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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와 함께 살아온 이승일 작가 “현대인에 잘 맞는 장르”

“수십년 모은 작품들로 판화만의 매력 보여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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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0호 김대희⁄ 2012.06.25 10:58:20

판화라면 흔히 어린 시절 고무판을 긁어내 만들던 고무판화를 떠올리기 쉽다. 조금 더 나아가면 목판화 정도다. 판화는 나무·금속·돌 등의 표면에 형상을 그려 판을 만든 다음, 잉크나 물감 등을 칠해 종이나 천 등에 인쇄하는 회화의 한 장르다. 기법적으로는 철판(목판화)과 요판(동판화)으로 대별되며 평판(석판화)과 반전을 요하지 않는 공판(실크 스크린) 등도 있다. 국내 판화 시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 없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판화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부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751년 제작 추정)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탑신부에서 발견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경 인쇄본이다. 석탑 내부에서 함께 발견된 총 28점의 일괄 유물과 함께 1967년 9월 국보로 지정됐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술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중요도와 비중은 매우 미비했다. “판화라는 장르가 국내에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발전을 못하고 있어요. 너무 아쉬운 점이죠. 우리는 문화민족이었어요. 활자문화는 우리의 자랑이죠. 활자의 모체가 목활자였고 생활 속에 스며든 예술이에요. 하지만 판화는 여러 장을 만들 수 있어(복수예술) 인쇄물이라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지금처럼 판화 장르의 지체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어요.”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만난 이승일 작가는 판화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판화를 보며 자라왔고 판화 작업을 하면서 판화를 가르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가 판화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게 된 데에는 바로 그의 아버지 고 이항성(1919~1997) 화백의 영향이 컸다. 이항성 화백은 서양의 추상미술 형식에 한국 전통문화를 담아냈다. 동서양의 재료와 기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사용했으며 표현 양식의 폭을 넓혀가면서도 일관되게 평화를 추구한 작가였다. “아버지가 출판사를 하면서 인쇄소를 같이 운영했는데 당시 처음으로 판화협회를 만드셨어요. 그러면서 1965년 한국판화회 회장으로 활동하시며 판화 작가들이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셨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작업 활동을 보며 판화가 생활화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림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돕는다는 생각이 많았죠.”

알고 보니 그는 럭비를 했었고 이를 통해 운동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술에도 소질을 보이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특차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럭비를 뒤로 한 채 미대를 선택해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판화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됐지만 당시 판화를 배울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배우면서 마치 독학하듯 공부했다고 한다. “판화는 자기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매체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서양화와 판화를 비슷한 시기에 배웠어요. 1988년 홍익대에 판화과가 신설되면서 강사를 맡았고 91년부터 교수로 생활하게 됐죠. 2011년 여름에 정년퇴임을 했으니 22년 동안 판화를 가르쳐왔죠. 아버지와 함께 각자 판화를 모아왔는데 판화는 물건이 적어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발표된 작품도 드물고 접할 기회도 없었죠. 이렇게 모아온 작품들을 언젠가는 세상에 선보이자고 생각했었죠.” “저렴하면서 심플한 매력 가진 미술 장르. 한국에서만 유독 회화만 못한 평가받아 아쉬워. 판화 작가에게 힘 주는 자극제 되면 좋겠다” 그는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과도 각별한 사이로, 판화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마련하고자 그와 오래 전부터 얘기를 나눠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침체된 판화계를 위해 2011년 11월부터 계획하고 준비해 7월 17일부터 가나아트센터에서 판화 소장품 전을 열게 됐다.

“판화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이나마 바꾸고 변화시키려면 새로운 계기가 필요해요. 이번에 전시를 마련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죠. 우리 조상의 문화를 알리고 함께 즐겼으면 해요. 예술은 마음을 배부르게 하고 정신적인 풍요를 주죠. 해외 사례를 봐도 판화를 예술품으로 인정해주며 인지도가 높아요. 국내에선 유독 판화에 대한 인식이 낮죠. 열심히 하는 이들에게 우리도 희망을 주고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도와야 해요. 이번 전시가 판화를 하는 작가들에게 자극과 밑받침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판화 작품은 근대 작부터 현대 작까지 전시를 여러 번 열 수 있을 정도의 규모다. 이번에는 600여 점의 작품으로 대규모 전시를 열어 보일 계획이다. 어린 시절부터 판화를 보고 겪어왔으며 20년 이상을 판화 교수로 지내고 40년 가량을 작가로 활동하면서 판화시장의 힘든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지금은 상황이 어렵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조상의 본질을 찾고 느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전시가 판화 시장을 다시금 돌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기폭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점점 잊히는 판화에 대해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하도록 보여주고 싶어요. 판화는 복수예술로 평면적이면서 심플하죠. 현대 생활상과도 잘 매치되고 저렴하기에 우표나 동전 모으듯 판화를 사랑해주면 발전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해요. 손쉽게 접근하고 즐기면서 수집할 수 있는 게 바로 판화에요.” 회화와 판화를 구분 짓지 말고 모두 그림으로 평가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그림이 생활화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노력, 그리고 사라지는 전통문화를 살리는 관심과 소통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판화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그의 소장품 전시회는 가나아트센터에서 7월 17일부터 8월 5일까지 진행된다. - 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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