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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용 작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시간을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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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4호 왕진오⁄ 2012.05.14 10:59:39

작가 김덕용(51)은 상투적으로 관념화된 '한국적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시간의 역사를 거치며 우리 안에 내재된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 저절로 묻어 나오는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추구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우리네 어머니와 소녀, 강아지와 까치 등의 모습에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고되고 힘들지만 따뜻함을 잃지 않은 한 많은 우리네 이웃과 자연에 대한 따듯하고 정겨운 시선이 있다. 김덕용이 나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대학원 시절부터인데, 스스로의 오랜 숙원 과제로 여겼던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옛 나무를 선호하지만, 새 나무라도 작가의 손때 묻은 흔적으로 많은 사연을 담아내게 한다. 작가는 한국 회화에 대해 말할 때 이미 개념화돼 있는 소재, 수법, 기법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에게 있어 한국적인 것은 우리 역사의 내적 이야기,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던 선조들의 일상적인 삶을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저절로 묻어나게 하는 미술 형식이나 기법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 회화라고 그는 말한다. 작가는 현재 작품 스타일을 1995년 두 번째 개인전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그는 지난 세월을 품은 나무 속에 우리의 이야기, 미처 내보일 순 없지만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이 잠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는 사연이 많이 담긴 나무(판)를 만날수록 진한 생명감을 느낀다고 한다. 동시에 나무는 평면(판)과 입체(둥그스름한 본태)가 공존하는 소재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고유의 미를 표현하다 보면 작품은 때로는 평면, 입체 혹은 설치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의 한국적 아름다움은 나뭇결에 깊이 새겨낸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곰 삭혀 끓여낸 된장찌개와 같은 은은함으로 다가온다. 한적한 봄의 시골길에 흐드러져 피어 있는 매화, 나무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는 소년, 전통적 미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반닫이 위에 올려놓은 달 항아리, 자개를 나무 위에 박아 넣은 여인의 한복 등 김덕용이 재현하는 기억은 유년의 추억이자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향수다. 목수와 같은 특화된 직업은 나무들이 내뿜는 기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어떠한 기호에 숙명적으로 연결된 자들을 천직이라고 부른다. 김덕용에게 있어 숙명적인 기호란 시공간 속에서 체득하게 되는 모든 형상, 즉 기억이라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기억들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것들을 작품에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작가와 같은 시공간에 젖어 들어가 공감하도록 만든다. 그의 작품 위에 펼쳐진 기억은 무언의 해석이 가능한 기호이며, 그 자체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품 속에 고착된 단편적 시간이 주는 긴 여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 사유하도록 한다. 기억 찾기는 일관성과 다원성이 공존하는 삶의 과정 그 자체이다. 그렇게 되찾은 시간은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현재에서 생동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영혼과 같다. 일상 속에 고요히 숨겨져 있는 여러 기호들을 채집하고 다듬질하기 위해 그는 눈과 마음으로 언제나 시간 여행을 한다.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가지고 생명과 따뜻함을 불어넣는 것을 작품 속에 존재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억에 대해 “사람이 살아가는 그 기억 속에 작품을 들여 놓으려 한다”며 “시간의 무수한 반복으로 내 감성을 담아냈기에 아련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나뭇결 속에서 시간성을 느끼고 여기에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가장 한국적인 느낌의 삶을 담아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리 전통을 계승해 우리 것을 찾는 것이 미술사적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일이 아닌가”라는 그의 말에서 그의 한국 전통의 문인화에 작가적 감성을 불어넣으려는 그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나뭇결에 담은 기억의 단편들 김덕용의 작품에는 여인과 소녀, 소년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여인의 모습에서는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애틋한 연민이 강하게 드러난다. 한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입던 한복의 반짝임을 자개를 이용하여 표현한다. 작가는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전통적인 오브제를 화면에 넣기도 한다. 과거의 이미지를 오늘에 담기 위해 작가는 나뭇결을 주요한 모티브로 이용한다. 자연스러운 결과 인위적인 결이 함께 나타나는 셈이다. 작가의 시간이 녹아든 결이다. 인위적이면서도 그 안에 담긴 것은 예스럽게 보인다. 모든 대상이 기억 속에서 다시 재현되는 것처럼 그의 손을 거치면 아무리 새로운 재료도 손때 묵은 느낌으로 바뀐다. 최근 그는 나무로 만든 책과 서랍이 있는 거대한 책장 작품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봉순이 언니, 다듬이 소리, 기도하는 여인 등의 책 제목만으로도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의 책들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읽었던 것이며, 책은 기록 자체이고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 저장 창고다. 현재의 나의 모습을 미래에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작품명을 ‘오래된 미래’라 지었다”고 그는 밝혔다. 작가 김덕용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흔적인 결을 통해 한국화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내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양의 재료나 기법도 거침없이 가미된다. “세상사는 게 그러네요. 계획한대로, 설정한 대로 되지 않아요.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에 다시금 관심을 갖고 생명과 따듯함을 불어 넣는 것, 그 속에 내 작품은 존재합니다. 소년 같은 감성을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입니다.” 곰삭음의 미학, 멋 내지 않은 한국적 소박함을 담은 그의 이야기는 당분간 우리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던질 것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회화과 및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2001년 공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화익 갤러리, 크론베르크, 학고재, 갤러리현대 등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동아미술제 수상작가 초대전, CIGE 2007, 두바이 아트페어, 아르코 마드리드, 아트스테이지 등의 기획 그룹전을 통해 활동을 전개 중인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스위스 한국대사관, 외교통상부, 신세계, 그랜드인터콘티넨탈 등에 소장돼 있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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