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공천 헌금’ 의혹 사건은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현영희 의원이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 원을 건네고서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받은 혐의가 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다. 그러나 의혹 당사자들의 말이 자꾸 바뀌면서 엇갈리고 있어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공천 헌금 전달 의혹을 받는 조기문 전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은 당초 현 의원의 전 비서 정동근 씨를 만나러 서울에 오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다가, 다음에는 서울에 온 건 맞지만 서울역이 아니라 강남에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반면 정 씨는 지난 3월15일 현 의원으로부터 3억 원을 받아 서울역의 한 식당에서 조 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한다. 이 돈은 조 씨를 통해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이던 현기환 전 의원에게 전해졌으며 관련 문자메시지까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 씨는 정 씨를 만나지도 않았다고 잡아뗀다. 전달된 돈의 액수도 정 씨는 3억 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현 의원은 500만 원이라고 맞선다. 현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을 앞두고 통화를 했는지, 조 씨와 현 전 의원이 통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도 말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공천 헌금 의혹과 관련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건 4.11 총선 당시 비대위원장으로서 공천에 대한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 후보의 실망스런 대응이다. 특히 박 후보는 이번 ‘공천 헌금’ 의혹 사안과 관련해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으나 결론적으로는 리더십, 책임의식, 조직 운영 능력 등이 상당 부분이 낙제에 가까운 성적표였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박 후보의 상황 파악 능력 부재를 꼽고 있다. 당초 사건이 터지자 박 후보는 “검찰에서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할 문제”라는 원론적인 언급을 했다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발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측근 참모들이 박 후보에게 ‘청와대 기획설’ 등 사건의 실체와는 거리가 먼 보고를 한 탓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분석이 사실이라면 근본적으로는 주변에 윗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인물들을 포진시킨 박 후보의 조직 운영과 용인술의 실패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우여 대표가 박 후보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공천헌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황 대표가 책임진다는 데 박 후보가 동의했다는 것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한마디로 공천헌금 사건이 일어난 당시의 지도부 대신 현재의 당 지도부에 책임을 지우는 처사가 그동안 박 후보가 강조해온 원칙-신로의 정치와 어떻게 부합되는지 알 길이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공천헌금 행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박 후보가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비박계 대선 주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박 후보의 ‘대선 후보 사퇴’ 주장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공천헌금 사건이 터진 뒤 “멘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곤혹스러운 심경을 밝혔지만 하루빨리 멘붕 상태에서 벗어나 당 차원에서 의혹을 명백하게 밝혀야 본인이 하고자 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아무런 책임의식도, 정면돌파의 의지도, 제대로 된 리더십도 발휘하지 못한 채 상황 회피에 급급해서는 대권의 꿈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져갈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심원섭 정치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