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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의사도 포기한 환자가 90세 장수

원인모를 소화병으로 수의까지 준비했던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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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4호 박현준⁄ 2012.05.14 11:31:37

나의 어머니는 지금 90세이신데 아직도 하루 1~2시간은 외출하시며 여러 부위에 통증은 있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사신다. 하지만 어머니가 90세까지 건강을 유지하시며 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중학교 시절 같이 사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천천히 진행된 소화 불량….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져 한 달에 반드시 한 번씩은 5~7일간 심한 복통, 구토로 물조차도 드시지 못하는 고통이 시작됐다. 한 달에 7일 간은 링거 주사로 유지됐으니 그 당시 어머니의 친구 분을 비롯해 여러 분이 “남편을 만난 게 천만다행”이라고들 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 시절 “너희 어머니는 얼마 못 살 것”이라며 이미 그 당시에 어머니의 수의를 장만해 장롱에 넣어 두셨다. 아버지도 내과 의사이셨지만 어머니 병환의 치료를 위해 우리나라의 위장 관계 전문 의사들 거의 전부에게 어머니를 의뢰를 해 봤으나 허사였다. 내가 레지던트를 끝내고 일본에 연수차 가 있을 때 어머니의 모든 진료 기록과 사진 등을 가지고 가 도쿄여대 부속 소화기병 센터에서 세미나까지 개최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처음 보는 상태”라며 치료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현대의학이 확인조차 못하는 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차 심해지는 증세에 따라 어머니는 키 1m70cm에 몸무게 40kg 미만이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최종 수단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해보자고 결정했고 당시 신중하시기로 소문난 이경식 교수님께 매달리다시피 해 개복 수술을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당시 어머니를 걱정해주시던 친구 분들 중 대부분이 별세하셨고, 몇 분 남으신 분들도 거동을 못하신다. 또한 평생 어머니 병치레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별세하신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건강하게 지내신다. 소화병 탓에 한 끼 한 숟가락 밥으로만 연명했기에 30대에 수의를 마련했지만 아직도 장수하시는 것일까 최근 7~8년 전부터는 그렇게 심하던 소화기 증세도 거의 없어졌지만 병이 사라진 이유도 모른다. 얼마 전 나의 둘째딸 결혼식에서 어머니를 만나신 이경식 선생님은 “매우 건강하셔!”라면서 놀라셨다.

일본에서 장수마을의 비결은 소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 평생 소화기 증세로 한 끼 한 숟가락 정도의 밥으로만 유지한 것이 90세가 넘도록 살아가시는 비결은 아닐까? 어머니는 실제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었다. 30대 말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병원에서 맹장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도 깨어나지가 않는다고 해서 아버지가 황급히 수술실에 들어가 보니 산소 탱크의 연결이 잘못돼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연결을 바로 하고 나서 얼마 지나 정상으로 깨어나셨다고 한다. 평생을 적게 한 식사,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일, 미리 죽을 것이라고 수의를 해놓은 것들이 어머니가 오래 사시는 데 더 도움이 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죽고 사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팔자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 새삼 되새겨진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마음에 묻는다는데… 사람을 이승에서 떠나보내는 방식이나 의례는 국가에 따라, 망자의 연령 또는 종교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일본의 장례는 매우 조용하다. 울음소리를 거의 들을 수가 없다. 집에서 장례를 치를 때는 구청에서 내주는 천막을 집 문 앞에 설치하고 문상객을 맞는다. 조문객들도 조용히 인사하고 돌아간다.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해도 크게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은 없다. 예전에 부산의 노래방에서 불이 나 일본 관광객들이 사망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일본에서 온 가족들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옛날에는 7일장을 하면서 곡을 해야 했는데, 직접 곡을 하기 힘들면 곡을 하는 사람을 돈 주고 사서라도 ‘아이고, 아이고’ 곡을 했다. 그 전통이 남아서인지 일단 소리 내 우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병원에서는 망자의 나이, 성별, 병의 종류에 관계없이 일단 소리 내어 운다. 특히 절망적인 병으로 사망한 경우가 아니면 더 크게 소리를 내고 본다. 뿐만 아니라 시신을 안치하지 않고 들러 매고 데모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보는데 망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예의를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 정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의 무의식에 남겨진 습관일까? 어느 때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단 장례식장으로 이송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이가 많은 망자의 빈소는 호상이라고 해 눈물을 보이지를 않고,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사망한 사람의 빈소에서만 진심에서 나오는 애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신 없는 빈소 차린 어느 대학 이사장 사망한 다음에 자식이 잘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소리가 있지만, 자식이 체면치레에 급급해 치르는 장례식도 있다. 모 대학의 이사장이 있다. 이 대학의 이사장을 지내고 매우 고령인 부모와 대학 운영 문제로 소송을 한, 참 한심한 인간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이 차린 빈소를 마다하고 자신이 따로 빈소를 차렸다. 시신이 없는 빈소인 것은 물론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이사장이라고 불효 소리는 듣기 싫어서 한 일이겠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은 “천하의 불효자식”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리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시대라지만 사회 지도층의 이런 행태는 더 씁쓸하다. 병원의 장례식장은 안은 정숙하지만 밖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망자의 가족이 밤을 새우는 것과 함께 하기 위해 술상을 받고 놀음을 한다고는 하지만, 고성이 오가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지나친 것 아닐까? 애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개가 사망하면 무덤까지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맡은 소아심장과에서 아기가 사망하자 시신을 그대로 병원에 내버리고 달아난 부모들도 봤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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