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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에세이]‘노래하는 나체男’에 꽂힌 일본女

서먹하던 병원에서 노래 발표 뒤 ‘원조 욘사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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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0호 박현준⁄ 2012.04.16 11:50:31

1982년 전임강사가 되자마자 지금은 작고하신 흉부외과 선생님의 권고로 아무 준비 없이 일본 심장 혈압 연구소로 연수를 갔다. 병원에서 내준 기숙사에서 묵으면서 직접 의식주를 해결했는데 문제는 언어였다. 일본어 철자 하나 배우지 않고 갔으니…. 그 시절만 해도 서울과 비교해서 시설이나 경제가 차이가 날 때였다. 방에 붙어 있는 조그만 화장실에 수도꼭지가 하나 있는데 처음에는 그곳에서 빨래와 목욕을 해결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어차피 마켓도 다녀야 하고, 그래서 처음 간 곳이 동네 목욕탕이었다. 남녀가 들어가는 문은 분명 따로 있는데, 돈은 남녀탕이 다 보이는 높은 곳에서 30대 여성이 앉아서 받았다. 옷을 벗는데도 물끄러미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모습이라니…. 고기가 먹고 싶어서 제일 싼 고기를 매번 사니까 주인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소고기라고 사서 구워 먹은 고기가 나중에 알고 보니 말고기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당시는 병원 내에서도 담배를 피웠는데 일본은 금연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려고 항상 병원 밖으로 나가곤 했다. 여러 가지로 환경도 안 맞고 언어도 통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받는 스트레스가 나를 엄습해왔다. 코앞 기숙사에선 간호사들이 벌거벗고 오락가락, 양주 한 병을 꺼내 나체로 술을 마셨는데, 다음날 간호부장이 “좀 보자”며 뒷방으로 끌고가서는… 나는 병원에서 내준 직원 기숙사의 4층에 기거했는데 바로 앞이 간호사 기숙사였다. 한 3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건너편을 거의 다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저녁 8시경이 되면 교대가 됐는지 대개 목욕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여성들 도무지 예의(?)가 없다.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채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청년이었던 내 앞에서…. 하도 싱숭생숭해 일본에 입국할 때 산 양주를 꺼내 베란다에 나가서 불은 다 끄고 팬티만 입은 채로 마셨다. 오래간만에 마시는 술,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데 금세 취기가 돌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술 한 병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병원에 나가 지도교수와 함께 회진을 돌고 나니 간호부장이 나를 잠시 보잔다. 그래서 간호사 데스크 뒤에 있는 방에 들어가자 벽에 세계 각국의 담배가 모두 진열(?)돼 있지 않은가! 일본은 이미 남성들이 담배를 끊기 시작하고 여성들이 오히려 담배를 많이 피우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간호부장이 “선생님, 노래를 너무 잘 한다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전날 밤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 기억이 조금은 나는데 간호부장 왈 50곡 넘게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벌거벗은 남자의 최고 인기 노래였다. 그 후 송년회에서 ‘공개적으로’ 노래 부를 기회가 생겼다. 그 후로는 외로워서, 스트레스 받아서 담배 피우러 나갈 필요가 없었다. 개인 음악회(?) 효과는 대단했다. 병원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가 고작이던 직원들이 매우 따뜻하게 대해줬다. 컨퍼런스 스케줄도 미리 적어주고, 테크니션들도 자기들이 하는 일을 손짓발짓으로 열심히 알려줬다. 요즘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은 유명세를 탄 사람에게 확 쏠리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욘사마를 비롯한 한국의 연예인들에게 일본이 열광하는 것은 우리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그렇게 열광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아무튼 일본에서의 1년은 이후 다소 즐거운 생활로 변했다. 일본인 느긋, 한국인 아등바등 서둘러 줄서지 않아도 나눠먹는 일본인들 얼마 전 공대 교수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본에 쓰나미가 덮친 날 미국에서 연수를 마친 동료 교수가 부인, 아들, 어머니를 모시고 일본 센다이로 여행을 갔단다. 공항에 도착해 버스에 오르는 순간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대피령이 떨어져 근처 학교에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한 사람당 한 개씩 주먹밥을 나눠주는데 먼저 받으려고 서둘러 줄을 서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주먹밥 숫자가 모자라 줄을 섰어도 못 받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앞에서 주먹밥을 탄 일본 사람들은 반씩 쪼개어 나눠 먹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일본 사람들은 좀 별난 데가 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놀랐던 일은, 식당이든 경기장이든 줄을 선 사람들의 질서가 너무도 정연함은 물론 이야기를 나누며 줄을 서 있다가 줄이 끊어져 경기장에 못 들어가도 아무 말 없이 돌아가는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나는 한국 사람 중에서도 성미가 아주 급한 편이니 참을성을 논할 필요가 없지만,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도 한국인은 매우 역동적이다. 줄을 서면 누가 끼어들세라 사람이 지나갈 틈을 안 준다. 백화점에서 세일 상품을 사려고 줄을 섰다가 차례가 오지 않으면 “지금 사람 놀리는 거냐, 사기 세일 아니냐”며 큰소리를 지른다. 일본인과 다른 한국인의 기질인지도 모르겠다. 언제쯤 우리는 서로 믿고 덜 다툴까? 강남의 병원에서는 대기 환자의 순서를 어기고 주책없는 의사가 아이를 데리고 진찰실로 들어가다가 환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모습도 봤다. 병원에서는 요사이 예약 진료를 한다. 그러나 예약이 무색하게 한 두 시간씩 늦어지는 일은 다반사다. 그러다보니 예약을 하고 온 환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진찰실 앞에 붙인 순서표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자기 순서를 지킨다. 이제 병원도 바뀌어야 한다. 지키지 못할 예약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다. 때로는 급히 봐줘야 하는 환자도 있겠지만 한 두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환자들과의 예약에는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언젠가 한 병원에서 미리 예약금을 받았다고 언론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일이 있다. 그러나 꼭 비난할 일도 아니지 않을까? 예약 질서를 잡기 위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믿고 순서를 기다리는 예약 문화가 정착된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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