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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의 전설’ 오윤을 재조명하다

아라아트, 개관전으로 오윤 작품 총망라한 대형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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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4-295호 김대희⁄ 2012.10.04 10:54:01

한국의 조각가이자 민중판화가로 잘 알려진 오윤(1946~1986). 그는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 작가로 활동하며 우리 전통 민중문화를 민족예술로 승화시킨 인물로, 한국 민중판화·민중예술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소설 ‘갯마을’ 작가 오영수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적 정서가 담긴 강렬한 목판화 작업을 선보였던 그는 마흔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이후 민중미술의 상징적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자기 형식을 제시하고 전통과 현실에 대해 남다른 접근을 했던 화가였다. 그래서 어느 평론가는 그를 두고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오윤을 민중미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어두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3000점이 훨씬 넘는 그의 방대한 스케치 양이나 매우 폭넓은 범위를 넘나들며 추구한 형식 실험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예술가의 원형을 떠오르게 한다. 오윤이 이승을 달리한 지 30여 년 가까운 지금 시점에서 오윤을 달리 볼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아라아트 개관전으로 9월 18일부터 10월 16일까지 열리는 ‘춤추는 도깨비, 오윤’ 전은 오윤을 재발견하기 위해 기획됐다. 사실 오윤의 작품들을 눈썰미 있게 본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춤에 대한 관심이다. 그는 춤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니었다. 몸으로 즐겼다. 술자리에서 신명난 춤가락을 보이곤 했다는 증언도 꽤 많다. 그의 그림에서 춤을 추는 주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호랑이도 춤을 추고, 도깨비도 춤을 추고, 원귀도 춤을 춘다. 칼춤, 탈춤, 북춤, 군무, 무녀도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오윤의 그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은 단연 춤이고 가장 중요한 소재였다. ‘춤’ 연작은 물론 ‘형님’ ‘강쟁이 다리쟁이’ ‘북춤’ ‘징’ ‘춘무인 추무의’ ‘칼노래’ ‘도깨비’ 등 그의 작품에서 도드라진 춤의 도상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중요무형문화재 이애주 서울대 교수와 탈춤꾼이자 무용평론가 채희완 부산대 교수 등과의 돈독한 우정도 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춤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그의 학창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입체주의적인 영향을 받은 듯한 ‘탈춤’ 연작(유화, 1970년 추정)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인물과 배경을 재구성한 것인데 후기 작품에서 보이는 자연스럽고 서정적인 선과는 대조적이다. 오윤 판화 전작에 가까운 방대한 규모의 전시 초기의 드로잉에서도 춤에 대한 상당히 많은 변용들이 목격되는데 이는 ‘동래학춤’을 전승해온 그의 외가의 내력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의 외조부 김기조는 동래야류의 명무로 이름이 높았고, 외삼촌 김희영이 이를 물려받았다. 또한 지금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학춤을 잘 추기로 유명했던 이종사촌 이현경은 오윤에게서 춤사위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오윤이 동래학춤에 대한 무보를 직접 붓으로 필사를 해서 학춤을 추던 이종사촌에게 전해주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춤에 대해 얼마나 깊은 식견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오윤의 그림은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그의 예술은 무슨 척하면서 나대지 않는다. 거기에서 교훈적이고 권위적인 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다. 그보다는 포용하는 마음 씀씀이, 움찔하게 하는 생동감,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듯한 날카로운 통찰력 등이 느껴진다. 그는 함께 나누고 공감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는 공동체적 감각을 타고난 듯이 술술 풀어놓고 있다. 실제로 오윤은 사람이 살고자 하는 것과 똑같이 예술을 하려고 했다. 그는 역사 밖에서 역사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예술을 예술 밖에서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게 삶은 예술이어야 하고 역사이어야 하고 지식이어야 했다. 예술에 대한 오윤의 이와 같은 자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이 판화이다. 유화에서도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 다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윤의 진면목은 판화에서 볼 수 있고 그가 작고하기 전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도 판화 작업이었다.

드로잉, 오윤 미학의 또 다른 시각 보이다 그가 남긴 판화 작품은 대략 180여 점에 조금 못 미친다. 그리고 이들 작품 중에서 그는 춤이라는 소재로 가장 많은 작업을 남겼고 가장 빼어난 성과를 일궜다. 이번 전시는 춤을 위주로 구성되지만 오윤의 예술세계에서 춤이 차지하는 비중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들을 비롯해서 ‘박꽃누나’ 연작과 ‘메아리 소년’ 연작 등 가급적 많은 판화를 선보인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독립된 방 하나를 오윤의 드로잉으로 채웠다. 생전에 오윤은 스케치북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스케치북과 드로잉은 오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이들 드로잉들에서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날것 그대로의 오윤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드로잉의 세부적인 표현과 미묘한 뉘앙스에 주목해서 감상해본다면 오윤의 예술적 폭과 깊이를 또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관람객들은 이 드로잉들에서 오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의 단초, 고민, 문제의식들 그리고 그것들을 풀어가는 치열한 과정이 그의 생을 따라 오롯이 드러나는 장면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 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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