며 “무슨 환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젯밤 자궁 수술한 환자 기억 안 나세요?”라고 말하자 그는 한심하다는 투로 “나 어제 친구들과 한 잔 했거든” 하면서 그냥 지나쳐 간다. 내가 하도 어이없이 바라보니까 그는 돌아서면서 “어이, 닥터 설.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어젯밤 수술대 앞에 서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야말로 요지경이요, 웃기는 곳이었다. 환자들이 불쌍하고 나 자신의 미미한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어쨌든 제주도 근방에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교통사고부터 감기까지 모든 환자가 나를 살려달라고 몰려드는 곳. 그래서 ‘나살려 병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곳에서 많은 생명이 구해질 수 있어서라는 것이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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