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용지로 만든 책 ‘야생초 편지’를 보면 우리가 잘 모르는 야생초(野生草)가 이렇게 많다는 데에 놀란다. 들풀 그림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사진보다 정교한 묘사에 또 놀란다. 이 책은 감옥에서 야생초를 관찰한 생명일기이자 수련일기, 사색일기다. 동생에게 보낸 봉함엽서를 모은 것이다. ‘야생초 편지’ 저자 황대권 씨(58)는 감옥생활 중 만성기관지염을 고치려 풀을 뜯어 먹다가 야생초에 반해 전문가가 됐다. 모나미 볼펜으로 한 뼘도 안 되는 종이에 글과 그림을 그렸다. 감옥생활의 애환과 희망을 담았다. 세상과 단절된 13년 동안 야생초는 그의 친근한 옥중동지이자 위대한 스승이었다. ▷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를 공부하던 황대권 씨는 지난 1985년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안기부 조작으로 밝혀져 13년 2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청춘을 이미 흘러간 뒤였다. 그랬던 그가 야생초를 접한 곳은 다름 아닌 한 뼘도 안 되는 감옥 담장 밑이었다. 거기서 소박하고 겸손한 야생초를 만나 관찰했다. 컵라면용기, 마가린통, 코카콜라병에 야생초를 심고 가꿨다. 한 평도 안 되는 열악한 감방에서 몸을 굽혀 모나미볼펜을 눌러가며 쓴 ‘야생초 편지’는 역작이다. 책꽂이에서 다시 그 책을 펴든 이유는 며칠 전 문을 연 국회 제2의원회관 때문이다. 호화 논란에 빠진 ‘민의의 전당’을 바라보다 넋을 잃었다. 겉만 화려하고 내용은 부실한 고질적인 형식주의가 새삼 떠올랐다. 책꽂이가 크다고 지식이 높아지지 않는다. 집을 넓힌다고 가정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의원회관 호화 신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밀려온 건 왜일까? 그동안 무늬만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봐왔기 때문이다. 경외민의(敬畏民意)에 벗어난 그들의 업보를 알기 때문이다. ▷ 19대 국회 개원을 앞둔 5월 23일 국회에 제2의원회관이 들어섰다. 멀쩡하게 의원회관이 있는데 또 무슨 제2의원회관? 문제는 건물 신축과 개원준비에 드는 혈세(국민의 피땀과 같은 세금) 낭비에 있다. 3년 전 착공 당시부터 비난의 도마에 올랐지만, 건립비용에 2212억9300만원이 들었다.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오는 8월 완공 예정인 서울시 신청사와 극히 대비된다. 서울시 신청사는 2989억 원이 들어간다. 상주인원을 보면 서울시 신청사는 1만452명, 의원회관은 최대 3000명에 불과하다. 옛 의원회관 리모델링 작업에도 477억6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19대 개원 비용에 48억 원을 쓰는 것으로 밝혀졌다. 멀쩡한 의원실 소파와 책상, 의자는 왜 교체하는지, 본청 레드카펫은 꼭 바꿔야하는지, 2억8400만원을 들여 본청과 의원사무실 도배를 꼭 해야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개원비용은 18대 국회의 세 배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간사는 “대표적인 예산낭비의 극치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 국회의 주먹구구식 예산집행에 말이 많다. 어쨌든 19대 국회는 역대 최대의 비용이 들었으니, 역대 최고의 업적을 남겨야 한다. 집단적 사치(奢侈)라는 비아냥을 스스로 떨쳐야 한다. 국회 사무처 신중돈 홍보기획관은 “혈세 낭비 논란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예산 책정과 실제 집행은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지나친 확대해석을 지양해 줄 것을 당부했다. ▷ 한 뼘도 안 되는 교도소 담장 밑에도 야생초는 스스로 핀다. 극한의 공간을 극복한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태를 빚는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혈세 논란?!… 기업이 먹거리 갖고 장난치면 천벌 받듯, 정치인이 세금 갖고 장난치면 탈이 난다. “만 냥의 황금도 다투면 부족하지만, 서푼이라도 나누면 남는다.(쟁즉부족爭卽不足, 양즉유여讓卽有餘)” - 김경훈 CNB뉴스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