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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은 작가, 2012년 흑룡의 용틀임 그린다

불교미술 전통에 한국 현대인 감성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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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4-255호 왕진오⁄ 2012.01.02 14:06:03

용은 12간지 동물 중 유일하게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다. 그 만큼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2012년 새해는 용 중에서도 흑룡의 해다. 용이 승천해 활개를 치듯 모든 일이 순조롭고, 용틀임처럼 새로운 기운이 충만하기를 기대해 보는 이유다. 용의 해를 맞아 더욱 바쁜 작가가 있다. 바로 불교 미술을 바탕으로 용을 그리는 권지은(38) 작가다. 그녀는 오랜 시간 불교 미술을 학문적으로 배웠으며, 한국화로서 불교 미술을 구현하고 있다.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를 맞아 화려한 용 그림을 우리에게 선보이며 만사형통 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는 권 작가를 만나봤다. 그의 용 그림은 흑룡의 해 서막을 알리는 장엄한 의식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용의 지혜가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상징적 의미와 함께 그의 흑룡 그림은 아름다우면서도 친근한 장식화로서도 가치를 갖는다. 용의 형상도 형상이지만 번쩍이는 금빛과 은빛이 어울린 밝은 원색의 이미지는 시선을 잡아당긴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동요하고 감정이 고조된다. 화려한 이미지에 자극되면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잠재적 욕망이 꿈틀거린다. 금박과 은박이라는 고급스런 재료에 부조 형식으로 마무리된 윤곽선은 평면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는 느낌을 살린다. 탁월한 구성력과 묘사력으로 용의 독특한 형상이 표현된다.

한-중-일 동양 3국의 그림 또는 장식에서 흔히 발견되는 용은 원래 중국인이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이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하는 절대권능의 상징으로서 범접하기 힘든 존재다. 반면 한국에서는 초월적인 힘과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권선징악을 주재하는 친숙한 존재로 바뀌었다. 한국인의 해학이 녹아들어간 결과다. 새해 1월 4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경운동 장은선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녀의 용 그림 전시회는 본능적인 리듬을 촉발하는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화를 그리고 싶다” 〃숨을 고르고 한 선, 한 선 그어나가면서 속도감 있고 힘찬 선을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은 다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감동이에요. 종교화로서 주제와 형식이 제한돼 있지만 그러한 제한을 뚫고 시원하게 달릴 고속도로가 뚫린 느낌이라고 할까….〃 〃고려 시대에 그린 아름다운 불화를 '고려 불화'라 하고, 조선 시대에 그려진 불화를 '조선 불화'라고 하듯이, 이제 나는 '대한민국 불화'를 그려보고 싶어요.〃 이런 희열과 희망을 가진 권 작가가 붓을 잡고 커다란 화면에 그림을 그려 넣은 이력은 남다르다. 학교에서 불교 미술을 전공해 이론적 바탕과 함께 제대로 된 불교 미술을 일반에게 보여주려는 의지가 강했다. 불교 미술이라는 규정 자체에 종교화라는 선입견이 강하지만, 그녀는 한국 전통회화를 이루는 뿌리 같은 요소로 불교 미술을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불교 회화는 성스러운 부처의 세계를 구현한다. 따라서 엄격한 도상의 법칙과 구성의 규범에 따라 경험적인 현상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의 모습을 형상화 한다. 이렇듯 불교 미술은 전통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도상의 정확성은 성스러운 예배상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다. 이런 제한점은 불교 미술 종사자들에게 조형의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창의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이중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의 불화가 양식적으로 다르고, 500년 역사의 조선시대 불화에서도 시대적 추이를 확인할 수 있듯, 불교 회화라는 제한 속에서도 시대와 개인의 양식은 표출된다. 이러한 양식의 변화에는 그 시대의 집단적인 신앙 형태가 우선 영향을 미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을 만들어 내는 화가 집단의 성격과 개개 화가의 개성 또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권 작가는 불화에 대해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단순히 콘셉트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시대의 삶과 역사, 그리고 건축 양식처럼 우리 생활 전반에 스며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붓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이 장르”라고 설명했다. "한국 불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안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기능전수자 분과 장인들이 계시지만 저는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불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권 작가의 이러한 도전정신은 2010년 겨울 대형 작품 형태로 세상을 놀래켰다. 인사동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하루 방문객이 3000명을 넘어 화랑 측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선 하나 긋는 데서 희열을 맛보며… 권 작가의 불교 회화는 신체의 연결이 유기적이고 논리적이며, 자연스러운 곡선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조선 불화가 가진 즉물성을 작가는 비단, 오리나무 염색 같은 재료와 기법을 통해 깊고 중화된 색의 세계로 바꿔 놓는다.

그녀는 “불교 미술은 현대인의 미감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현대인의 미의식에 맞게 변형되고 창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녀 그림의 불보살들은 균형이 잘 잡힌 8등신의 신체비율과 세련된 선을 갖고 있다. 이처럼 불화를 현대화 하려는 모색을 통해 권 작가만의 창의적인 조형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그녀는 “불교 회화가 갖는 낯선 시간의 간극을 메우고 친근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완성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불교 회화는 선(線)을 만들어 내는 데 수행 같은 인내와 무수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선이 불교 회화의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려 미술가들이 선을 긋는 과정 속에서 몰입의 자유를 얻는 오랜 전통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 계승돼 내려온 것도 같은 연유다. 권 작가는 불화 그리기를 통해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즉 불교미술은 그리는 이에게는 고전적 의미의 수행과 작가적 창작의 고민을 주는 작업으로서, 그리고 관람객에게는 신심을 발현시키는 교화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지극한 미의 세계와 관련되는 관조와 기쁨이 내재된 미술이다. 오랜 시간 내려온 전통 속에서 작가가 찾아낸 대안적 표현양식을 권 작가의 그림에서 찾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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