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290호 최영태⁄ 2012.09.06 18:04:58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눈물 가득한’ 가운데 열렸다는 트윗을 보고 유튜브의 관련 동영상을 봤다. 이것 참, 남의 나라 전당대회인데, 내가 왜 눈물이 날까.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셀 오바마의 진심어린 명연설에도 있었지만, 더욱 감동적인 것은 전당대회에 참석한 민주당 전국 위원들이었다. 이들 관중들은 “네 자녀 모두가 군인이이서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라를 위한 할 일을 다 하니 자랑스럽다”는 한 어머니의 연설에 박수갈채와 눈물로 화답했고, 미셸이 연단에 오르자 잠시도 쉬지 않고 몇 분씩이나 박수갈채가 이어져 미셸이 "말을 시작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나서야 환호가 그칠 정도였다. ‘나가수 식’ 열정 느껴지는 미국과, 야유 넘치는 한국의 차이 미셸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오바마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후보 시절에도 남편과 자기는 아스팔트가 차 바닥 구멍을 통해 보이는 낡은 차 속에서 데이트를 나눴고, 남편이 가장 아끼는 보물은 쓰레기더미에서 주워온 커피 테이블이었으며, 자신의 아버지는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무서운 불치병을 앓으면서도 딸의 등록금에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일을 했다는 그녀의 경험담은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청중을 메운 전국위원들의 표정이었다. 이는 마치 ‘나는 가수다’ 방송에서 감동을 더하는 것은 관객들의 눈물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미셸과 버락의 선조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듯, 앞으로도 계속 미국인들이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정의롭고 공평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미셸의 진심어린 약속에, 전국위원들은 나가수의 관객에서 볼 수 있는 표정으로 화답했다. 무대와 객석이 한 마음을 이루는 장면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또 하나 특징은 객석은 다양한 색깔이다. 공화당 전당대회의 객석이 화사한 흰색 미소(잘 사는 백인) 일색인 반면, 민주당 전당대회의 객석에는 흑인-동양인 등이 컬러풀하게 들이차 있고, TV 화면은 이들의 얼굴을 의식적으로 더 많이 비춰준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아시안의 위치는 무엇인가? 사회의 약자, 맨 아래 계층이다, 아시안이야 그 중 상당수가 성공해 거의 ‘준 백인’의 위치에 올랐다지만 흑인은 아직도 그냥 그대로, 돈 한 푼 없는 최하층으로 남아 있다. 민주당은 이런 ‘돈 안 되는’ 사회의 최하층을 껴안은 정당이다. 물론 민주당 안에서의 흑인 역할, 또는 흑인의 투표 참여를 근원적으로 막는 미국의 선거 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민주당이 사회의 최하층을 껴안은 ‘계층 정당’의 면모를 띠려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부인의 ‘감동 연설’을 떠받쳐주는 힘은… 한국의 유권자 지도도 드디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태까지는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후보에, 전라도 후보는 전라도 후보에 투표하는 지역구도 투표 행태를 보여 왔다면, ‘안철수 현상’으로 드러나는 젊은층의 집결 현상은 한국에도 드디어 사회경제적 특징을 바탕으로 하는 ‘계층-계급적 유권자 의식’이 싹트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국의 민주당이 살아남으려면 미국 민주당처럼 ‘돈 안 되는’ 최하층을 적극 껴안아야 한다. ‘돈 되는’ 사람들은 이미 새누리당과 재벌 등이 따뜻하게 껴안아 주고 있다. 한국의 민주당이 미국의 민주당처럼 계층 정당으로 재포지셔닝(repositioning)할 수 있을 때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언제까지나 지역구도 또는 ‘새누리당이 다 껴안지 못한 나머지’(돈은 되지만 사회적으로 큰 파급력은 없는) 계층만을 껴안는 엉거주춤 자세만 계속 취한다면, 아마도 민주당은 ‘안철수 현상’으로부터 시작되는 강력한 태풍 앞에서 산산이 흩어져 없어질지도 모른다. 나가수에서처럼 열띤 청중을 모시는 야당의 모습을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