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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동양화 감성으로 태어난 ‘동구리’

무지개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걸쳐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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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3호(송년) 왕진오⁄ 2011.12.19 11:14:52

“IMF 이후 고달픈 삶을 사는 서민의 삶을 냉소적으로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죠. 우발적으로 붙인 이름이 ‘동구리’입니다. 인물 드로잉을 더 빠른 속도로, 간편하게 그리려고 연습하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로잉을 하게 됐는데, 얼굴과 팔다리,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있는 지금의 동구리와 비슷한 형상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에 몇 가닥의 머리카락, 올해로 열 살을 맞은 동구리가 태어난 배경이다. 웃고 싶다는 희망을 갖지만 웃을 수 없는 현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웃음이 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웃어야만 하는 현실을 반영한 이 캐릭터는 작가 권기수(39)가 2001년 세상에 선을 보였다. 동구리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그린다. 동양화를 전공한 권 작가는 수업시간에 배운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이야기나 강희안의 ‘고산관수도’를 통해 작업적·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의 자기 모습을 투영했다고 한다. 속세적 감정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현자나 도인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자신의 내적 고민과 고통을 내포하고, 현실도피를 꿈꾸며 탄생한 동구리는 역설적인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동구리의 미소는 저의 어려운 시절 모습을 반영한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웃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웃을 수 없는 현실, 웃음이 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웃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고 하잖아요.” 권 작가는 동구리보다는 그림의 배경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배경은 현대적으로 단순화시켜 재해석한 산수화나 사군자다. 그는 최근작 ‘리플렉션’ 시리즈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에서 선보였다. 작가는 “반성의 의미를 담아낸 작업”이라고 했다. ‘비움’이라는 자연적 수양의 의미에 흥미를 부여. 예쁘고 귀엽고 즐거운 동구리의 반성 보여주는 ‘리플렉션’ 시리즈를 전시 작품의 배경은 전작보다 더욱 풍부하고 은은한 느낌을 담는다. 반짝이는 은색과 금색이 강조됐다. 불혹을 앞둔 작가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의미를 담았다.

“30대까지 모난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오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좀 더 죽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작은 지난해 말 현재 저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에는 수면에 반사돼 거울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등장한다. 배경과 주인공을 보여주는 복잡한 구조다. 그래서인지 작업 시간이 과거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반짝이는 펄 느낌을 주다보니 다시 그리려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수정이 필요하거나 흠집이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합니다. 인내력이 요구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했습니다”며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리플렉션’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무지개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를 뜻한다. “두 존재의 만남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형상화했고 이것이 발전해 허상의 개념으로 확장됩니다, 동양에서만 무지개를 허상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동서양 모두에서 무지개는 이상이면서 허상입니다. 이 허상이 수면에 비쳐 또 다른 허상이 되는 것을 실험한 작업입니다.” 그의 작품에 대해 ‘팝아트 같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전시 때마다 ‘내 작업은 팝아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해외에서는 동양적이라고 평가해 주기 때문에 내가 ‘팝아트가 아니다’라고 변명할 이유가 없다. 꾸준히 제 작업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며 권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기다린다. “국내에선 제 그림을 팝아트라고 하지만 해외에서는 동양화적이라고 인정해요. 제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작품에 너무 거창한 의미 안 달았으면 좋겠어요” “동구리에 대해 현자나 신선 또는 부처님의 미소를 차용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동구리에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동구리는 저의 어려운 시절 모습을 반영한 저 자신입니다.” 동구리는 4년 전 미술시장의 호황을 이끌던 팝아트로 부각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귀여운 캐릭터와 화려한 색상의 튀는 화면은 애호가들을 사로잡았고 ‘동구리 작가’로 자리잡았다.

구글에서 권기수(KWON, Ki-Soo)라는 이름을 치면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함께 그의 작품이 화면에 나온다. “2008년 뉴욕에서 선보인 구글(Google) 작업은 호응이 대단했어요. 그에 반해 국내에선 당시만 해도 구글이 인기가 없어서인지 반응이 별로였어요. 동구리가 서양에서 주목을 받는 순간이었죠. 붉은 대나무 밭을 배경으로 작은 조각배에 동구리라 앉아 있는 작품을 보고 그곳에서는 ‘동양화적이고 한국적인 소재’라며 관심을 보여 놀랐습니다.” 작가는 2011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인 ‘Future Pass - from Asia to the World'에 작품을 선보였고, 자카르타와 두바이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특히 타이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만에서는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컬렉터도 생겨났다. 그는 국내외에서 많은 전시와 공공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수들이 많다고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탓에 한 해에 100여 점밖에 완성 못합니다. 돈 걱정 없이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조수들에게 월급도 줘야 하고, 그들이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동구리에 걸어보는 그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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