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3호 박현준⁄ 2012.07.16 15:18:56
10여 년 전 연세대학교 농구부장을 맡으면서 수년에 걸쳐 많은 선수들을 봤다. 고교에서 가장 잘한다는 선수들이 연세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프로 농구에서도 대성하는 선수는 2~3년에 1명 나올까 말까한 것이 현실이었다. 프로농구에서 서장훈, 김주성 등이 오랜 기간 정상의 자리에 있지만 이는 매우 힘든 일이다. 아마도 공부해 성공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지 모른다. 이들 이외에도 대어, 몇 년에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고 극찬을 듣던 몇몇 선수들도 빛을 못보고 사라져간 경우도 있다. 대부분 선수들은 자신이 매우 농구를 잘 하는데도 감독이 시합에 기용을 하지 않아 실력 발휘를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동 신경, 운동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며 이를 후천적으로 잘 육성해야만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다. 우선 훌륭한 선수는 긴장감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정신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마라톤에서 손기정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황영조 선수의 경우 맥박수가 분당 50회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은 긴장을 하면 카테콜아민의 분비가 늘어나면서 심박수도 빨라진다. 이렇게 되면 안정된 운동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나는 잘하는데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황영조처럼 긴장해도 보통사람의 심박수 이상으로 증가하지 않는 사람은 정상적인 운동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운동선수의 타고나는 자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유연성, 집중력, 위에서 말한 심폐능력 등이다. 이런 조건들이 함께 어우러지지 않으면 연습에서 잘해도 큰 경기에서는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내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할 때 가끔 팜스프링스의 골프장을 찾곤 했다. 어느 날 팜스프링스의 한 리조트 골프장에 갔는데 한 번에 50~60명이 연습을 할 수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연습 공을 치는 곳)가 동양인으로 만원이었다. 젊은이들이 공을 치고 있었고 그 뒤에는 의자를 놓고 어른들이 한 사람씩 앉아 있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한국 학생 100여 명이 단체로 동계연습을 왔고 뒤에 앉았던 사람들은 부모들이라는 것이었다. 진귀한 광경은 미국의 지역 신문에 보도되는 등 화제가 됐다. 문제는 부모들이 직업까지 제쳐놓고 자식의 골프를 위해 2~3개월씩 함께 거주하면서 전문가가 아닌데도 코치 역할까지 맡아가면서 자기 자식은 꼭 성공할 것이라고, 성공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골프 여행단을 총괄하는 한두 명의 미국인 코치들은 정확한 상태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고 부추긴다. 이는 다분히 상업적 목적이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수도 없이 많은 한국 학생들이 골프와 영어를 배운다고 나가 있다. 이들 중 몇 명이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까? 미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남자 프로골퍼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확률은 골프를 시작한 사람 10만 명 중 1명꼴이라고 한다. 스탠퍼드와 골프 병행한 미셀 위 그런데 미국에선 중고교 시절 골프를 하더라도 반드시 학업을 병행한다. 소질이 있어 학교 측이 골퍼로 나갈 것을 권해도 거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부모들은 자식의 장래에 도움말만 해줄 뿐 강요하는 일은 없다. 한국 프로 선수들은 대학 재학 중이거나 대졸자가 많다. 그러나 그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수업을 제대로 듣고 학업에 열중했을까? 우리는 한국계 미셸 위가 명문 스탠퍼드대학에 다니면서 골프 시합에 나오는 것을 본다. 미국의 대학은 선수가 운동을 잘한다고 건성으로 학점을 줘 졸업시키는 곳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를 비롯한 대부분 종목의 미국 선수들이 대학을 거친다. 이는 운동만으로는 일생을 살아가는 데,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우리의 현실은 벌써 중고교 시절부터 공부는 집어치우고 운동에만 전념시킨다. 만일 미국의 부모들이 한국 부모처럼 자녀의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채찍질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과연 한국 선수들의 ‘골프 운동신경’이 뛰어나 좋은 골퍼들이 많이 나오는 것일까? 한국 골퍼들이 세계적으로 재능을 나타내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그 그늘에서 오늘도 사라져갈 수많은 선수들의 앞날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다. 공부땐 고개 푹, 카드놀이땐 눈 반짝 의사시험 공부하면서 카드놀이는 왜 그리들 했는지… 의과대학 4학년 시절 우리는 4~5명씩 그룹을 만들어 신촌 주변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당시는 기숙사도 없었을 뿐 아니라 국내 의사 자격시험보다는 미국 의사시험(ECFMG)을 공부하던 시기였다. 몇 명씩 조를 짜 미국에서 출제됐던 문제집을 분담해 공부하고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그 당시 신촌 일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지금은 음식거리로 휘황찬란하게 변해버린 곳은, 당시엔 중앙에 큰 개천이 있었고 그 곳은 매우 지저분했다. 개천에는 쓰레기가 가득 차고 냄새도 지독했다. 그 개천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오래된 한옥이 즐비했는데 거기에 하숙집들이 많이 있었다. 또한 지금 연세대와 의료원의 건너편 철길 아래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는 작은 가게들과 한옥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곳도 대부분 하숙집들이었다. 모두가 미국 의사시험을 목표로 모였고 책상에 모여 앉아 공부를 시작했는데 역시 여러 명이 함께 있다 보면 공부하는 시간보다 잡담시간이 더 길어지곤 했다. 선배들이 카드놀이를 좋아해 우리도 가끔 끼어들어 했었는데 막상 4학년이 돼 함께 모이니 카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너나할 것 없었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좀 쉬면서 머리도 식힐 겸 잠깐만 카드를 하자는 제안이 나와 올마이티, 포커 게임 등을 시작했다. 차차 시간이 가면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카드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한 일주일 쯤 카드놀이를 하다가 이러면 안 된다며 모두가 합의해 카드를 찢어버리고 다시 공부를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작심사흘, 다시 카드를 사다가 또 시작하고 이를 또 찢기를 반복했다. 찢어버린 카드가 10채는 됐던 듯하다. 드디어 하숙집 대항 카드 대회까지 열리고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조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당시 왜 포커가 유행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다른 조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하숙집 대항 포커 게임이 열리고 각 조는 대표 선수를 내세워 돈 내기까지 했다. 공부할 때는 졸리다며 벽에 머리를 박고 있던 친구들이 카드를 할 때는 눈이 반짝반짝해졌으니…. 지금 생각하면 공부한 시간보다 카드 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졸업 후 군대에 가서 또 포커에 몰두해 한 번은 군의관들끼리 정신없이 포커를 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우리 중 나보다도 더 성미가 급한 대위가 “누구야” 하면서 문을 여는데 앞에 떠 있는 별 3개! 혼비백산했던 기억도 새롭다. 내가 전임강사 임용 후 연수하러 미국 갔을 때 나를 맞아 뉴욕의 동기들이 해준 환영회 역시 포커판이었다. 밤새도록 “닭대가리”(실수해 피해를 준 친구를 탓하는 소리)를 연발하며 학창시절로 돌아갔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됐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