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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미술관 삽질’에 인사동 먼지 ″풀썩″

군소 화랑들 “중소상인 숨통 끊더니 다음 과녁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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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8호 왕진오⁄ 2012.01.25 16:24:49

국내 미술 시장이 완연한 하락세로 돌아선 가운데, 막대한 자금력을 확보한 대기업들이 서울 인사동 등 화랑 운집가에 너나없이 “우리도 화랑 ‘건물’을 갖겠다”고 나서고 있어 군소 화랑들을 위기감에 빠뜨리고 있다. 국내 미술 시장의 흐름은 2010년 반짝 회복에 이어 작년에 완연한 불황기로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새해 들어 한국아트밸류연구소(소장 최정표)가 발표한 '2011 한국 그림시장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그림가격 지수는 작년에 2% 하락했다. 2008년 이후 줄곧 계속되던 폭락 장세가 2010년에 8% 상승하면서 일부 진정세를 보였지만 작년에 다시 완연히 내려앉은 셈이다. 이렇게 미술계는 신음하지만 대기업의 ‘삽질’은 미술계에서도 여전히 활발하다. 대표적 화랑가인 서울 종로의 삼청동과 사간동에는 이미 대기업 관련 미술 전시공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OCI(옛 동양제철화학)미술관, 금호미술관, 대림미술관, 쌍용의 성곡미술관, 동국제강그룹의 송원아트스페이스, SK의 아트센터나비, 아트선재센터(대우) 등이다. 신문로와 시청 인근에는 흥국생명의 일주&선화갤러리, 한진그룹의 일우스페이스, 삼성의 플라토(구 로댕갤러리)가 현재 운영을 하거나 증축 및 신축을 하고 있는 상태다. 신흥 화랑가로 부상하고 있는 강남 지역에는 (주)삼탄의 송은아트스페이스, 코리아나화장품의 코리아나미술관, 다국적 패션기업인 에르메스의 아틀리에 에르메스가 운영 중이다. 화랑가 파고들어오는 대기업의 콘크리트 덩어리들, 미술시장 활성화 계기일까 아니면 붕괴 신호탄일까. “대기업 관여 커지면 ‘돈벌이 측면’ 더욱 강조돼” 우려도 이런 마당에 서울 도심과 강남에 알짜 부지를 확보한 대기업들이 추가로 대형 미술-문화공간을 신축할 것이라는 예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한화그룹 계열사가 화랑을 신축하려고 소격동 일대 부지를 구입했다는 소문이 부동산 중개업계에 나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대형 화랑이 밀집한 평창동에 700억 원대 대형 부지를 사들이고 문화 관련 공간을 건립할 것으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한항공, 삼성화재도 미술 전시 공간만은 아니지만 도심지에 새 건물을 지으려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경복궁 인근에 7성급 호텔을 짓는다는 건립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관광 진흥법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면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 13만7000여m2 규모의 호텔을 짓는 계획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 부지는 대한항공이 2008년 삼성으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대한항공은 지하 4층, 지상 4층 규모의 고급 한옥호텔과 한국 전통 정원, 게스트하우스, 공연장, 갤러리 등을 아우르는 복합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의 이러한 움직임에 맞물려 길 건너편 인사동에 삼성화재도 옛 대성산업 인사동 사옥을 인수해 호텔-문화 시설을 건립할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재벌가의 안주인들이 너나없이 미술계에 발을 담그려 하며, 2선으로 물러났던 재벌계 안주인들의 복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삼성특검과 함께 물러났던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지난해 3월 복귀했고, 2007년 12월 신정아 사건으로 퇴진했던 박문순 성곡미술관 관장도 비슷한 시기에 돌아왔다.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대표가 홍라희 리움 관장에게 “밀린 그림 값을 갚아라”는 소송을 내면서 대기업들 사이에 “화랑에 거래를 맡기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불신감이 확산된 것도 이유로 지목된다. 서미갤러리와 오리온그룹 사이의 고가 미술품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 그리고 저축은행들이 화랑에 거액을 불법대출하는 사건 등이 작년에 연이어 터지고 수사를 받았다. 서미갤러리 홍 대표가 홍라희 관장을 상대로 물품청구 소송을 내면서 “그림 거래 값이 ’원가‘보다 최고 23배나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대한민국 미술문화 1번지, 그 명맥 유지는 가능할까 최근 인사동과 삼청동 일대 화랑가에는 “대기업 큰손들의 발길이 최근 끊긴 것은 ‘화랑에 위탁하느니 내가 직접 미술시장에 뛰어드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대기업들이 하기 시작했기 때문 아니겠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될 경우 크고 작은 화랑들에 문화인들이 몰려들고 미술품을 거래해 명맥을 유지하던 인사동 등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복합문화공간에 밀려나리라는 관측이 나올만 하다. 기업 미술관들이 막대한 자본과 네트워크를 동원해 미술계에 직접 진입한다면, 미술인과 애호가 사이에 작품성을 바탕으로 거래가 이뤄지던 관행이 앞으로는 ‘돈벌이 측면’만 강조되는 거래로 격이 떨어지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인사동의 한 화랑 대표는 “인사동은 관광명소가 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너무 인파가 많아 그림을 보러 오는 발길은 오히려 줄었다”며 “이런 마당에 대규모 문화시설이 속속 들어서면 그림 구입 고객은 더욱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것이고, 이는 미술품 구매 고객들은 세간의 눈길이 덜 가는 조용한 지역에서 그림을 구매하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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